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후쿠시마 이후에도 원전을 포기 못하는 일본

탄소 중립과 경제 성장의 딜레마

by 박상훈

24화. 후쿠시마 이후에도 원전을 포기 못하는 일본

― 탄소 중립과 경제 성장의 딜레마



2025년 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50km 떨어진 마을.


14년 전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주민이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들판을 바라보며 말한다.


"원전은 싫지만 전기는 필요하니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에너지 정책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일본의 에너지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탄소 중립을 외치지만

석탄 화력발전소는 여전히 가동 중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목표에 한참 못 미친다.


왜 에너지 전환은 이토록 어려운 걸까?


후쿠시마가 바꾼 것과 바꾸지 못한 것 - 사고 직후의 충격과 변화 시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에너지 정책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전국 54기 원전이 모두 가동 중단되었고

'탈원전'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정부는 2030년대 원전 제로를 선언했고

재생에너지 고정가격매입제도(FIT)를 도입했다.


태양광 발전 설비가 급증하며

'재생에너지 붐'이 일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구조


하지만 2025년 현재 일본의 에너지 믹스는

사고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원전 비중은 6.2%로 2010년 28.6%보다 줄었지만

석탄 화력은 32.1%로 여전히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재생에너지는 22.9%로 늘었지만

정부 목표 36-38%(2030년)에는 한참 못 미친다.


2025년 에너지 현황: 목표와 현실의 괴리 - 전력 믹스의 현실


- 석탄 화력: 32.1% (2010년 25%)

- LNG: 35.6% (29.3%)

- 재생에너지: 22.9% (9.6%)

- 원자력: 6.2% (28.6%)

- 석유 등: 3.2% (7.5%)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이 줄어든 만큼

석탄과 LNG가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CO2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재생에너지의 한계


2012년 FIT 도입 후 태양광 설비는 급증했지만

2019년부터 설치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풍력발전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에너지 저장 기술 부족으로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한계가 있다.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들 - 전력회사의 기득권 구조


일본의 전력 시장은 오랫동안

지역별 독점 체제로 운영되어왔다.

도쿄전력, 간사이전력 등 10개 전력회사가

각 지역을 독점했다.


2016년 전력 소매 완전자유화가 시행됐지만

신규 진입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2024년 기준 신전력 시장점유율은 20.9%로

독일 29%, 영국 27%보다 낮다.


기존 전력회사들은 석탄 화력발전소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급격한 전환을 꺼린다.


송전망 접속의 어려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송전망 접속이다.

기존 송전망은 대형 화력·원전 중심으로 설계되어

분산형 재생에너지에 적합하지 않다.


접속 비용도 높아서 소규모 사업자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2024년 태양광 접속 포기 사업이 전체의 23%에 달한다.


지역 갈등과 님비 현상


대규모 태양광·풍력 단지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빈번히 발생한다.

경관 훼손, 소음, 생태계 파괴 우려로

반대 운동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한 해에만 47건의 재생에너지 관련

주민 갈등이 발생했다.


원전 재가동의 딜레마 - 안전성과 경제성 사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엄격해진 안전 기준으로

원전 재가동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2025년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10기에 불과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0-22%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노후 원전의 폐로 비용만 13조 엔에 달한다.


여론의 복잡한 변화


원전에 대한 여론도 복잡하다.

2024년 여론조사에서 '탈원전' 지지는 52%로

2011년 76%보다 크게 줄었다.


전력 요금 인상과 공급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석탄 화력의 지속: 경제적 현실 - 청정석탄 기술의 한계


일본은 '청정석탄'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초초임계압(USC),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 등

고효율 기술을 도입했다.


하지만 아무리 효율을 높여도

석탄은 근본적으로 CO2 배출량이 많다.

국제사회의 '석탄 퇴출' 압력도 거세다.


경제성의 함정


기존 석탄 화력발전소의 감가상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폐쇄는 큰 손실이다.

전력회사들은 가능한 한 오래 운영하려 한다.


2024년 기준 석탄 화력의 kWh당 발전원가는

10.3엔으로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지역별 에너지 격차 - 재생에너지 잠재력의 불균형


홋카이도와 규슈는 풍력과 태양광 잠재력이 크지만

전력 소비지인 도쿄권과 멀리 떨어져 있다.

광역 송전망 구축이 필요하지만

비용과 지역 갈등이 문제다.


또한 석탄 화력발전소가 있는 지방에서는

폐쇄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역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키시의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가 결정되자

1,200명이 실직할 위기에 처했다.


탄소 중립 목표와 현실 - 2050 탄소 중립 선언


2020년 스가 정권은, 2050년을 목표로 한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기시다 정권도 이를 계승하며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정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구체적 로드맵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2030년 중간 목표인 46% 감축(2013년 대비)도

달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기업의 대응과 한계


일본 기업들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에

참여하고 있지만 진전이 느리다.

2024년 RE100 참여 일본 기업은 73개로

독일 143개, 미국 189개보다 적다.


특히 제조업 대기업들은

안정적 전력 공급을 우선시해

재생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이다.


성공 사례와 교훈


- 덴마크 사례의 시사점


덴마크는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40여 년에 걸쳐 에너지 전환을 이뤘다.

2023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83%에 달한다.


핵심은 장기적 비전과 일관된 정책,

그리고 사회적 합의였다.

탄소세 도입, 에너지 효율 향상,

풍력 발전 집중 육성이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 독일 에너기벤데의 교훈


독일의 에너지 전환(Energiewende)도

20여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다.

2023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52%에 달했다.


하지만 전력 요금 상승과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부작용도 겪었다.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전환을 밀어붙인 정치적 의지가 중요했다.


미래를 위한 과제들 : 송전망의 근본적 재편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시스템으로 가려면

송전망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 에너지 저장 시설,

광역 연계망 구축이 필수다.


에너지 전환에는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전력 요금 상승, 일부 지역 경제 타격,

생활 방식 변화 등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진정한 전환이 어렵다.


차세대 태양광, 해상 풍력, 수소 에너지,

에너지 저장 기술 등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의 150조 엔 GX 투자 계획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일본이 직면한 선택


2025년 일본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성을 우선하며 기존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과감한 전환을 단행할 것인가.


후쿠시마 사고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국제사회 압력을 고려할 때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문제는 속도와 방법이다.

일본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현명하게

이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지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오늘의 교훈


에너지 전환 지연은 미래 경쟁력을 위태롭게 한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인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와 국제사회 압력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한국도 원전과 재생에너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의 지연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에너지 전환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다음 화 예고


25화에서는 한국의 일본화는 진행 중인가 – 위험 신호들을 다룹니다.

일본이 겪었던 구조적 문제들이 현재 한국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3부 24화. 후쿠시마 이후에도 원전을 포기 못하는 일본 – 탄소 중립과 경제 성장의 딜레마

(이 글은 일본 경제산업성 2024년 에너지백서, 환경성 2025년 탄소중립 보고서, IEA 2024년 일본 에너지전환 분석, 산업통상자원부 2025년 신재생에너지 정책 비교연구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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