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스튜디오, 네임다큐 시리즈 첫 번째.
**이 작품은 지난 6월 28일 서교동 이어진 플레이스에서 열린 최초 상영되었습니다.
**지구인스튜디오의 김태우 감독은 이 작품을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나는 공간을 초월할 수 있어요.”
특별히 더 조심스러운 작품들이 있다. 누군가가 걸어온 과정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다.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여러 매체에 의해 언급된 인물이나 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전기물의 경우에는 조금 낫다.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는, 내일에 대한 꿈을 키워가며 자신의 여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역시 쉽지가 않다. 그건 인물을 특정한 매체 안에, 하나의 프레임 속에 담고자 했던 관찰자나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했다는 사실. 세상에 흩어진 정수 가운데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와 같다.
다큐멘터리 <효정 : 소리로 보는 사람>은 2012년 설립된 지구인스튜디오의 새로운 시리즈인 ‘네임 다큐’의 첫 번째 작품이다. 누군가의 삶과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름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김태우 감독이 발견한 첫 정수에 해당하는 인물은 춘천의 클랑 포레스트를 이끌어가고 있는 음악 및 소리치료사 김효정 대표다. 그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일상의 소리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소리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이다. 이 작품은 소리로 세상을 마주하고, 또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그의 현재를 담아내고 있다. 과거의 시작점도, 미래의 마침표도 아닌 지금의 이야기다.
참고로 이번에 상영된 영상은 40분 분량으로, 추후 장편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정식 제작될 계획이다. 이 글은 상영회에서 짧게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처음에 기술한 바와 같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평가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상과 이에 대한 짧은 감상이다.
작품의 타이틀이 갖고 있는 ‘소리’라는 단어는 인물을 직관적으로 소개하기에 적합하면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이는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효정이라는 인물의 삶이 두 가지로 분리되어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다큐멘터리의 전면에 내세워지는 큰 주제 하나는 역시 ‘소리’에 관한 것이다. 인물이 삶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했을 때 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는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감독은 하나의 주제 의식 하나를 더 드러내고자 한다. (이 부분이 의도된 것인지, 대상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야겠다.) ‘돌봄’과 관련된 지점이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이 이야기는 ‘소리’와 ‘돌봄’ 두 주제에 의해 완성된다. 교차하며 초반부를 형성하던 두 주제 의식은 종국에 서로를 감싸며 하나의 상호보완적인 의미를 형성한다.
인물과 소리를 연결하는 지점 가운데 가장 큰 호기심은 극 중 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효정은 소리를 향하는 동안에 분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리라는 것도 결국에는 감각의 문제일 뿐인데 그 삶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이어지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소리에 예민하고 높은 반응도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영상이 아닌 상영 이후 있었던 대담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짧게 덧붙이자면, 소리와 관련된 활동을 통해 경험했던 순간들의 합이다. 아마도 소리라는 파동의 전달과 분리의 경험은 서로 마주하는 지점에서 효정이라는 인물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아니기에 정확한 워딩을 통해 사례를 제시할 수 없어 아쉬움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오감 가운데 소리(귀)가 유일하게 자의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기관이라는 사실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다른 감각은 의지에 따라 차단의 상태에 들어갔다가 수용인 상태로 옮겨가는 과정만으로 편차를 경험할 수 있다. 소리를 통해 유사한 감각적 편차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 귀를 기울이는 행동, ‘집중’하는 노력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 On-Off의 개념이 아니라 More effort에 가까운, 쉽지 않은 감각의 작동 원리가 우리의 삶과 닮은 것처럼도 느껴진다. 효정은 그런 시도와 노력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다.
효정과 소리에 대한 이야기 사이로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의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아이. 현재 인물의 삶에 놓여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이다. 나는 이 영역의 이야기를 ‘돌봄’의 주제가 새겨진 장면이라고 여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클랑 포레스트를 찾아 공간에 필요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그는 이 작품 속에서 ‘소리’를 가장 잘 듣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일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공명하는 소리와 더불어 타인의 비언어적인 소리, 구하고 또 구해야 하는 소리까지 듣는 행위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딸을 돌보는 효정의 모습에서도 동일한 장면이 반사(Reflection)된다. 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길고양이를 돌보는 가족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기 위한 행위 이전에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리에 집중하는 행위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이 자리에서 소리와 돌봄의 주제는 서로를 마주한다. ‘소리를 향하는 행위’가 개인의 내면과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누군가를 돌보는 행위’는 타인의 상태와 감정에 집중하고 공감하는 일이 된다. 신체적으로는 모두 성장했지만, 이제 정신적인 부분의 성장이 남았다는 효정의 말도 여기에서 연결된다. 이 글의 처음에서 소리라는 단어는 이야기를 전부를 담지 못한다고 표현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하나의 단어로 회귀하며 돌아온다. ‘소리’다.
성장은 무엇에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잃어버린 감각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는 동안에 소리가 뚜렷해지는 것 역시 다르지 않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소리에 가까워지고, 그 소리를 통해 내면에 다다르게 되고 나면, 더 넓은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타인을 돌보는 일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효정 또한 소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저 곁에 놓인다고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의 소리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힘 있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김태우 감독은 자신의 여력이 되는 한, ‘네임 다큐’ 시리즈를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밝혔다. (정확한 편 수를 언급했으나 박제하기보다는 그저 지켜보고자 한다.) 누군가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과 멈추지 않겠다는 포부를 믿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대상자의 삶을 관통하는 도구적 개념과 더불어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따뜻한 온기를 찾아내 연결하는 그의 작업들을 말이다.
해당 작품의 장편 제작 및 '네임 다큐 시리즈'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