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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May 26. 2022

기후위기를 넘어선 기후위기 교육

학교 안의 기후위기 교육 다시 보기

세 가지 키워드     


‘학교 안의 기후위기 교육 다시 보기’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기후위기 교육’이라는 표현의 적절성부터 시작해서 교육이 과연 기후위기를 극복/적응하는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 교육’이라는 말은 최근에 등장한 말이다. 기후위기 교육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키워드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 그레타 툰베리,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그것이다.      



키워드 1.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

2018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회원국들의 합의로 채택되었다. 보고서의 핵심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과 2021년 9월 24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 그리고 10월 18일 탄소중립위원회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는 모두 이 보고서에 근거한 후속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



키워드 2. 그레타 툰베리

특별보고서가 발표될 즈음, 기후변화에 대해 심각성을 느낀 스웨덴의 한 청소년이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파업’이라는 피켓을 들기 시작한다. 학생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 자신의 시위 모습을 담은 툰베리의 트위터는 말 그대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그녀의 ‘기후 행동’에 공감하고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전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아랍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의 낡고 부패한 체제를 몰아내고 ‘아랍의 봄’을 불러왔듯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미래가 없는데 왜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하기 시작했다. ‘기후세대’의 등장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이 물결에 합류한다. ‘청소년기후행동’이 탄생한 것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은 2019년부터 기후파업을 조직하고 2020년 3월 “기후위기 방관은 위헌”이라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송을 제기한다. 이것은 후에 서울시교육청의 ‘생태전환교육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기후위기·환경재난시대, 학교환경교육 비상선언’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레타 툰베리



키워드 3. 코로나19 팬데믹

그러나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9년에 발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세계적 유행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 9주기인 2020년 3월 11일날 발표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서식지 확장을 위한 무분별한 자연훼손은 인간과 자연의 거리두기 실패, 즉 ‘밀접접촉’을 유발했고 이것은 언제든지 치명적인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전 세계가 목격했다. 그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이 경고한 기후변화의 현상들을 드디어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WHO,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교육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하고 모든 학교의 수업이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교 무용론이 등장했지만, 팬데믹이 장기화하자 이런 목소리들은 금세 잦아들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삶에서 얼마나 다양한 부분을 학교에 의지해왔는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의 교육은 어떤 점에서 코로나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를까? 아니 달라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앞서 언급한 인류가 ‘기후위기’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 세 가지 계기 속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기후) 시스템에 대해 인식하고 지구적으로 사유하기, 두 번째는 학생의 행위주체성과 변혁적 역량 함양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시민-세계시민-생태시민으로 이어지는 시민성 확장하기이다.  

    


전환의 사유 1. 시스템 인식과 지구적 사유

지금은 지구 생태계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체’라는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한 때다. 대기, 육상 생태계, 해양 생태계의 모든 영역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영역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 이것이 시스템 사고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기권, 지권, 수권으로 이루어진 매우 얇고 취약한 생명의 막이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회복탄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느 순간까지는 함께 고통을 감수하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티핑 포인트를 넘길 경우 ‘찜통 지구’라는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되어버린다.1) ‘지구온난화 1.5℃.’ 그것이 티핑 포인트이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단지 시스템을 바꿀 뿐이다. 그러나 지구가 인류를 새로운 시스템의 일원으로 계속 받아들여줄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 공개된 2022 개정 환경 교육과정 시안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아이디어가 적시되어 있다.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지구 생태계와 인간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기후위기는 인간 활동이 초래하였으며, 그 영향과 피해는 지역과 집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 전 분야에서 기후행동을 계획하고 이행해야 한다.”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한다.


이런 핵심 아이디어가 학교 교육과정으로 구현되는 사례를 두 가지만 소개한다. 탄소중립 중점학교인 울산 옥서초등학교는 기후위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여와 행동’이라는 인식 속에서 학년별로 생태전환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옥서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 숲을 탐험하고(1학년), 고기 없는 식사를 하며(2학년), 바다 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울산 고래에 대하여 배운다(3학년). 또한 가정과 연계하여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4학년), 국립공원의 깃대종을 조사하며(5학년), 어린이 도시농부가 되어 본다(6학년). 이처럼 옥서초등학교의 학년별 교육과정은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스템적 사고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행동하고 참여하는 시민 양성이라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실천해온 사례들도 여럿 있다. 서울 국사봉중학교는 관 주도가 아닌 마을교육공동체와의 협력 속에서 생태전환교육을 운영하고 있는 드문 경우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실천하고 있는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은 국사봉중학교의 든든한 ‘교육 커먼즈’가 되어주고 있다. 절전소를 시작으로 에너지축제, 에너지협동조합 마을닷살림협동조합, 마을기업 에너지슈퍼마켙, 미니태양광 DIY 제품까지 직접 개발하고 있는 ‘성대골 사람들’의 지원 속에서 국사봉중학교 역시 학교협동조합을 창립하여 마을과 연계한 에너지 자립율 100%를 꿈꾸는 ‘햇빛학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서 이와 같은 핵심 아이디어가 적용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배움이 이루어지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시스템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의 일부임을 인식해야 한다. 태양과 바람과 물의 순환 속에서 씨앗이 자라나듯이 학교 역시 서로의 연결 속에서 생태적 지혜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전환의 사유 2. 행위주체성과 변혁적 역량

2018년 OECD는 「OECD 교육 2030: 미래교육과 역량」 보고서에서 모든 학습자가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개인과 공동체, 지구의 안녕(Well-being)에 기초한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학생의 행위주체성’과 ‘변혁적 역량’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의 행위주체성Student agency’이란 세계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해 사람들과 사건,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책임감을 스스로 의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참여’는 학습의 사회역동적 차원과 관련이 있다. 즉, 지식이 생산되는 집단적 과정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역동성 속에 참여함으로써 그 안에서 개인의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의식’은 학습의 문화적 차원과 관련이 있다. 특히 사람들의 기존 행동 패턴 속에 스며 있는 특권화와 편파성을 담지한 문화적 차원을 간파하는 일은 학습의 중요한 과정이 된다.2) 책임감을 의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군가에게 특권이 된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아가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누려온 특권을 인식하고 내면화된 편파성을 교육을 통해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OECD 2030 학습나침반


「OECD 교육 2030」은 모든 학습자들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개인과 공동체, 지구의 안녕(Well-being)에 기초한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삶이란 살아 있는 것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며 앎이란 상황적 행동/존재(situated doing/being)와 연관된다. 따라서 교육이란 단편적 지식 습득을 넘어 학습한 내용을 삶의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공동체의 갈등과 딜레마를 조정하며 미래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새로운 가치 창조하기’, ‘갈등과 딜레마 조정하기’, 그리고 ‘책임감 가지기’로 범주화된 ‘변혁적 역량’이다. 이 역량을 통해 청소년들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난관을 극복하는 책임감 있는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전환의 사유 3. 시민성의 확장

팬데믹은 그리스어 ‘판Pan’과 ‘데모스Demos’의 합성어다. 판Pan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연의 신이지만 사람과 사랑을 나눠 반신반인이다. 자연을 넘어 문명의 세계를 침범한 신, 그래서 ‘모두everyone’라는 의미를 가진다. 데모스Demos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시민, 특히 혈족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이다.3) 코로나19 팬데믹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서구 백인들의 우월의식을 무너트렸다. 서구 근대에 발명된 민주주의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그 기능을 멈춘 것이다.


시민성은 기본적으로 ‘존엄’에 대한 사유다. 따라서 시민성의 확장은 존엄의 확장이라는 의미다. 근대 교육 체제는 인간이라는 종 그중에서도 ‘백인 남성’을 불평등한 세계의 최상위층에 위치시키고 비非백인, 비非남성, 어린이, 장애인, 그리고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인간을 피부색, 성별, 나이, 정상성, 지능 등에 따라 계급화시키는 근대 교육 체제의 기본전제에 대한 성찰과 전환의 사유 없이 기후위기 교육은 공허한 외침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를 넘어선 기후위기 교육     


2021년 9월 교육기본법이 개정되었다. 제22조 2항(기후변화 환경교육)에 ‘국가와 지자체는 모든 국민이 기후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생태전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기후위기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후위기’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를 야기한 근대 교육체제에 대한 성찰 속에서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A Borrowed Planet - Inherited from our ancestors. On loan from our children. by Alisa Singer


우리는 ‘빌린 행성’을 잠시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이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듯이 우리 역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교육을 통해 개인과 사회에서 소비되는 자원의 생산량과 폐기량을 최소화하면서도 자기실현의 수준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생태문명’을 지향하는 인간, 즉 ‘생태시민’을 기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생태문명의 중심으로서 학교의 역할 변화와 교육시스템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지구적 사유’ 그리고 ‘학생의 행위주체성과 변혁적 역량의 함양’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1) 이현정(2022). 기후정의의 정치적 주체 되기. 창작과 비평 195호. 32-48쪽.


2) 브렌트 데이비스 외(2022), 『표준화 교육에서 복잡성 교육으로』,  교육과학사.


3) 박구용, ‘인간은 죽었다?’, 《한겨레》, 2021년 3월29일자.




* 이 글은 격월간 『민들레』 2022년 5+6월호(vol.14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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