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지만 습관 정도는 바꿀 수 있는 것 같다.
18살까지는 책상에 귀신 나올 것처럼 모든 물건을 쌓아두는 버릇이 있었다. 말로는 무슨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항변했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무질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으면 스스로 기뻐하는 상황에 이르었다.
그때까지 나는 잘 정리된 책상은 상상한 적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도 두손두발 다 들고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고등학생이니만큼 마음 다부지게 먹고 공부해보려 하니 책상을 쓸 수 없는 현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마감을 앞둔 작가처럼 책상 위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앞 의자에 앉아 팔을 책상을 올려둘 수 있었는데, 이때의 기쁨은 단순히 청소를 끝낸 자의 상쾌함 정도가 아니었다.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책상과 의자와 책장과 서랍이 비로소 나에게 마음대로 사고하고 상상할 수 있는 머리 속의 여백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뻗는 팔에 아무것도 닿지 않을 수 있었다니, 이 공간을 누리지 못했던 내가 너무 한심하고 또 지난 시간이 후회될 정도의 쾌적함을 온 몸과 마음으로 만끽했다.
그 뒤로 옛날처럼 책상을 책무덤, 잡동사니 두엄으로 만드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돌아갈 이유가 없고 또 잘 정리된 공간은 나에게 무척이나 큰 만족감을 주었으므로. 그 책상에서 풀었던 문제집, 읽었던 책들과 들었던 라디오 방송 모두 나의 즐거운 친구들이 되어주었다.
가끔 나쁜 습관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때는 쓰레기섬 같았던 책상을 정리하던 길을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었던 그날의 내 기분과 실천은 오래된 습관을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저 우뚝 서서 올바른 습관과 건강한 삶의 태도, 정신을 가지는 나를 상상한다. 나의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본성은 구제가 불가능할 지라도 오늘의 습관을 내가 가다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설득한다. 십여년 전의 경험이 너무 강렬한 탓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쌓은 습관 변화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주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