개인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10화. 100만 명이 방에 갇힌 사회, 무엇이 잘못되었나
― 개인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사라진 사람들
매일 아침 통학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아픈가 했지만
한 달, 석 달, 일 년이 지나도
그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출근을 멈춘 동료가
그대로 실종되어 버린다.
연락도 되지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실, 그들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집 안 방에서, 커튼을 친 채로
바깥세상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고 있다.
이것이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다.
일본이 세계 최초로 명명하고 경험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고립이다.
숫자로 보는 현실
2025년 5월 일본 내각부 최신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는 전국적으로 163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수치로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연령 분포의 변화다.
15-39세가 78만 명, 40-64세가 85만 명으로
중장년층 히키코모리가 과반을 넘어섰다.
특히 50대 이상 고령 히키코모리가 35만 명으로
전체의 21%를 차지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2025년 내각부가 도입한 '고립·외로움 종합대책'에서는
히키코모리를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고립 현상'으로 재정의했다.
- 히키코모리 추정 인구: 163만 명 (2025년 5월 기준)
- 평균 고립 기간: 23.2년 (40대 이상 기준)
- 남성 비율: 71.2% (증가 추세)
- 가족과도 대화하지 않는 비율: 27.8% (심화)
- 코로나19 이후 신규 발생: 연간 8만 명 증가
고립의 시작점
히키코모리가 되는 직접적 계기는 다양하다.
학교 왕따, 취업 실패, 직장 내 괴롭힘,
대인관계 트라우마, 학습 부진 등
개인적 경험이 방아쇠 역할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다.
실패나 좌절을 겪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히키코모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일본 사회가 '완벽주의'와
'집단 동조'를 강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번 실패하거나 튕겨 나오면
다시 들어갈 기회를 찾기 어렵다.
학교에서 한번 낙오하면 '문제 학생'이 되고,
직장에서 한번 적응하지 못하면 '부적응자'가 된다.
사회는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대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세대별 히키코모리의 양상
1세대: 청소년기 히키코모리 (1990년대)
초기 히키코모리는 주로 중·고등학생이었다.
입시 경쟁, 학교 폭력, 교우 관계 문제 등이
주요 원인이었고, 대부분 일시적 현상으로 여겨졌다.
가족들은 '사춘기의 혼란'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회적 관심도 크지 않았다.
2세대: 만성화된 히키코모리 (2000년대)
청소년기에 시작된 히키코모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는 경우가 늘었다.
20-30대가 되어도 사회 복귀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생활했다.
이 시기부터 히키코모리가 개인과 가족을 넘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3세대: 중장년 히키코모리 (201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것은 40-50대 히키코모리의 증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청소년기부터 시작해
20-30년간 고립 상태를 유지해 온 경우다.
고령화된 부모와 중장년 자녀가 함께 사회에서
고립되는 '8050 문제'(80세 부모, 50세 자녀)가
새로운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가족 시스템의 한계
히키코모리 문제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가족이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의 상태를 '가족의 치부'로
여기며 외부에 알리기를 꺼린다.
일본의 '이에(家) 시스템' 문화에서
가족 내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외부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가족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부모들은 자녀를 달래고, 설득하고, 때로는 강요하며
사회 복귀를 시도한다.
하지만 전문적 지식과 기술 없이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부담도 심각하다.
히키코모리 자녀를 둔 가정의 월평균 지출은
155만 엔(약 1,400만 원)에 달한다.
부모가 고령화되면서 경제적 지원 능력도
점점 떨어지게 된다.
사회 시스템의 공백
히키코모리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사회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전혀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 시스템은 '정상적인' 학습 과정을 벗어난
학생들을 위한 대안이 부족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면 대학 진학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직업 교육으로 연결되는 경로도 제한적이다.
고용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신규 채용은 대부분 신졸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공백 기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보장 시스템에서도 히키코모리는
'사각지대'에 위치한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해야 하고,
장애인 복지를 받으려면 의학적 진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히키코모리는 둘 다에 해당하지 않는
애매한 상태다.
지원 시스템의 등장과 한계
2000년대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히키코모리 지원 센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상담, 방문 지원, 사회 적응 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민간에서도 NPO, 자조 모임, 가족 지원 그룹 등이
활동을 시작했다.
당사자들끼리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지원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히키코모리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족이 상담소에 와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
밖으로 끌어내느냐'고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원 프로그램도 대부분 '사회 복귀'를 목표로
설계되어 있어, 당사자의 현재 상태나 욕구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 히키코모리 지원 센터: 전국 67개소 (2023년)
- 연간 상담 건수: 약 8만 건
- 실제 사회 복귀율: 20% 미만
- 가족 상담 비율: 전체의 70%
온라인이 만든 새로운 양상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히키코모리 현상에
복잡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는 완전한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SNS, 유튜브 등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정보를 얻으며
어느 정도 사회적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 서비스는
밖에 나가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 해준다.
반면 온라인 환경이 히키코모리 상태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
사회 복귀 동기를 약화시키는 면도 있다.
가상 공간에서의 관계가 현실 관계를
대체하면서 실제 사회 기술이
더욱 부족해지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전체 사회가 '히키코모리'처럼 생활하게 되면서
히키코모리들은 오히려 적응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의 고립 경험이
일반화되면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더욱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정부의 정책적 대응
2021년 일본 정부는 '고립·외로움 대책 담당 장관'을
신설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히키코모리를 포함한 사회적 고립 문제를
국가적 아젠다로 격상시킨 것이다.
주요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다:
- 조기 발견 및 예방 시스템 구축
- 다양한 지원 기관 간 연계 강화
- 당사자 및 가족 지원 프로그램 확충
- 사회 복귀를 위한 중간 단계 일자리 창출
하지만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히키코모리 문제의 근본 원인인
사회 구조와 문화적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확산과 한국의 상황
히키코모리는 이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유사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라는 용어로
불리며, 추정 인구가 34만 명에 달한다.
일본보다 규모는 작지만 증가 속도는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특징은 학업·취업 스트레스와
사회적 경쟁 압력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스펙 쌓기', 'N수생', '공시족' 등
경쟁 사회의 부작용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은 일본보다 가족주의 문화가 강해
히키코모리 문제를 가족 내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 뚜렷하다.
- 한국 은둔형 외톨이: 추정 34만 명 (2023년)
- 주요 연령대: 20-30대 (전체의 65%)
- 평균 고립 기간: 3.2년
- 가족 소득 하위 30% 집중도: 58%
사회적 관점의 전환 필요
히키코모리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나
정신건강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는 사회 구조와 문화가 만든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완벽주의 문화,
경직된 교육 시스템,
유연하지 못한 고용 관행,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
획일적인 성공 기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든 결과다.
따라서 해결 방안도 개인 치료나 상담을 넘어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포함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여러 번의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
다양한 형태의 사회 참여 경로 등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훈
히키코모리 문제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개인의 행복보다 집단의 효율을 우선시하고,
다양성보다 획일성을 추구하며,
인간적 배려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들을 사회로 '끌어내는' 것보다는
사회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히키코모리들이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현재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
그들의 고립은 저항이고 항의이며,
동시에 도움 요청이다.
우리는 이 신호를 들어야 한다.
그들이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사회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 포용적이고 유연한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 사회도 이미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일본의 경험에서 배워,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다음 화 예고
11화에서는 과로사 사회의 지속 – 효율성 신화가 만든 자기파괴적 구조를 다룹니다.
일본이 만들어낸 '과로사'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진 사회의 모습과
이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살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2부 10화. 100만 명이 방에 갇힌 사회, 무엇이 잘못되었나 – 개인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이 글은 일본 내각부 2024년 고립·외로움 대책 보고서, 후생노동성 2025년 사회적 고립 실태조사, 일본 히키코모리 지원센터 2024년 통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4년 사회적 고립 연구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