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오랜만에 비 오는 토요일을 맞이한다. 덥다 덥다 그렇게 더운 날들을 견디니 비가 온다. 잿빛 비구름으로 날은 어둡고 흐리지만 비 맞으며 살랑살랑 거리는 나뭇가지가 경쾌한 빗소리를 보여준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지만 1년에 몇 번 좋은 날들이 있는데 오늘이 아마 그날이 될 것 같다.
어제는 가족과 함께 수영장엘 다녀왔다. 7월 성수기가 되면 사람도 많고 가격도 비싸 여러모로 불편해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이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평일에 다녀왔다. 오전 느지막이 갔는데도 자리가 여유가 있었다. 오늘 비가 오려고 했는지 어제의 햇살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고 오후쯤 되니 꽤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했다.
어제저녁엔 피곤해서 일찍 곯아떨어졌다. 늦은 아침 일어나니 온몸이 쑤신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예전처럼 신나게 논 것도 아닌데,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해야 할 일이 있어 카페에 왔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카페에서 일하는 게 좋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별로 맛있지 않은 프랜차이즈 커피지만 그래도 시원한 청량감이 비 오는 바깥 풍경과 제법 어울린다.
사계절이 특징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혈질적인 성격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봄 됐다고 바로 여름이 되고 가을이 오면 바로 또 겨울이 오는 1년에 네 계절을 견디고 겪어야 하는 우리는 누구보다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봄옷 몇 번 입으면 여름으로, 또 가을로 겨울로 매번 옷을 바꿔 입어야 하니 말이다.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거다. 계절이 하나인 나라에 비해 기본적인 삶 외에 많은 걸 신경 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1년 365일이 생각보다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힘든 일들을 마주하기도 하고 반면에 세상 즐거울 때도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힘듦과 즐거움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고. 그런데 힘든 일들로 재밌는 일이 생길 때도 있고, 재밌는 일 때문에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다. 그림, 디자인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때엔 이 일 때문에 힘든 경우가 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다가도 보람되는 경우도 있고 즐거운 일도 생긴다. 그러고 보니 뭐가 힘든 일이고 뭐가 재밌는 일인지 모르겠다. 결국 삶이란 양푼에 갖은 채소와 양념을 넣은 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따로 먹으면 각각의 맛이지만 맛있게 먹으려면 쓱쓱 잘 비벼서 먹어야 하는 비빔밥.
섞이고 부딪히고 눌리고 뿌려진 후 한 숟갈 크게 떠서 입 안에 넣으면 다양한 맛이 터지는 즐거움. 비 오는 토요일, 오늘도 살아간다. 섞이고 부딪히는 삶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 맛있는 맛을 언젠가 보리라 생각하며 욱신욱신 쑤시는 몸을 일으켜 자판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