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이런 사회, 그런 사회로 가기도 싫다. 그러나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박헌영 동지가 대학원으로 끌려갔다고 하오. 전해 듣게 된 그 흉한 소식.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이었다. 그때, 휴학을 하기로 서로 사이에 말이 맞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얼이 빠져 주저앉을 참에 난데없이 밧줄이 내려온 것이었다. 그때의 기쁨을 그는 아직도 간직한다. 설득자들 앞에서처럼 시원하던 일이란, 그의 지난날에서 두 번도 없다.
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자들이 앉아 있고, 포로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후줄근한 대학원생들과, 양복을 입은 교수가 한사람, 합쳐서 다섯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대학원생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동무,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휴학.”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대학원생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휴학도 마찬가지로 비전이 없는 일이요. 회사원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오. 펑펑 놀면서 돈이나 써댈 것, 전문성도 쌓이지 않는데 어째서 휴학을 한단 말이오?”
“휴학.”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당신의 인생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이오. 지금 대학원에서는 유래 없이 인력이 부족하오. 다시 말해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들을 동무가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기회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거요?”
“휴학.”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대학원생이 나앉는다.
“동무, 지금 대학원에서는, 신입생을 위한 특별 장학금 제도를 냈소. 동무는 누구보다도 먼저 장학금을 타게 될 것이며, 최신 트랜드를 따르는 과제를 수행하게 될 것이오. 전체 대학원생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실험실의 집기들도 동무의 개선을 반길거요.”
“휴학.”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대학원생이, 다시 입을 연다
“동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학부 생활에서, 직장인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대학원은 동무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동무가 학부 연구생으로서 교수님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동무는…….”
“휴학.”
교수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대학원생은, 증오에 찬 눈초리로 명준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포로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네 학점은 얼마인가?”
“…….”
“음, 3.6이군.”
설득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휴학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취업보다 나은 게 어디 있겠어요. 휴학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시간낭비 하지 말고 취업할 껄 그랬다고 후회한다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직장 생활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회사원은 월급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이 월급이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학부 연구원 생활과 인턴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휴학.”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학교 내 학부의 한 사람이, 원룸 방 안에서 쭈그리고 있겠다 나서서, 선배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에 2천만 회사원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취업시키라는……”
“휴학.”
“당신은 인턴까지 한 지식인입니다. 회사는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회사를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휴학.”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종기가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무식한 사람 열을 잃는 것보다 더 큰 회사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회사의 품으로 돌아와서, 회사를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궁상맞게 가족 눈치보느라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회사에 지원하는 경우에, 쪽집게 면접 질문 리스트를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명준은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휴학.”
설득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임원를 돌아볼 것이다. 임원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휴학. 아무도 하지 않는 시간.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연락 한 번 오지 않는 시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를 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차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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