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2만 달러를 벌어도 저축 못 하는 이유
30화. 중산층은 어떻게 사라졌나
― 연봉 22만 달러를 벌어도 저축 못 하는 이유
2025년 12월, 캘리포니아주 샌호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마크(38세)와 간호사 제시카(36세) 부부는 합산 연봉 22만 달러를 번다.
미국 가구 중위소득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통계상으로는 상위 20%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의 월 가계부를 보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월 소득(세후): 1만 3,500달러
월 지출:
주택담보대출: 4,200달러 (180만 달러 집, 금리 6.5%)
자동차 할부: 850달러 (두 대)
학자금 대출: 1,100달러 (두 사람 합산)
건강보험료: 950달러 (회사 지원 제외 본인 부담분)
보육비: 2,800달러 (두 자녀)
식비·생활비: 2,000달러
기타 (보험, 통신, 유류비): 900달러
총 지출은 1만 2,800달러다.
남는 돈은 700달러가 전부다.
이 700달러로 의복비, 외식비, 의료비, 자동차 수리비, 비상금을 감당해야 한다.
저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크는 말한다.
“우리는 가난하지 않아요. 하지만 여유도 없어요.
한 달 월급이 끊기면 모든 게 무너져요.”
퓨리서치센터가 정의하는 중산층(중위소득의 67~200%)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1971년: 중산층 61%, 상류층 11%, 하류층 27%
2000년: 중산층 55%, 상류층 17%, 하류층 28%
2023년: 중산층 51%, 상류층 19%, 하류층 30%
50년 만에 중산층이 10%포인트 감소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10%가 어디로 갔느냐다.
수치만 보면 8%포인트가 상류층으로 올라가고, 3%포인트가 하류층으로 내려갔다.
즉 중산층을 이탈한 사람 중 더 많은 수가 위로 올라간 셈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좋은 소식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중산층 전체가 버는 소득의 비중은 1970년 전체 가구소득의 62%에서 2022년 43%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상류층의 소득 비중은 29%에서 48%로 치솟았다.
숫자상 중산층에 속해 있어도, 그 계층이 실제로 누리는 경제적 파이는 반토막이 났다.
체감은 더 심각하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 또는 상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002~2006년 평균 61%에서 2024년 54%로 하락했다.
통계상 중산층이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1970년 디트로이트 GM 공장 노동자는 연봉 1만 달러를 벌었고, 집값은 2만 5,000달러였다. 연봉의 2.5배였다. 30년 모기지로 월급의 25%를 내면 집을 살 수 있었다.
2025년 샌프란시스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연봉 15만 달러를 벌지만, 집값은 180만 달러다. 연봉의 12배다. 금리 6.5%로 대출받으면 월 상환액이 5,000달러를 넘는다. 월급의 40%가 넘어간다.
집값 대비 소득 배율의 변화 (전국 평균):
1970년: 2.3배
2000년: 3.1배
2024년: 4.7배
전국 평균이 이 정도고, 대도시는 훨씬 더 심각하다.
로스앤젤레스 12.5배, 샌프란시스코 9배, 뉴욕 9.8배.
집을 사는 게 아니라 평생 빚을 지는 것이다.
주택 구매는 이제 젊은 시절의 꿈이 아니다.
미국 첫 주택 구매자의 중위 연령은 2025년 기준 역대 최고인 40세를 기록했다. 5년 전(2021년) 33세에서 불과 4년 만에 7세나 높아진 것이다. 첫 집을 사는 사람의 비율도 전체 주택 구매자의 21%로 역대 최저를 갱신했다.
집 살 엄두조차 못 내는 젊은 세대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미국 개인 파산 사유 중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다수의 연구에서 파산 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의료비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건강보험이 있어도 파산한다.
시나리오: 제시카의 유방암 진단
치료비 총 15만 달러라고 가정하자.
공제액: 5,000달러 (전액 본인 부담)
나머지 14만 5,000달러의 20%: 2만 9,000달러 (본인 부담)
총 본인 부담: 3만 4,000달러
여기에 연간 보험료 7,000달러를 더하면 연간 4만 1,000달러가 의료비로 나간다. 마크 부부 연봉의 19%다.
더 끔찍한 것은 네트워크 외(Out-of-Network) 문제다. 응급실에 실려 가서 당직 의사가 보험사 계약 의사가 아니었다면 전액 본인 부담이다. 2023년 한 환자는 맹장 수술을 받고 6만 2,000달러 청구서를 받았다.
1980년 주립대 순수 등록금(tuition & fees)은 연 2,550달러였다.
최저임금으로 여름방학 3개월 일하면 등록금의 73%를 벌 수 있었다.
2024년 주립대 순수 등록금은 연 평균 1만 1,600달러다. 여기에 기숙사·식비 등 생활비를 더한 전체 재학 비용(Total Cost of Attendance)은 약 2만 7,000달러에 달한다. 최저임금으로 여름방학 3개월 일해도 전체 재학 비용의 13%밖에 못 번다.
등록금 상승률 vs 물가상승률 (미국 노동통계국 CPI 기준):
1980~2024년 소비자물가지수: 약 3.5배 상승
같은 기간 대학 등록금 관련 물가지수: 약 13배 상승
등록금이 물가보다 거의 4배 빠르게 올랐다. 2025년 말 기준 미국 학자금 대출 총액은 1조 8,4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2024년 대학 졸업생의 학자금 대출 평균 잔액은 약 3만 달러 수준이다.
미국인들은, 사회생활을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
중산층 붕괴의 근본 원인은 생산성과 임금의 괴리다.
EPI(경제정책연구소) 실질 데이터 (1979~2025년):
생산성 증가: +86%
일반 노동자 시간당 임금 증가: +32%
회사는 86% 더 많이 생산해 돈을 벌게 됐는데, 노동자에게 돌아간 몫은 3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생산성이 임금보다 2.7배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이윤과 자본소득으로 갔다.
동시에 고용 안정성도 사라졌다. 1979년 미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11년대였다. 2024년 25~34세 노동자의 중위 근속연수는 2.7년이다. 한 직장에서 평생을 다니는 모델이 붕괴했다.
긱 이코노미의 확산도 중산층을 위협한다. 광의의 개념으로 미국 노동자의 36%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긱 워크를 하고 있다. 우버 기사, 배달 라이더, 프리랜서.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디지털 일용직이다. 건강보험도, 유급 휴가도, 퇴직금도 없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 출신 엘리자베스 워런은 저서 맞벌이의 함정(The Two-Income Trap)에서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오늘날 맞벌이 부부는 한 세대 전 외벌이 가정보다 소득이 75% 더 많다. 하지만 가처분소득—실제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오히려 25% 더 적다.
세금: 누진세 구간 상승으로 더 많이 낸다
보육비: 아이를 맡겨야 하니 월 2,000~3,000달러가 나간다
주거비: 좋은 학군 집을 사려다 보니 비싼 동네로 간다
차량: 출퇴근용 차가 두 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맞벌이 부부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1970년 외벌이 가정보다 오히려 적다.
더 큰 문제는 리스크다. 외벌이 때는 한 명이 실직해도 다른 한 명이 예비군으로 나설 수 있었다. 맞벌이는 이미 둘 다 풀가동 중이다. 한 명이 아프거나 실직하면 가계 경제가 즉시 붕괴한다.
한국도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통계청 기준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줄어, 2026년 기준 약 59~62%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국의 세 가지 덫:
1. 주거비 폭등: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15년 약 5억 원에서 2024년 약 12억 원 수준으로 2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가구소득은 1.3배만 올랐다. 서울의 주택가격 대 소득 배율(PIR)은 2024년 기준 13.9배에 달한다. 중위소득 가구가 전혀 소비하지 않고 월급을 모아도 14년 가까이 걸린다는 뜻이다. 부모 찬스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2025년, 서울 아파트값은 전년 대비 다시 13.5% 추가 상승했다.
2. 사교육비 지옥: 2024년 기준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000억 원으로 4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학생 수는 오히려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10년 전보다 60% 늘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체 평균 47만 4,000원,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만 놓으면 59만 2,000원이다. 강남은 월 2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노후 자금을 털어 아이 학원비로 쓴다. 에듀푸어가 양산된다.
3. 노후 파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에 불과하다. 한국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39.7%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OECD 평균 14.8%의 두 배 이상). 최근 2024년 통계에서 35.9%로 3년 만에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OECD 1위다. 50대에 조기퇴직하면 30년 소득 공백기가 생긴다.
“중산층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벼랑 끝이다.”
1970년 중산층이란, 성실하게 일하면 내 집 마련하고 은퇴 걱정 없는 삶을 의미했다.
2025년 중산층은 매달 카드값 걱정하며, 아프면 안 되고, 해고당하면 끝장인 삶을 의미한다.
연봉 22만 달러를 벌어도 저축을 못 하는 이유는 주거, 의료, 교육이라는 세 개의 덫 때문이다. 이 비용들이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올랐다. 시스템이 중산층의 지갑을 털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29화에서 상위 1%가 31%를 독점하는 구조를 봤다면, 30화에서는 나머지 99% 중에서도 허리인 중산층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봤다. 중산층이 사라지면 사회는 상류층과 빈곤층으로 양극화된다.
기회의 나라는 이제 세습의 나라가 되었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양극단만 남은 사회는 분열과 혐오로 치닫는다. 트럼프 현상, 브렉시트,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은 우연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린 중산층의 비명이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동안, 자산 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주식 부자만 더 부자 되는 구조”
상위 10%가 주식의 89%를 소유한다.
Fed가 돈을 풀면 주가가 오르고, 그 돈은 고스란히 상위 10%에게 간다.
하위 50%가 보유한 주식은 전체의 1%도 안 된다.
31화에서는 자산 가격 상승이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지, 그리고 자산 인플레이션이 만든 K자형 회복의 잔인한 현실을 파헤칩니다.
[달러 제국: 파월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불평등이 시스템인 사회
4부 2화 (시리즈 30화). 중산층은 어떻게 사라졌나
(이 글은 Pew Research Center “The State of the American Middle Class” (2024), Federal Reserve “Report on the Economic Well-Being of U.S. Households” (2025), Elizabeth Warren & Amelia Warren Tyagi “The Two-Income Trap”, Economic Policy Institute “The Productivity–Pay Gap” 데이터 트래커 (1979~2025),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Employee Tenure Summary” (2024),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College Tuition CPI” (1980~2025), LendingTree “Student Loan Debt Statistics” (2025), Construction Coverage “Cities with Highest Home Price-to-Income Ratios” (2024), 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 “2025 Profile of Home Buyers and Sellers”, Gallup “Steady 54% of Americans Identify as Middle Class” (2024), Kaiser Family Foundation 의료비 조사, 교육부·통계청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2025), 한국부동산원·KB부동산 서울 아파트 가격 통계, 국토교통부 주택실태조사 PIR 데이터,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보건복지부·국가통계포털 노인 빈곤율 지표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