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 투자했더니 평생 빚쟁이가 되었다
32화. 학자금 대출 1.83조 달러 덫
― 지식에 투자했더니 평생 빚쟁이가 되었다
2025년 5월, 뉴욕 브루클린.
변호사 사라(32세)는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하고 7년째 일하고 있다. 연봉은 12만 달러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학자금 대출 잔액은 23만 5,000달러다.
학부 4년에 6만 달러, 로스쿨 3년에 21만 달러를 빌렸다. 졸업 후 7년간 매달 1,200달러씩 갚았다. 총 10만 800달러를 갚았다. 그런데 원금은 겨우 3만 달러만 줄었다. 나머지 7만 800달러는 이자였다.
“이 속도로 가면 60세까지 갚아야 해요. 결혼? 아이? 집? 전부 포기했어요.”
사라는 미국 약 4,300만 명 학자금 대출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들이 짊어진 총 부채는 1조 8,300억 달러. 이는 미국 GDP의 6%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숫자다.
2025년 말 기준 미국 학자금 대출 총액은 1조 8,300억 달러(약 1.83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비교해보자.
전체 신용카드 부채는 약 1조 2,800억 달러다. 자동차 할부 대출은 약 1조 6,700억 달러다. 학자금 대출은 신용카드 부채보다도, 자동차 할부보다도 각각 더 크다. 주택담보대출(약 13.2조 달러) 다음으로 미국인들이 진 두 번째로 큰 빚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증가 속도다. 2006년 학자금 대출 총액은 5,210억 달러였다. 약 20년 만에 3.5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GDP는 1.7배만 증가했다. 학자금 대출이 경제 성장 속도의 2배로 불어난 것이다.
4,300만 명이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미국 성인 5명 중 1명이 학자금 대출자라는 뜻이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로 좁히면 3명 중 1명이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 한 세대 전체가 빚의 족쇄를 차고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대학 등록금이 미친 듯이 올랐기 때문이다.
1980년 미국 4년제 주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 2,550달러였다. 최저임금으로 여름방학 3개월 일하면 등록금의 73%를 벌 수 있었다. 2025-26학년도 공립 4년제 주립대 평균 등록금(생활비 포함 총 재학비용)은 연 약 2만 7,000달러 수준이다. 40년 넘게 10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물가는 3.7배 올랐다. 등록금 관련 비용이 물가보다 3배 빠르게 올랐다.
사립대는 더 심각하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같은 명문 사립대는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합치면 연간 9만 달러를 넘는다(2025-26학년도 하버드 총 재학비용 약 $90,730). 4년이면 36만 달러, 한화로 약 5억 원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베넷 가설(Bennett Hypothesis)이다.
1987년 윌리엄 베넷 교육부 장관이 주장했다.
“정부가 학자금 대출 한도를 늘리면, 대학들은 그만큼 등록금을 올린다.”
실제로 정부가 대출을 쉽게 해주자 대학들은 어차피 학생들이 대출받으면 된다는 논리로 가격을 올렸다.
완벽한 악순환이었다.
동시에 주 정부의 대학 지원금은 줄어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 정부들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대학 지원을 대폭 삭감했다. 대학들은 그 부족분을 등록금 인상으로 메웠다. 대학의 기업화도 한몫했다. 호화 기숙사, 최신 체육관, 스타 교수 스카우트 경쟁에 들어간 비용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었다.
학자금 대출의 가장 잔인한 점은 복리다.
사라의 사례를 다시 보자. 27만 달러를 빌렸다. 평균 금리 6.5%였다. 졸업 후 6개월 거치기간이 지나고 상환이 시작되었다. 월 상환액 1,200달러.
첫 달 상환 내역을 계산해보자:
월 이자: 23만 5,000달러 × 6.5% ÷ 12개월 = 1,271달러
월 상환액: 1,200달러
실제 빚 증가: 71달러
월 1,200달러를 갚아도 이자조차 못 갚는다. 원금은 계속 불어난다. 이것을 마이너스 상각(Negative Amortization)이라고 한다.
사라가 원금을 줄이려면 월 2,000달러 이상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세후 월급 8,000달러의 25%가 학자금 대출로 나간다. 집세, 식비, 교통비를 내고 나면 저축은 불가능하다.
더 끔찍한 것은 유예나 연체 시 자본화(Capitalization)다. 쌓인 이자가 원금에 합산되어 다시 이자를 낳는다. 10만 달러를 빌렸는데 졸업할 때는 12만 달러가 되어 있는 식이다.
미국에서 신용카드 빚, 의료비 빚, 사업 실패로 인한 빚은 파산 신청으로 탕감받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도 6번이나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만은 예외다.
2005년 파산법 개정으로 학자금 대출은 극심한 어려움(Undue Hardship)을 증명하지 않는 한 파산해도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극심한 어려움의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사실상 사지 마비나 식물인간 같은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인정받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학자금 대출은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가 되었다. 60대, 70대가 되어도 갚지 못하면 사회보장연금에서 압류당한다. 최신 연방 학생 지원 데이터에 따르면, 60세 이상 학자금 대출자가 약 350만 명에 달한다(62세 이상은 약 310만 명). 할머니가 되어서도 대학 등록금을 갚고 있는 것이다.
학자금 대출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연방준비제도 연구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자는 비대출자에 비해 결혼이 평균 7년 늦고, 첫 자녀 출산이 평균 5년 늦으며, 내 집 마련은 평균 10년 늦다.
결혼: 빚 4만 달러를 진 사람과 결혼하면 두 사람의 빚이 된다. 맞벌이 부부가 둘 다 학자금 대출이 있으면 합산 8만~10만 달러다. 결혼식 비용을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
출산: 아이를 낳으면 보육비가 월 2,000달러 이상 든다. 학자금 대출 상환액과 합치면 월급의 절반이 나간다. 많은 밀레니얼 부부가 출산을 포기한다. 미국 출산율은 1.60명 미만(2024년 CDC 확정치 1.599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인구 대체 수준(2.1명)에 한참 못 미친다.
내 집 마련: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DTI(총부채상환비율) 계산에서 학자금 대출이 포함되어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또한 학자금 대출을 연체하면 신용점수가 떨어져 주택담보대출 자체를 받기 어려워진다.
학자금 대출의 잔인함은 전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의대생은 평균 25만 달러를 빌린다. 하지만 졸업 후 평균 연봉이 30만 달러가 넘는다. 10년 안에 갚을 수 있다. 치과의사, 약사도 비슷하다. 빚이 많지만 소득도 높아 감당 가능하다.
반면 교육대학 졸업생은 평균 4만 달러를 빌리지만, 초등학교 교사 초봉은 4만 5,000달러다. 세금 떼고 나면 월 3,000달러 남짓이다. 여기서 학자금 대출 월 400달러를 갚으면 13%가 나간다. 20년 갚아야 한다.
사회복지학, 예술학, 인문학 전공자들은 더 비참하다. 졸업 후 평균 연봉 3만~4만 달러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소득연계상환제도를 선택한다. 소득의 10~15%를 20~25년간 갚고 나머지는 탕감받는 제도다. 하지만 25년은 인생의 절반이다.
2022년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승부수를 던졌다.
“1인당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겠다.”
약 4,3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정책이었다. 4,300만 명이 일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그 중 약 2,000만 명은 빚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추산되었다. 청년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발했다.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들은 바보냐?”
“대학 안 간 노동자가 대학 나온 엘리트 빚을 왜 갚아주냐?”
소송이 이어졌고, 2023년 6월 30일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HEROES법이 이 수준의 정책 결정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며 탕감 계획을 무효화했다(Biden v. Nebraska). 탕감은 무산되었다.
이 논쟁은 미국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공정성 대 구제. 대학 교육을 개인의 투자로 볼 것인가, 공공재로 볼 것인가의 싸움이다.
진보 진영은 학자금 대출은 세대를 옭아매는 불의한 구조라고 주장한다.
보수 진영은 성실하게 빚을 다 갚은 사람에게 불공정하다고 반박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하다.
한국에는 미국식 학자금 대출 폭탄은 아직 없다. 하지만 방향은 비슷하다.
한국의 학자금 대출 잔액은 2024년 기준 약 12조 원이다. 대출자는 약 150만 명으로, 대학생 10명 중 4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다. 1인당 평균 대출액은 1,800만 원 안팎이다.
한국의 등록금은 2000년대 중반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이후 동결·인하 정책으로 숨을 골랐지만, 여전히 중산층 가정에는 부담이다. 더 큰 문제는 생활비 대출이다. 등록금은 낮지만 서울에서 자취하려면 월 100만 원이 든다. 식비, 교통비, 교재비까지 합치면 월 150만 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위험은 미국과 조금 다르다. 미국은 등록금 + 대출이 문제라면, 한국은 등록금 + 취업난 + 저임금의 조합이 문제다. 졸업 후 안정적인 정규직을 얻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빚도 큰 짐이 된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체납액이 2024년 740억 원(2023년 661억 원 대비 11.9% 증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체납자 수도 5만 4,241명으로 2020년(3만 6,236명) 대비 49.7% 급증했다. 연봉 3천 신입이 월 25만~30만 원씩 10년 상환을 하다 보면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은 꿈이 된다.
“대학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지만, 이제는 계급 고착의 장치가 되었다.”
한때 대학은 가난한 집 자녀가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였다. 하지만 등록금 폭등과 학자금 대출 체제, 그리고 졸업 후 저성장과 비정규직 확대가 겹치면서, 대학은 빚을 동반한 티켓이 되었다.
29화에서 상위 1%가 31%를 독점하는 구조를 봤고, 30화에서 중산층이 생활비의 덫에 갇힌 모습을 봤으며, 31화에서 주식 부자만 더 부자 되는 구조를 확인했다. 32화에서 본 것은 그 모든 구조가 출발선부터 다르게 만드는 장치다.
부모가 학자금과 주거비를 지원해줄 수 있는 집의 아이는, 졸업 후 월급을 온전히 미래를 위해 쓸 수 있다. 부모 지원 없는 집의 아이는 월급의 상당 부분을 과거(빚)를 갚는 데 써야 한다. 그 차이가 5년, 10년 쌓이면 자산 격차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얼마나 빚 없이 출발하는가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가만큼 중요해진 사회다.
1.83조 달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 세대의 미래를 저당 잡은 족쇄다. 청년이 빚에 묶이면 경제 전체가 늙는다. 소비가 줄고, 창업이 줄고, 혁신이 줄어든다.
청년들이 빚에 허덕이는 동안,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저임금 7.25달러가 17년째 동결된 이유.
2009년 7월 24일, 미국 연방 최저임금이 시간당 7.25달러로 인상되었다. 그 후 17년간 단 1센트도 오르지 않았다. 같은 기간 물가는 45% 올랐다. 실질 최저임금은 30% 이상 하락한 것이다.
풀타임으로 일해도 빈곤선 아래. 두 개, 세 개 일자리를 뛰어도 월세를 못 낸다. 33화에서는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의 잔혹한 현실을 파헤칩니다.
[달러 제국: 파월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불평등이 시스템인 사회
4부 4화 (시리즈 32화). 학자금 대출 1.83조 달러 덫
(이 글은 Federal Reserve “Distribution of Household Wealth in the U.S.” 2024,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Quarterly Report on Household Debt and Credit” 2025 Q4, Federal Reserve “Changes in U.S. Family Finances” Survey of Consumer Finances,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실업률 통계, S&P Dow Jones Indices 자사주 매입 데이터,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기업 자사주 매입 보고서, Tax Policy Center 자본이득세율 분석, ProPublica “The Secret IRS Files”, US Department of Education “Federal Student Aid Portfolio Summary” 2025, College Board “Trends in College Pricing and Student Aid 2025”, Education Data Initiative “Student Loan Debt Statistics” 2026, Brookings Institution “The Student Loan Trap”, US Supreme Court Biden v. Nebraska 판결문 2023, CDC National Center for Health Statistics “Final Birth Data” 2024, National Consumer Law Center “3.5 Million Older Americans Have Over $125 Billion in Student Loans”, AP News “US Fertility Rate Reached a New Low in 2024”,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 통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 국세청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체납 현황 2024, 국회예산정책처 2024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 한국은행 가계금융복지조사,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