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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Dec 13. 2019

반디와의 10년

  5. 이사

 



5. 이사(2)


 이사 전 상가 2층을 수리했다. 오래된 집이고 계속 비어있었으므로 대대적인 보수와 개축이 필요했다. 평수가 좁아서 가급적 훤하고 깨끗한 컨셉으로의 수리가 필요했다.

  이 집에 대해 이모는 오래전부터 계획이 있었다. 우리들이 다 대학생이 되어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지면 여기에 작업실을 만들려고 했다. 이모는 언젠가는 와 있을 곳에 좀 미리 온 것 뿐이라고 했다.

  피터는 이사 가기 전 우리에게 이 상황을 말했다. 극기 훈련처럼 작은 집에서 살아봐야 한다거나 가족 간의 친밀감을 위해 좁은 공간을 택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기엔 우리들이 어리지 않아서 모든 것을 사실대로 알려주기로 한 것 같다. 피터가 말하고 이모는 중간 중간에 설명을 했다.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미움을 가질까봐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보였다. 설명 끝에 돈 때문에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집이 좁아지면 넓은 평수에서 쓰던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이 문제겠지만 이모는 평소 꽤 검소했기 때문에 장식을 위한 물건들을 사들이지 않았으므로 물건은 많지 않았다. 다만 네 개의 방에서 세 개의 방으로 들어갈 가구를 정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방의 크기는 셋을 합해서 하나로 만들어도 될 만큼 작았다. 

이모와 피터, 마리와 나, 요섭이 각각 방을 쓰면 될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모는 성장기 청소년에게는 혼자만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우리에게 방을 하나씩 주고 이모와 피터는 거실을 방으로 만들어서 쓰겠다고 했다. 이모는 좁은 방의 장점은 집중이 잘되고 아늑한 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나서 다들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피터는 너희들 거실에 나올 때마다 노크하고 나와야 한다며 진지함을 과장했다. 

그러나 이사를 하던 날은 좋지 않았다. 이삿짐센터에서 온 사람들은 공손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 보인다는 것으로 뭐라 할 수는 없어서 나쁜 심기를 삼키고 있었는데 미리 그려놓은 가구배치도를 무시하고 짐을 놓으려 했으므로 이모가 배치도대로 놓아달라는 요구를 하고부터는 드러나게 퉁퉁댔다. 거실에 매트리스와 그 외 안방의 용도에 쓰일 모든 것들이 들어오도록 설명을 했을 때 애들을 한방에 몰거나 남녀가 같이 방을 쓰는게 옳지 이런 방 배치는 어이가 없다는 말을 드러내놓고 했다. 

넓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는 우리가 보기에도 망해나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거라고 피터는 얼굴이 울그락불 그락 해졌다. 피터의 말이 맞다는 증거는 처음에 짐을 싸러 왔을 때는 이모에게 사모님소리를 연발하며 비위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언덕 위 작은 집에 트럭을 세우고부터 태도가 달라졌으니 피터의 짐작이 틀림없다. 이모는 냉정하고 무서운 얼굴이 되어 그 사람들에게 일을 딱딱 지시했다. 이모의 그런 모습은 평소엔 절대 볼 수 없는 것으로 화가 많이 났다는 뜻으로 뭔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위엄이 있어 보였다. 

그 뒤로 이삿짐 정리는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해 보이지만 나와 마리는 눈이 마주 칠 때마다 키득거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피터까지 웃음을 참고 있는 기색이 보였으며 나중엔 이모의 표정도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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