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혁신학교, 그들이 경험한 혁신학교
내가 기대했던 이유
EBS의 혁신학교 5부작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가 어제 5부 '우리는 혁신학교 졸업생입니다'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고 할 때, 다섯 가지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사실 각 에피소트마다의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다큐멘터리가 전체적으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되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부와 5부의 타이틀이 각각 '대학 갈 수 있을까?'와 '우리는 혁신학교 졸업생입니다'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와 같은 배치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도 좀 된다"고 생각했다. 기대가 되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4부에서는 혁신고등학교인 휘봉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학입시를 준비 중인 고3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냈고 5부에서는 혁신학교 졸업생 연대 '까지'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의 혁신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현재 모습과 그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 정리해 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혁신학교 역시 대학입시라는 성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혁신학교 예찬론자들로부터 "혁신(초등)학교가 들어선 인근 아파트 단지의 집값이 오른다더라"라는 일종의 자랑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혁신학교가 학부모와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집값 올려주는 학교'라는 컨셉이 혁신학교와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불편함이 공존했었다. 실제로 이러한 논리는 언제든지 "혁신(고등)학교가 들어선 인근 아파트 단지의 집값이 떨어진다더라"라는 혁신학교 반대 논리로 둔갑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혁신학교 역시
대학입시라는 성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려했던 이유
(혁신)학교는 어떤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사실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 모순된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학교가 지향해야 할 목적과 실제로 교육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불일치하는 것이다. 짐짓 우리 교육의 앞날에 대하여 심히 걱정하면서 교육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지만 그것은 내 아이의 성공과 출세를 보장하는 한에서만 허용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솔직하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위선적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명시되어 있는 대한민국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이념과 교육 목적을 바탕으로,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다음과 같다.
가. 전인적 성장을 바탕으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자주적인 사람
나. 기초 능력의 바탕 위에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다. 문화적 소양과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사람
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 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
-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중에서
아마도 이와 같은 인간상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학교가 혁신학교일 것이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5부에 등장하는 혁신학교 졸업생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경험한 혁신학교를 "나의 삶을 살게 해주는 학교",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교"라고 고백하면서 거꾸로 우리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진짜 학교라는 곳이 그런 곳이지 않을까?"
4부 ‘대학 갈 수 있을까?’ 편에서 교원대학교 김성천 교수는 "혁신고등학교는 고등학교가 가야할 길들이 기존의 길들하고는 다른 어떤 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하나의 의미가 있다"면서 최근들어 "미래학력, 미래학교에 대한 담론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이런 담론들이 (혁신)고등학교의 일상에서 일정하게 구현되고 있는 가능성, 길들이 실제로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 경기도교육연구원 백병부 교육연구부장 역시 “혁신고등학교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가치가 우리 교육이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와 일치하는 거라면 혁신고등학교가 최소한 불리하지 않는 방식의 제도 설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첫째, 수평적 리더쉽이 학교를 바꾼다(1부). 둘째, 협력과 자율을 바탕으로 하는 배움의 공동체가 학교를 바꾼다(2부). 셋째,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지속성과 일관성이 학교를 바꾼다(3부). 넷째, 평가제도 - 궁극적으로는 대학입시제도 - 의 전환이 학교를 바꾼다(4부). 다섯째, 혁신학교가 학교를 바꾼다. 우리(졸업생)가 그 증거다(5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신학교 5부작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이 질문은 거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복합적인 질문이다. 그것이 잘 동의가 되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학교'라는 단어를 당신이 바꾸고 싶은 그 무언가로 바꿔보라.
무엇이 마을을 바꾸는가?
무엇이 회사를 바꾸는가?
무엇이 법원을 바꾸는가?
무엇이 국회를 바꾸는가?
무엇이 사회를 바꾸는가?
당신은 당신이 바꾸고 싶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어떤 참여를 하고 있으며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혹시 제도를 바꿔야 한다. 물갈이를 해야 한다. 적폐를 뿌리뽑아야 한다 등등의 "당연한 말씀 감사합니다"를 유발하는 주장들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적어도 혁신학교의 교사들은 학교를 바꾸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어떤 특혜나 어떤 보상도 없이 오직 학교를 바꾸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아니다.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함께 동참해야 한다. '그래, 어디 잘하는지 두고 보자'라는 식의 적대적 방관자가 되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 질문은 매우 거대하고 복잡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학교를 바꾼다. 당신이 바뀌지 않으면 학교도 바뀔 수 없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네가 먼저 바꿔. 그럼 나도 바꿀게."라고 미룬다면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혁신학교 5부작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의 결론은 아쉽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교사들의 노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배움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까지는 훌륭했지만 시청자들을 여전히 방관자로 머무르게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어떤 시청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보냈겠지만, 어떤 시청자들은 여전히 팔짱을 낀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고작 그거야?' '확실한 거야?' '뻔한 얘기네'라며 속단했을 것이다.
'진짜 학교'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가장 상식적인 생각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답정너.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꼰대처럼 혼자 짐작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의 편견이 아이들의 미래를 속단하고 그들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능력마저 앗아간 것은 아닐까? 아이들 앞에서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떼는 말이야"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함께 세상을 바라볼 어른이 필요하다.
획일적인 교육, 주입 · 암기식 교육, 삶과 괴리된 교육,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 등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들은 차고 넘친다. 학교를 향한 막말과 독설은 날로 사나워지고 있다. 어떨 때는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비판에 응답하고자 혁신학교가 등장했을 때, 그들의 '혁신'은 새로운 '굴레'가 되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 학생들의 활동을 중시하는 교육, 삶과 연결된 교육, 한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는 교육은 '입시 준비를 하지 않는 학교' 심지어 '노는 학교'라는 낙인으로 돌아왔다.
혁신학교 십년.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도 한다. 그동안 많은 변화와 혁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미진한 부분이 보인다면 그 부분을 지적하기 보다는 당신 스스로가 어떻게 채우고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 이미 그런 지역주민과 공동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혁신교육지구와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바로 그 부분이 아쉬웠다. 혁신학교 혼자서 대한민국 교육을 바꿔낼 수는 없다. 학교를 둘러싼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혁신되어야 한다. 부모가 야근에 투잡으로 집을 비우는 사이 자녀는 학원에 야자로 집을 비우는 현실을 함께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교육의 영역이 아니다. 노동의 영역이고 경제의 영역이며 정치의 영역이다. 공정한 사회가 되지 않고 어떻게 공정한 교육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제는 대한민국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다. 그것이 혁신학교, 혁신교육지구, 그리고 마을교육공동체의 새로운 10년이 되어야 한다.
혁신학교 혼자서 대한민국 교육을 바꿔낼 수는 없다. 학교를 둘러싼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혁신되어야 한다. 부모가 야근에 투잡으로 집을 비우는 사이 자녀는 학원에 야자로 집을 비우는 현실을 함께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큐멘터리 속 주요 장면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졸업한 후에 그게 내 인생에 이만큼 큰 에너지가 되어 있는 걸 이제야 실감하는 중이거든요. 선생님들이 또는 교육 관계자분들이 하시는 노력이 당장의 성과가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나중에서야 교육의 힘을 실감하는 졸업생들이 있으니 힘내셔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