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2
일러두기
이 글은 지난 8월 7일 포스팅한「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https://brunch.co.kr/@ysh2084/127)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글로 그 이후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환생교)에서 이루어진 논의의 결과를 정리하였습니다. 전반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지난 8월 7일 작성한 첫 번째 글의 내용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환생교의 기관지 『녹색교육』 가을호에 개재되었습니다.
그간의 경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5년 12월 9일. 제21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미만 수준으로 유지하며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2018년 10월 1일. 인천에서 열린 제48차 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Net-zero; 탄소중립)상태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로 감축해야 한다는 결과가 제시되었다. 2020년 3월 11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코로나19의 심각한 확산 수준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다. 하필 이날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9주년이 되는 해였다.
2020년 3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했다. 청소년 원고 19명은 “우리 정부의 감축 목표로는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하, 더 나아가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지킬 수 없다.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 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한 것이다. 2020년 6월 25일. 청소년기후행동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전국 교육청들의 공동 기후위기비상선언을 요청드립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전국의 청소년들은 “교육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함에 공감”하고, “교육 시스템이 스스로 기후위기 대응을 할 수 있기 위한 방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다.
교사들의 대응
한강 하구, 새만금 방조제, 우포늪 등과 같이 자연과 환경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현장’에서 모임을 가져온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이하 환생교)에게도 코로나 팬데믹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기후위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절박한 호소에 어떻게든 응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2020년 12월 8일. 에너지정의행동 이영경 활동가를 초청하여 ‘탄소중립 그리고 교육’을 주제로 온라인 공부 모임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환생교 화요 공부모임’은 한 주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이어져 지난 2021년 8월 31일 유네스코 본부 평화와지속가능발전국 지속가능발전교육과에서 근무하고 계신 김변원정 선임전문관의 ‘지속가능발전교육 2030 계획과 세계 동향’까지 총 39회에 이르렀다.
2021년 2월 2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내에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충격 속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선언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교사들의 대외적인 활동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환생교에서 ‘우리 전교조의 대응이 부족한 것 아니냐, 전교조가 교사들의 활동을 이끌어내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와 특위 제안이 있었고, 이에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가 탄생한 것이다. 2021년 4월 21일. 전교조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는 지구의 날(4월 22일)을 맞이하여 21일 3시 30분 실시간 온라인 회의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기후위기 대응 교사선언’과 ‘지구의 날 수업 실천’을 알렸다. 전교조TV 생중계로 송출된 온라인회의에는 75명의 교사가 참여해 열기를 더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
기후위기 대응 교사선언이 이루어진 2021년 4월 21일. 교육부는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형 교육과정 개정 계획’을 발표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 교육 구현과 미래역량을 갖춘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 양성’이라는 비전을 중심으로 다음 네 가지 추진 방향에서 과제들을 설정하고 있다.
첫째, 학생의 개별성과 다양성 지원
둘째, 지역 교육과정 분권화 및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에 기반한 교육과정
셋째,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육
넷째, 디지털 AI 교육 환경에 맞는 미래지향적 교수·학습 및 평가체제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지속 가능한 미래 및 불확실성에 대비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 교육, 생태 전환 교육, 민주시민 교육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전환과 민주시민교육이 미래교육의 두 가지 토대라면 생태 전환 교육은 학교를 지속 가능한 미래의 중심에 놓기 위한 핵심 아젠다라고 할 수 있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추진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도대체 교육과정이 무엇이길래 이처럼 교육과정을 고민해야 하는 걸까?
2022년에 고시될 예정으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초등학교에, 2025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적용되기 시작해서 2028학년도 대학입시에 반영될 예정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구성 체계와 내용 못지않게 개정 추진 방식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소수의 교육 전문가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교사,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물론 국가 교육과정 개정만으로 모든 교육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지금 당장 개선해야 할 산적한 교육 현안들을 미루기 위한 핑계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 문제에 대하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체제 전반의 변혁 없이 교육의 변화 만을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그린 워싱’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의 지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지구』 등을 쓰신 김추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교육은 불을 끄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육이란 아이들의 잠재력을 구속하는 현실로부터 단절·유예시킴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생성하는 ‘내일의 주인공’을 만들어 내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기후변화 대응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2030년까지 대한민국 공교육의 큰 틀을 규정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 환경과 생명을 지켜온 교사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말한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또 말한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 개정의 전반적인 방향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2015년부터 새로운 교육과정이 고시될 2022년 사이의 교육과정 변화 요인을 살펴보면 [그림 2]와 같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교육과정 개정의 전반적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기존의 교육과정이 무엇을 지향했으며 그것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고 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인식해야만 새로운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둘째, 급변하고 있는 세계정세를 반영해야 한다. 2018년 인천에서 개최된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채택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와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이 인류에게 주는 교훈을 이해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교육 의제를 반영해야 한다. OECD는 DeSeCo 프로젝트에 이어 2018년 ‘OECD 교육 2030: 미래 교육과 역량’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며, UNESCO 역시 ‘DESD(2005-2014)’, ‘GAP(2015-2019)’에 이어 2020년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 2030’ 프로그램을 출범시킨 바 있다.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핵심 의제들이 새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교육자치/학교자치 영역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교육 실천의 경험들이 교육과정 개정 절차에 반영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구성한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의 논의 결과 및 다음 행보를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2021년 8월 13일 열린 <국가교육과정 현장소통 포럼(3차): 2022 개정 교육과정과 모두를 위한 교육>에서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세종 소담초등학교 정유숙 선생님은 「현장 교사들이 제언하는 개정 과제」에서 국민 모두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국가교육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우선적 과제로 삼되, 개인과 사회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며 자율적 권한과 역량을 기르고 공존을 위한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새로운 교육과정의 지향”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1)
교육과정의 성격
이제 본격적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문서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정식 명칭은 교육부 고시 제2015-80호 [별책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이다. 이 문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초・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고시한 것으로, 초・중등학교의 교육 목적과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며, 초・중등학교에서 편성・운영하여야 할 학교 교육과정의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이 교육과정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가.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지역, 학교,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교육과정이다.
나. 학습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이다.
다. 학교와 교육청, 지역사회, 교원・학생・학부모가 함께 실현해 가는 교육과정이다.
라. 학교 교육 체제를 교육과정 중심으로 구현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다.
마. 학교 교육의 질적 수준을 관리하고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다.
앞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무엇보다도 위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가지 교육과정의 성격이 얼마나 학교 현장에서 구현되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새 교육과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교육과정의 성격’이 선언을 넘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하려면 이 교육과정에 관여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가’항의 “지역, 학교,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교육과정 편성 권한을 지역, 학교, 개인에게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라’항의 “학교 교육 체제를 교육과정 중심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학교, 교육청, 교육부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각 교육 기관의 행정 체제를 어떻게 개편해야 학교 교육 체제가 교육과정 중심으로 구현될까. 이러한 고민들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교육과정 문서 및 후속 지원 체계 속에 명료하게 담겨야 한다.
교육이념: ‘인류공영’이라는 이상의 확장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2)
기후위기 시대, 인류공영의 이상은 명백하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zero) 상태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로 감축해야 한다.3)
인간은 인간 중심적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을 파괴하면서 탄소 문명을 이루어 왔다. 탄소 문명에 따른 지구온난화는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탄소중립사회’ 혹은 ‘생태문명’ 이라는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탄소문명에 근거한 지금의 교육과정은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하다.
한스 요나스는 인간 중심적인 전통윤리를 극복하고 과학기술에 따른 무한 성장에 대한 미신을 버려야 한다며 책임윤리, 즉 생태학적 윤리를 제시하였다.4) 기후위기가 단순히 기술의 실패일 뿐이며, 더 나은 기술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통윤리에 기반한다. 기후위기는 기술의 실패가 아닌 윤리학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스 요나스의 책임윤리는 책임의 범위를 인간만이 아닌 자연과 미래세대로, 의도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확장한다. 다음은 기후위기대응 교육을 위한 새로운 덕목으로서의 생명 원칙이다.5)
추구하는 인간상: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심비우스로
지구의 45억 년 역사에서 최초로 단 하나의 종이 지구의 미래를 점점 더 좌우한다.6) 그 하나의 종이란 어떤 생명체보다도 현명하지만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종의 멸절을 서슴지 않는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다. 거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 행위의 영향을 받는다.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동물의 개체 수는 지난 40년에 걸쳐 평균 58% 감소했다. 이는 지구에 인간이 출현하기 전보다 1,000배나 빠른 속도다. 인간 활동의 누적적 영향은 지구의 역사에서 일어난 행성적 규모의 지질학적 사건들에 맞먹는다. 여태까지 인간들이 생산한 콘크리트의 총량은 지구의 표면 전체를 두께 2mm인 층으로 덮을 만큼 충분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핵폭발로 인하여 다량의 방사능이 검출되는 토양과 그 속에서 썩지 않은 채 묻혀 있는 플라스틱,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닭 뼈 조각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인위적 지질시대를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행성적 차원의 인식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고민해야 한다. 현명한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를 비롯하여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공생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심비우스’로의 전환이 필요하다.7) 우리는 이러한 인간을 ‘지구생태시민’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민주시민’개념에 ‘호모심비우스’적 인간상을 결합한 것이다.
핵심역량: ‘반성적 사유’와 ‘변혁적 역량’의 반영
탄소문명의 작동 방식과 그 결과에 대한 반성적 사유 없이, 즉 소비지상주의,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역량을 함양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킬 뿐이다.8) 따라서 역량이라는 것은 ‘난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무지의 역량인 동시에 기존의 악습을 끊어내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변혁적 역량이어야 한다.
무지의 역량은 시키는 것을 잘 수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산업사회의 인재로서 쓸모 있음을 드러내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겸손하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공존의 지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갈등과 딜레마를 조정하고 생명의 위기를 극복해내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능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교: 생태문명의 핵심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9) 학교는 공공성을 가지며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人性)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10)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11),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12)
2020년 7월 9일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은 ‘학교환경교육 비상선언’을 통해 ‘생태문명의 핵심 학교’를 약속했다. 같은 해 7월 17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학교가 탄소 중립을 넘어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전인적 공간이 되게 하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인간상, 새로운 역량의 창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교상(像)을 정립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학교에 서로 모순되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해왔던 것은 아닌지 성찰하고13),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는 학교의 위상을 교육과정 문서에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
교육부 고시 제2015-80호 [별책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추구해 온 교육 이념과 인간상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함양하여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이를 위한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은 다음과 같다.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을 바탕으로 설정된 인재상으로, ‘바른 인성을 가지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교육과정은 (…)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고 규정함으로써 <추구하는 인간상>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 시민’과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등 네 가지 인간상이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키워드를 삭제함으로써 추구하는 인간상의 핵심 개념으로서 지구생태시민(혹은 민주시민)을 부각시켜야 한다.14)
학교 급별 교육 목표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해설을 보면, “국가 교육과정에 제시된 학교 급별 교육 목표는 교육기본법에 제시된 교육 이념, 이를 반영한 추구하는 인간상, 그리고 초·중등 교육법에 규정된 학교 급별 교육 목적을 바탕으로 국가·사회적 요구 및 국가 교육과정 개정 방향을 반영하여 설정”되고, “교과(또는 영역)별 목표를 설정하는 일반적인 지침이 되며, 단위 학교에서 편성, 운영되는 학교 교육과정의 총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문제는 국가 수준의 공통성을 너무 강조할 경우 지역, 학교,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교 급별 교육 목표>는 하나의 총괄 목표와 네 개의 하위 목표로 이루어지는 데 이는 <추구하는 인간상>의 교육이념 및 네 개의 인간상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며 실제로 서술되고 있는 내용 역시 어느 정도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떠오르는 의문은 학교 급별 교육 목표라는 것을 이처럼 추구하는 인간상에 끼워 맞출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생의 발달 단계나 교육과정의 성격 - 공통 교육과정인가 선택 중심 교육과정인가 – 에 따라 교육의 양상이 학교 급별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 급별 교육 목표가 교육과정 총론에만 제시되고 있을 뿐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형식적으로도 학교 급별 교육 목표가 총론의 하위 범주이며, 학교 교육과정은 곧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15)
학교 교육과정이 국가 교육과정의 수동적 실행도구가 아니라 학생 중심 교육과정의 자율적 개발 주체가 되게 하려면 교육부 고시 제2015-80호 [별책 2] ~ [별책 4]의 새로운 구성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학교 급별 교육목표를 학년(군)별 교육목표 및 발달 과제와 연결하여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참고로 핀란드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유치원에서 9학년까지의 발달 과제는 다음과 같다.
유치원: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어린이 되기
1~2학년: 초등학생 되기
3~6학년: 학습자로 발달하기
7~9학년: 공동체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이 중에서 7~9학년(중학교 1~3학년)의 발달 과제 <공동체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렬하게 발달intense development하는 이 시기 동안 7~9학년의 특별한 임무The special task는 학생들을 안내하고 지원하여 학생들이 기본 교육의 교수요목syllabus 공부를 완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모두가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개개인이 기본 교육을 따라 공부하는 게 가능한 최상의 전제조건the best possible preconditions과 아는 바에 근거하여 현실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을 지니는 것은 특히나 중요하다. 중학교 시기에 남녀 학생의 발달 속도의 다름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발달에서의 다름differences도 더 명백해지고 학교 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자신의 발달을 이해하도록 안내하고,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한다. 또한 자신, 자기 공부, 친구, 주변 환경을 책임지도록 학생을 격려한다. 공동체 정신a community spirit을 발달시키도록 이끌어야 한다. 공동체에서 위협, 성희롱, 인종주의, 다른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 학생을 한 명 한 명으로 돌보고 마주하여, 다양한 일 방식과 학습 환경을 사용하여 학생의 공부 동기를 고양해야 한다. 공부하는 동안 평가를 실시하고 안내하는 일feedback은 학생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계획하여 실행한다. 이것은 학습을 올바르게 안내할 뿐만 아니라 학생이 집단으로 그리고 개별로 목표에 맞게 일하도록 한다. 가정과 학교의 협동은 새로운 형식들과 내용을 갖게 되고 성장하는 청년을 위한 중요한 지원의 한 형식으로 지속된다. 학생· 보호자와 함께 상식적인 규칙common rules을 정하고 그들이 좋은 일의 방식에 동의하면, 학생은 안전감을 갖고 학교 일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7~9학년 동안, 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성인의 정체성their adult identities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지식과 기술능력을 확장하고, 자신의 방향을 발견하고, 기본 교육 후의 삶을 준비한다. 교수학습은 이전 학년에서 배웠던 것을 진전시키고, 풍부하게 하고, 확장시킨다. 새로운 핵심 교과로 가정 경제Home economics와 안내 상담guidance counselling이 시작된다. 환경 공부를 위한 수업은 여러 교과(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리학)로 나뉜다. 더 많은 선택 교과를 학생에게 제공한다. 다분과 학습 모듈과 선택 교과들은 학생이 자신의 관심을 심화하고, 여유 시간에 배웠던 것과 학교 일을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예술 작품artistic production을 만들 때, 연구 프로젝트research projects 혹은 사회 문제 프로젝트 social projects를 운영할 때, 모듈과 선택 교과는 독자적으로 실행하고 책임지는 기회를 학생에게 제공한다.
결론
2021년 6월 1일(화) 제26차 ‘환생교 화요 공부모임’에서는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 환생교 공동 기획으로 ‘기후위기 대응 교육과정 1차 합동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기후위기 교육이 포함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였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기존의 교육과정에 대한 성찰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본이다. 교육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기본 원칙에서도 ‘학교·교사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과정 운영 체제 구축’을 명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내용을 강화하려면 학교가 우선적으로 지속가능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취지로 1차 토론회에서는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벽에 부딪히는 부분을 파악하고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들추어내는 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후 교육과정을 주제로 한 연속 토론회가 제31차 공부모임부터 제34차 공부모임까지 진행 되었다. 각 토론회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31차(7/08): 개정 교육과정에서 기후위기와 생태환경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32차(7/15): 기후위기 환경재난시대 개정 교육과정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전문가에게 듣는다.
33차(7/22): 중학교 교육과정 어떻게 기후위기에 대비할 것인가?
34차(7/29): 기후위기 환경재난시대, 초등학교 교육과정 어떻게 개정해야 할까?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교육과정 토론회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2021년 8월 3일 전교조 임시전국운영위원회가 열려 2022 개정 교육과정 환생교안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21년 8월 17일,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환생교 공동 기획으로 ‘기후위기 대응 교육과정 2차 합동 토론회’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우리의 제안
[총론]
제안 1. 교육이념에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을 위해 ‘책임윤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제안 2. 추구하는 인간상을 아우르는 중심개념으로서 ‘지구생태시민’이 반영되어야 한다.
제안 3. 반성적 사유와 변혁적 역량으로서 역량 개념이 재정의되어야 한다.
제안 4. 학교가 생태문명의 핵심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교상을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칭)학교의 위상과 역할이라는 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제안 5. 학교 급별 교육 목표의 내용과 형식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제안 6. 학교 교육과정의 위상 강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필요하다.
[초등]
제안 1. 기후위기 대응 교육 내용 체계와 방향
제안 2. 기후위기 대응 교육 성취기준의 확대 및 강화
제안 3. 모든 교과와 범교과학습 주제를 관통하는 교육
[중등]
제안 1. 범교과로 이행하기 위한 학년교육과정
제안 2. 고교교육과정을 위한 기후위기 교과 개발
제안 3. 탈교과에서 범교과로 이행을 위한 연구
오백이십 번의 트라이
2020년 7월 16일 루이자 뉴바우어, 그레타 툰베리, 아뉘나 데 베버 반 데르 헤이덴, 애들레이드 샤를리어는 유럽연합 정치지도자 및 국가 수장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지구 생명체들의 미래의 생활조건을 지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오늘 당장 시작"되어야 하며,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예측한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시스템에 계속해서 가해지고 있는 온갖 파괴와 착취를 종식시키고, 자연 세계와 모든 인류의 안녕을 중심에 둔 완전한 탈탄소경제로 나아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몇 달, 몇 해가 결정적이며,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16) 2020년 12월 8일. 환생교의 화요 공부 모임이 시작되었을 때 여기까지 올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해냈다. 그러니 앞으로도 해낼 것이다. 2030년까지 십 년. 오백이십 번의 화요일.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히 세상을 바꿔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 해보자!
1) https://youtu.be/yCJQGPTaFIo
2)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3) 2018년 10월 1일 인천에서 열린 제48차 IPCC 총회에서 채택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의 결론.
4) 한스 요나스(1994). 책임의 원칙: 기술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5) 한스 요나스(2005). 생명의 원리. 고재욱(2022), 「한스 요나스의 관점에서 본 기후위기 대응 교육과정」(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제34차 공부모임)에서 재인용.
6) 사이먼 L. 루이스와 마크 A. 매슬린(2020).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세종서적.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인간, 즉 사피엔스가 어떻게 ‘자연의 폭력’이 되었는지를 입증하고 있다.
7) 최재천(2011). 호모 심비우스.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는 공생을 뜻하는 'symbiosis'에서 착안해 만든 단어로 '함께 with'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syn'과 '삶 living'이라는 뜻의 'biosis'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
8) 장소영(2022). 「기후위기 초등 교육과정」(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제34차 공부모임)
9) 헌법 제31조.
10) 교육기본법 제9조(학교교육).
11) 교육기본법 제5조(교육의 자주성 등).
12) 초·중등교육법 제23조(교육과정 등).
13) 대표적인 사례가 고교학점제와 대입제도의 엇박자이다. 선택형 교육과정인 학점제를 예고해 놓고 표준화 평가인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모순이란 지적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도경(2021). <고교학점제- 수능 비중 확대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국민일보 2021년 8월 13일자.
14) 교육부(2017).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해설.
15) 실제로 [별책 1] 총론 편제를 보면 “학교 교육과정은 교과(군)과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편성한다.”고 밝히고 있다.
16) 윤상혁(2020). 「오백이십 번의 트라이(https://brunch.co.kr/@ysh2084/92)」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