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외부와의 협업 건을 빠르게 마무리해야 해서 주말에 일을 했다. 그래서 반차를 냈고, 머리를 자르고 해가 있을 때 매봉산이나 하늘 공원을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슬랙에 퇴근하겠다고 동료들에게 얘기를 하고, 방에 들어가서 다섯 시간을 내리 잤다. 한 번도 깨지 않고, 꿈을 꾸지도 않고 푹 잤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벌써 해가 져서 깜깜해진 방 안에서 자는데 시간을 써버려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저녁을 먹고, 커튼의 클립을 사러 마트에 다녀오면서 산책을 좀 했다. 커튼을 바꿔 달고, 겨울에만 사용하는 커버로 이불과 베개를 바꾸고, 방을 쓸고 먼지를 닦았다. 좋아하는 향이 나는 룸 스프레이를 뿌려두고 캔들워머를 켰다. 오후와 저녁 내내, 긴 시간을 나를 보살피는데 썼다. 오랜만이었다.
올 한 해는 정말 여러모로 힘이 들었다. 언제나 사는 것은 녹록지 않지만, 올해는 유독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뭔가를 선택하고 견디고 또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맞는지 의심하고,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이게 우울일까, 아니면 몸이 좋지 않아서 느끼는 피곤인 걸까, 스스로 물어야 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번아웃인 것 같기도 하고.
꽤 오랫동안, 아마도 장마가 시작되던 지난여름부터, 뭔가를 생각하는데 시간을 쓰느라 나를 보살피거나 달래는 일들을 잘하지 못했다. 제때 옷장을 정리하고, 나를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것을 찾아서 하고, 가고 싶은 곳에 훌쩍 다녀오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스르르 잠드는 일 같은 것들. 언제였더라, 생각하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어제, 나를 위해 시간을 쓴 오후와 저녁을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를 지나며 내가 나에게 잘해주었다는 것을 언젠가 이 기록을 볼 나에게 알려주려고. 기록은 힘이 세고, 나를 잘 보살피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간 시간으로 이 시기를 기억하고 싶으니까.
11월 26일, 나를 위해 3630보를 걸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