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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ug 01. 2024

달은 도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건데요!

 한 달 내내 비가 와서 양말이 젖을 때마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밤에도 30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사방에서 터져 나와 사우나에 갇힌 기분이다. 이럴 때면 두 글자만 떠오른다. 가을.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는 더위가 물러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별이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을철 밤하늘엔 별이 많다. 건조해지며 습도가 낮아져 대기 안정도가 좋고, 가을철 별자리들이 비교적 오밀조밀하기 때문에 별이 훨씬 많아 보인다. 게다가 숨겨진 딥 스카이(어두운 천체)도 많다. 외계인 모양으로 별이 모여있는 'ET성단'부터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 '안드로메다 은하'도 가을에 뜬다. 옛날 옛적 철이가 은하철도 999를 타고 엄마를 찾으러 갔던 바로 그 은하다. 가을 하늘은 보물 같은 천체들의 화수분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가을이었다. 깜찍한 단발의 초등학생 제자 정원이 물었다.


 "쌤, 근데 왜 달이 없어요?"

 "응, 오늘은 달이 없는 날이야."

 "네? 달이 없다고요? 밤인데 달이 없다니요?"


 어째서 달이 없냐며, 숨겨둔 달은 어서 꺼내놓으라는 말투다. "달은 자주 볼 수 있잖아. 오늘은 날씨가 엄청 좋아서 숨겨진 별들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달이 더 보고 싶어?" 물어도 그렇다며 끄덕인다. 이를 어쩐담.

 달은 하루에 약 50분씩 늦게 뜨고 늦게 진다. 어제 오후 7시에 떴다면 오늘은 오후 7시 50분에 뜨는 식이다. 이렇게 조금씩 밀리다 보니 어느 날은 달이 낮에 뜨고, 어느 날은 새벽에 뜨기도 한다. 달을 저녁시간에 볼 수 있는 날은 기껏해야 한 달에 열흘 남짓이다. 정원이 온 날은 달이 낮에 뜬 날이었고, 결국 아이는 얼굴에 실망을 새기며 돌아갔다. 달이 없는게 내탓은 아니지만 이런 순간엔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다음 달, 정원은 천문대에 거의 날아 들어오며 말했다.

 

 "쌤, 지난달엔 못 봤으니, 오늘은 볼 수 있겠죠?"

 "음... 오늘도 없어, 한 시간 전에 졌거든"

 "도대체 달은 언제 볼 수 있는 건데요!"


 정원은 아쉬움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묵직하게 날아와 가슴팍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무조건 달을 내놓으란다.

 이 좋은 가을날 어째서 정원은 달을 고집하는 걸까. 달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계절도, 날씨도, 심지어 장비에도 영향이 적다. 팔뚝 정도만 되는 망원경이 있다면 '낮'에도 관측이 가능하다. 240만 광년이나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대신 달이라니, 어리다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게 아닌가.

 


"우와 드디어 달이다!!!"

"응, 겨우 타이밍이 맞았네. 실컷 보렴"

"대박, 크레이터가 이렇게 잘 보이는 거였어요?”


 타이밍이 맞은 덕에 정원은 몇 달 만에 겨우 달을 볼 수 있었다. 세상 저렇게 환할까, 싶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있더라는. 그제야 어설픈 반성이 든다. '나의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보여주는 일이구나.'

  아버지에게 캐비어 드실래요, 김치찌개 드실래요? 하고 여쭤본다면 아버진 두말 않고 김치찌개를 고를게 분명하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게 꼭 귀하고 희소성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언제고 하늘에 떠있을 것 같은 달도, 아이들이 볼 때는 분명 의미가 다르다. 연신 눈을 떼지 못하고 보는 정원이처럼.


"쌤 이거 진짜 달 맞아요? 사진 붙여놓은 거 아니에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비비며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아이를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달 한번 진하게 보시네 이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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