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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여젼 Jun 29. 2024

02. ‘합석’을 통해 어색함의 새로운 면을 배우다

29살, 퇴사하고 세계여행

 여행 2일 차, 장기 여행자의 특권으로 늦은 점심에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숙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방콕 왕궁’이다. 나름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ESTJ 답게 왕궁으로 걸어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로 계획을 세우고 구글맵을 보며 열심히 걸었다. 걷다 보니 마주한 복잡한 교차로.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길 계속 기다려도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눈치껏 같이 건너기라도 할 텐데 도통 알 수 없는 태국의 도로 상황이었다. 그렇게 건널까 말까 갈등하고 있을 때 현지인분이 신호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건너는 모습을 발견했다. 눈치껏 따라 건너며 태국 문화를 하나 배웠다.  


 구글맵에서 점심을 해결할 적당한 식당을 찾아보는데 맘에 끌리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탐마삿 대학교’. 대학가라면 저렴한 맛집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가봤다. 마침 현지인들의 점심시간이었는지 길거리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바글바글했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New Yong Hua Phochana  @Bangkok, Thailand


 중국식 오리 BBQ와 튀긴 돼지고기가 올라간 덮밥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두 가지를 다 맛보고 싶어 오리와 돼지고기 모두가 올라간 메뉴를 선택했다. 한 입 먹는 순간 '여긴 찐 현지인 맛집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기, 밥 그리고 소스가 너무 어울렸고, 무엇보다 데친 청경채로 보이는 나물이 마치 김치처럼 느끼함을 싹 잡아줬다.


감탄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앞에 앉았다. 


 그분이 태국어로 몇 마디를 건네셨는데 ‘합석해도 될까요?’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니 태국 사람들에게 합석은 자연스러운 문화인 듯하여 태국어를 모르는 나는 미소로 답했다.


 합석 후, 어색한 상황이 싫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항상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인 ‘나’이기에 괜히 혼자 그분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편히 본인 식사에 집중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며 어색함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나는 ‘어색함 =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나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쁜 어색함을 타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먼저 말을 걸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어색함’을 괜히 내가 말을 건넴으로써 오히려 다른 불편함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기에 내 관점에서만 비롯된 괜한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국의 합석 문화를 통해 어색함의 새로운 면을 배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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