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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련 이다겸 Oct 10. 2021

색깔과 감성

   전화 한 통이 왔다. 20대 회사에 근무할 때 상사로 모셨던 K 선생이다. “2시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는 생각지 않은 만남이라 반가우면서 의아하다.      

내가 근무했던 직장은 직원들이 많은 사무실이었다. K 선생은 우리 회사에 오기 전 신문사에 근무하다 이직을 한 분이라고 하였다. 나도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K 선생 역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회사에서는 쓴소리 된소리를 마니 해 인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회사 중역들은 자칫 하면 K 선생으로부터 뜸 배질당할까 봐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의식이 있고 혼자만의 특유한 색깔과 감성을 지닌 멋진 분이었다. 직원들과 독서회를 만들어 책도 읽고, 등산하는 모임을 만들어 즐겁게 지냈다. 투명하고 선명한 걸 좋아하며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분이라 그때 이분의 색깔은 하늘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터미널에서 K 선생을 만났다.  사무실로 모시고 와 차 한 잔을 대접했다. 다른 모임에 가기 전에 잠시 들렸다고 한다. 몇 년 전 만났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직 카리스마도 있고 성격은 여전하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해부터 스쳐 지나는 인연은 스쳐 가도록 두자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소통이 되는 사람들, 곁에 두고 싶은 지인들은 안부도 전하고 먼저 연락을 하고 챙긴다.  

  20대 어느 날, 하루는 된장이 없다고 해 엄마한테 부탁했다. 작은 항아리를 비워 통째로 다 담아 주며 “나이를 불문하고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게 참 좋은 인연이고 행운이다.”라고 했던 엄마 이야기가 떠오른다. 된장에 대한 고마움과  딸 사랑이 남달랐던 엄마를 기억해 만나면 늘 대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K 선생과는 결혼하고 한 동안 소식을 나누지 못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 언니와 연락이 닿아 인연이 다시 연결되었다.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행복을 주는 지인들 소식을 전하며 예정된 만남은 아니었지만 잠시 과거의 추억을 나누는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 월요일 전화가 왔다. “본인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자기를 기억해 주고 이토록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 고 말했다.

  이제는 마음을 비우니 욕심도 없어지고 가벼운 삶을 살고 있으니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냐고 한다. 평소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나이는 묻지 않았지만 팔순이 휠 씬 지난 것 같다.

   부산 가고 있다.라는 전화를 어느 날 또 받았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이사를 해서 바다가 보이는 고즈넉한 시골 동네에 부부가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이사하고 평소 아끼던 지인들 부부만 초대한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는 다른 일정으로 참석을 하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오라는 초대장은 ‘기간이 없다.’고 한다. 가까운 시일에 만남의 해후邂逅를 가질 예정이다.     

  나에게는 항상 용기를 북돋아 주고 문학 열정을 불어넣어 주시는 멘토 S 작가님이 곁에 있어 힘이 된다. 늦깎이로 시작한 대학원 수업에 지친 나에게 어느 날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나이가 많던 적든 피가 끊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는 이론가가 아니었다. 그는 손수 책 한 권도 쓴 일이 없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외치고, 걷고, 가르치고, 도와주면서 살았다. 그는 제자들 발을 씻겨 주었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행동파였다. 꿈을 가져라, 그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며, 최선을 다하라. “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만나면 반갑고 정겨운 사람들, 바쁘면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는 행복을 주는 만남, 믿음과 신뢰를 주는 좋은 분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다.


  삶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고 하루의 선택이 모여 나의 역사가 된다. 내 삶의 색깔은 무엇일까, 가끔씩 삶을 돌아보며 계획도 세우고 편안한 쉼을 한다. 또 다른 내일은 어떤 색깔의 삶을 감성으로 채울지 설렘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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