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커플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문 앞 종이에는 손글씨로 초건전이라고 적혀있었다. 좌우가 반전된 초보운전 글씨처럼 테이프로 대강 붙여둔 초건전 글씨가 주는 위화감이 있었다. 사장님은 족욕이 서비스라며 권했다. “물 온도 어떠세요?” 사장님이 물었다. “조금 뜨거운데요.” 발을 살짝 넣어본 내가 답했다. 사장님은 깔깔 웃으며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불 꺼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옷을 갈아입으면 태국 마사지사들이 방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젊었다. 서로 태국말로 뭐라고 수군거렸으나 한국말에는 서툴렀다. 말이 통하는 둘과 말이 통하지 않는 둘이 한 방에 그렇게 있었다.
마사지를 시작하기 전에 그들은 다이얼을 돌려 천장 조명의 조도를 낮췄다. 어둡지만 몸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 조명을 바라봐도 눈이 부시지 않은 정도, 신체가 맞닿아도 당황스럽지 않을 정도. 마사지가 시작됐다. 수건 위에서 그녀의 엄지손가락, 손바닥, 무릎, 팔꿈치, 발꿈치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은 때로 우리 몸 위에 올라가 무릎으로 중심을 잡기도 했으며 천천히 손바닥으로 쓸어왔다 쓸어가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의식을 위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어둠 속을 헤엄쳐 나아가는 물고기 같았다. 그들은 자주 고개를 들어 천장의 조명을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은 위로 올라가려 할 때 위쪽의 밝은 빛을 따라서 올라간단다. 그들도 그럴까?
삶이 벅찬 어떤 날 그들은 그 위로 헤엄쳐 올라가는지도 모른다. 천장 조명을 따라 올라가 푸른 바다를 만나는지도 모른다. 말이 없는 바다에서 계속해서 밝은 빛을 쫓아 빠르게. 더 빠르게. 마침내 수면에 닿아 뛰어오르면 숨이 막힐까, 숨이 트일까?
정말 그런 바다가 있다면 그들은 왜 돌아오는 걸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한낮이었다. 눈을 찌푸리면서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마사지를 받은 팔다리가 흐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