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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Jul 22. 2023

굿바이 혁신학교? 굿 바이 혁신학교!

탈혁신학교를 꿈꾸는 요즘 교사들의 학교 이야기

함께 읽는 책 No. 38

유시경, 박지수, 노효정, 김유진(2022), 『굿바이 혁신학교』



“생각해 보면 교사도 성장해 가는 존재임을, 교육은 매번 새로워지는 작업임을 깨닫게 된 것은 우리의 첫 학교가 혁신학교였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지금 행복한 교사, 고민하는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첫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문화의 힘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정리해 보고 싶었다. ‘혁신학교’라는 이름이 세월의 흐름과 진영 논리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교직은 30년 가까이 이어질 텐데, 그 이후에는 어떤 학교를 상상해야 하는지 말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로, 정년까지 무기력해지지 않고 ‘살아 있는’ 교사로 남기 위해서 학교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우리의 언어로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시경, 박지수, 노효정, 김유진 선생님이 함께 쓴 『굿바이 혁신학교』 서문의 일부다. 제목이 ‘굿바이 혁신학교’여서 혁신학교와의 결별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제목 아래에 작게 ‘Good Education by 혁신학교’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혁신학교에 의한’ 좋은 교육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저자들이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좋은 교육’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혁신학교가 여전히 유효한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혁신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통해서 좋은 교육이 가능한가를 묻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저자들의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유시경, 박지수, 노효정, 김유진(2022), 『굿바이 혁신학교』


      

Good Education by 혁신학교     


획일적인 교육, 주입 · 암기식 교육, 삶과 괴리된 교육,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 등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들은 차고 넘친다. 학교를 향한 막말과 독설은 날로 사나워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비판에 응답하고자 혁신학교가 등장했을 때, '혁신'은 또 다른 '굴레'가 되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 학생들의 활동을 중시하는 교육, 삶과 연결된 교육,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는 교육은 '입시 준비를 하지 않는 학교' 심지어 '노는 학교'라는 낙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은 혁신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혁신학교의 문제의식이 (비정상적인) 공교육의 정상화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혁신학교의 궁극적 목표는 사라지는 데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이 그때인가? 교육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에 따라 혁신학교의 존폐가 논의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저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많은 교사들은 여전히 학교의 ‘변화 없음’을 하소연하고 있으며, 큰 교육의 담론과 정책 앞에서 현장의 교사들은 자주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말고 현실을 탓하렴’이라며 탓을 미루는 비겁한 교사로 살고 싶지는 않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들에게 혁신학교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할까?”라고 대화를 이어가는 학교다. 그런 이유로 “혁신”이라는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혁신학교가 만들고 지켜 온 가치와 문화는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야」에서는 저자들이 학생으로 겪었던 소위 ‘일반학교’와 그들이 교사가 되고 나서 만난 ‘혁신학교’의 간극에 대해 다룬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멋진 강사가 되고 싶었다”는 시경쌤의 고백, “‘좋은 선생님’은 지식을 잘 전달하면서 학생들을 잘 통제할 수 있는 교사”라고 여겼던 지수쌤의 고백, “개학 첫날 형형색색으로 탈색한 머리와 반짝이는 피어싱을 한 학생들을 보면서 듣던 대로 역시나 학교생활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 효정쌤의 고백, 그리고 “‘학교’라는 공동체를 꾸려 가는데, 학생의 몫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고, 의미 있는 대의원 회의에 참석해 본 기억도 없다”는 유진쌤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혁신학교를 만나면서 그들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야”라는 고백은 “아, 학교 진짜 좋다”라는 감탄사와 함께 2장 ‘첫 학교의 설레던 순간들’로 이어진다.            



첫 학교의 설레던 순간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저자들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학교는 관료 조직이다. 관료 조직의 핵심은 업무분장에 따라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또는 우리 부서가) 맡게 될 일의 양을 부풀려서 최대한 새로운 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한 능력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관료 조직에서 가장 말단을 차지하는 것이 신규 교사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학교는 달랐다. “체계가 없다”는 비아냥을 듣던 혁신학교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체계’라는 말이 사실은 폐쇄성과 위계성의 다른 말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일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관료적인) 학교와 달리 혁신학교는 신규 교사의 다양한 도전을 응원하고 지원하면서 교사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구조였던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관계성’으로 표현한다.     

 

“동기이론 중 하나인 ‘자기 결정성 이론’에서는 내적동기의 원동력이 되는 자기 결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3가지 기본 심리 욕구를 ‘자율성’, ‘유능성’, 그리고 ‘관계성’이라고 정의한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해 학교 안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꾸려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고, 선배와 동료 선생님들에게 지지와 인정을 받으며 효능감이 올라갔던 우리의 경험은 이 동기 이론과 너무나 닮아있다.” (109쪽)   

 

학교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선생님들 정보가 최신이잖아요. 우리한테 좋은 거 많이 알려 줘요.” “선생님들은 수업 어떻게 해요? 우리도 한 번 가서 들으면 안 될까요?” “선생님, 해보고 싶은 거 뭐 없어요? 그거 좋네, 어떻게 하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선배 교사들이 있는 학교라면 절로 신명나지 않겠는가? 더 좋은 교사, 아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학교, 그곳이 곧 혁신학교 아닐까?     


물론 이 책이 혁신학교를 찬양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3장에서는 「교사를 주춤하게 하는 목소리들」을 다룬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 


“‘학교 업무’의 세계란 정말 신기하다. 여태까지 계속 일만 하면서 지낸 것 같은데, 정신 차려 보면 눈앞에 일이 또 주어져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늘 바쁘다. 실로 놀랍다. 기업에서 근무하는 다른 지인들을 보면 일을 많이, 열심히, 잘하면 인정과 칭찬,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던데, 물론 교사도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내면 동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지만, ‘보상’보다는 새로운 ‘일’을 획득하게 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143쪽) 

    

혹시 혁신학교의 문화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일해라!”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는 일을 모으는 학교가 아니라 꿈을 모으는 학교이어야 한다. 그리고 꿈이 일로 치환되는 것을 막으려면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 교육 활동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하는 교육 활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유시경, 박지수, 노효정, 김유진 선생님이 함께 쓴 『굿바이 혁신학교』는 바로 이 질문을 다루는 책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려한다. 언제부터인가 혁신학교에서 이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혁신학교 중에도 이미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체 교직원회의에서 토론이 사라진 학교들이 많다. 그나마 ‘학기말 워크숍’ 행사가 있어 1년에 2번 정도는 토론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미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는 교사들에게 피로감만 안겨줄 뿐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173쪽) 



당신의 학교는 어떤 곳입니까    


지난 6월 8일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유시경, 박지수, 노효정, 김지수 선생님의 <굿바이 혁신학교> 북토크 콘서트에 참석했다. 함께 참여한 젊은 동료 교사 한 분이 슬며시 떡을 내민다. 우리 학교 발령 백일 떡이란다. 생각해 보니 나도 백일! 의미 있는 날 의미 있는 자리에 참석해서 더욱 뜻깊었다. 북토크 콘서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통찰과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다. 네 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말투와 표정과 옷차림과 행동 속에서 문득 내가 낡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간다는 것이 낡아간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지 않기를.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고 맑아지기를 기도했다.     


굿바이 혁신학교 북토크 콘서트 웹자보


서울형혁신학교 영림중학교 공동체로부터 공모교장으로 선택받는 과정에서 교직원들에게 받았던 질문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하나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혁신이 무엇입니까?”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부장 자리 두 개가 공석입니다. 교장으로 부임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였다.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이 오늘날 혁신학교가 직면한 매우 상징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혁신학교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혁신학교의 비전과 가치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란 학생, 교원, 학부모, 지역사회가 서로 소통하고 참여하며 협력하는 교육문화 공동체로서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을 실현하고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학교 상은 참여와 협력의 교육공동체를 중심으로 학교 운영 혁신, 교육과정 및 수업 혁신, 공동체 문화 활성화 3가지 큰 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우리 교육에 가지고 온 가장 큰 효과는 가르침에 대한 존중과 배움에 대한 경탄을 회복함으로써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을 가꾸는 교육을 핵심가치로 붙잡았다는 데 있다.     

 

책을 덮다가 보랏빛 향기가 물씬 풍기는 표지를 다시 살펴본다. ‘탈혁신학교를 꿈꾸는 요즘 교사들의 학교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나아질 거라 믿으며, 기복 없이 단단한 교사,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꿈꾸는 그들의 마음을 살피다가 이것이 그들만의 마음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젊은 시절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선배, 동료 교사들이 떠올랐다. ‘은혜를 갚는 마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이었던 것이다. 


네 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말투와 표정과 옷차림과 행동 속에서 문득 내가 낡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간다는 것이 낡아간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지 않기를.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고 맑아지기를.  

  



유시경, 박지수, 노효정, 김유진(2022), 『굿바이 혁신학교』


이 글은 격월간지『오늘의 교육』 2023년 07+08월호(vol.75)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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