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환경 생각하기
약 2주 전에 오래 기다리던 신축 아파트로 입주를 했다.
3년 전에 근무하던 부서에서 '청약넣는 방법'을 배우고, 청약캘린더를 들여다보고, 지자체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던 중에 알게 된 정보로 큰 기대 없이 넣었던 청약이 덜컥 되어버렸기에 이어진 일이었다.
땅 고르기부터 마감재 시공까지 3년을 기다리고, 사전점검을 하고, 하자보수 신청을 하고 신축아파트에 필요한 각종 시공과 우리 가족의 편의를 위한 시공까지 계약을 하고, 스케쥴 맞추고 오가며 살피고.
일은 시공업체가 하는데 정신은 내가 없고 바쁘고 그랬다.
이사날 짐을 뺄 때까지만 해도 비가 좀 오더니 사다리차 올리는 시간에는 멈추더라.
만두가 배려해서 나는 무거운 짐 하나 손대지 않고 이사를 잘 마쳤다.
(대신 입주 후 정리지옥에 빠져 우울해질 뻔 했다. 산같은 택배가 반가운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거 원.)
전에 쓰던 가구들, 가전들, 소품들 모두 세심하게 골랐고 쓰면서도 범용성 높다고 생각해서 계속 쓸 생각으로 이사를 했는데, 가져와 놓아보니 하나도 안 어울리고 어색하고 촌스럽더라.
결국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새로 사고, 사고, 사고, 또 버리고.
결과적으로 말도 안되는 2주를 보낸 것 같다.
내 기존 신념과 정반대인 삶을 살고 나니 약간의 자기혐오 같은 게 생겨버렸다.
왜 아파트를 짓고 이사하라고 세상이 부추기는지 알것 같다.
(결혼할 때도 똑같은 생각하긴 했음)
이사나 결혼같이 인생에 큰 이벤트가 없으면 사람들이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할 기회가 없다.
아주 좋은 핑계로 가전과 가구와 온갖 물건을 사들인다. 또 버린다.
자기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서비스를 큰 돈 주고 계약하고 이용한다.
그냥 세상의 물질 문명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와 명목으로 소비를 이어나가고 그에 따라 산업과 사회가 유지된다는 이해가 적립되었다.
여튼,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집에서 내가 원하던 서재를 꾸리고 앉아 기록을 남겨본다.
이사는 소비재 소비의 끝판왕 이벤트다.
결혼은 없는걸 채우기 위해 사는거지만, 이사는 기존 물건이 있어도 버리고 새로 살 정도의 대형 이벤트다.
이런 일들을 일년에 몇백만 호가 하고 있다니,
거리의 모든 가전제품 판매점이 '입주행사 전문점'을 표방하는 이유가 있었다.
결혼해라, 집 사라, 애기 낳아라 하는 이유가 다 있다.
세상의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이런 소비가 멈추면 세상이 멈추나?
그럼 그 많은 물질문명의 산업들은 어떻게 되나?
우리는 물질 소비에 기반하지 않은 산업을 준비하고,
이제 그만 지구를 위해서 물질 소비를 멈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 물질적인 것을 계속 쓰는 이상, 산업이 줄어들 리 없고 영리를 위해서 더 확장하려고 할텐데.
어디서 멈춰야, 끊어야 하는걸까 생각해본다.
하루 한번씩 큰 분리수거물품 산을 쌓아 배출하는게 지겹고, 스스로 혐오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분리수거를 해놓는다고 다 재사용 가능한 것도 아닐텐데.
분리수거는 그렇다치고 그냥 배출하는 폐기물의 총량으로 보면, 난 그냥 지구한테 인간쓰레기..
공동주택이 건폐율로 치면 녹지가 더 많을 수는 있는데, 그 외에 지구에 좋은 점은 모르겠다.
건설은 끝났으니 이후의 해답은 주민으로서 찾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르렀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