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까
'빌 에반스 Like someone in Love, 바디샵 진저 샴푸, 애쉬크로프트 안경테, EBS 파워 잉글리시'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아 이 사람은 고전 재즈를 좋아하고, 두피가 좀 민감하며, 어떤 안경테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자주 쓰는 게 있고, 아침 출근길에 영어 라디오를 듣는구나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물론 위 브랜드를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나 적어도 브랜드를 통해 취향 엿보기가 가능하다.
단순히 브랜드로 취향을 한정 짓는 건 속단이다. 특정 언어를 구사하거나 옷 입는 스타일 외에 아메리카노에 샷을 몇 개 추가하는지도 취향이 될 수 있다. 주머니를 삐져나온 송곳니처럼 취향의 정수만 남겨 자신만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검은 터틀넥, 파란 청바지, 회색 뉴발란스' 하면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는 것처럼, 어떤 의도였든 유명인은 자신의 취향을 비즈니스에 적용한다. 그 사람이 유명하니까 아이콘화 되었다는 의문과 반발심이 들었다면 동의한다. 유명인이 아닌 우리의 취향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니.
취향은 자주 들여다보고 제법 시도해야 한다. 셰프가 내보이는 오마카세를 고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네타가 전갱이인지 도미인지 우니인지 알아야 추가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기에 익숙지 않을뿐더러 기존의 익숙함을 선호하고 그것을 본인의 기호로 치환한다. 삶은 감자를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나는 삶은 감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어떤 이는 너무 물리게 먹은 탓에 삶은 감자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관성에서 어긋날 때 비로소 취향은 생겨난다.
끈덕지게 파고들 때 취향의 문은 점점 커진다. 중2 시절 친구 MD플레이어에서 김동률 기억의 습작을 처음 접했다. 당시 노래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왠지 가수의 저음은 따라 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 들었고 그 이후로 김동률 음반을 파고 팠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거위의 꿈을 부른 경험은 대학에서 대중음악 창작 동아리, 전투경찰 밴드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플레이어가 여러 아티스트의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는 관객이지만, 베이스 기타를 쳐보고 노래를 불러본 경험은 내 취향을 문을 넓혀주어 지금에 이르렀다.
당신의 취향이 궁금하다. 회사와 가정의 쳇바퀴가 아니더라도 발붙이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글귀처럼 당신과 마주하고 싶다. 삶은 짧지만 같이 가기에 충분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