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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Apr 03. 2024

이거 안 돼? 왜 이걸 못하지? 아 안 되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처음 입사를 준비하면서 회사의 스웨덴 홈페이지를 둘러볼 때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도대체 왜 재고가 없는 제품이 젤 위에 있을까? 왜 행사제품들을 눈에 띄지 않을까? 결제할 때 다음 버튼이 안 눌리는 걸까? 등등 불편하고 이상한 것 투성이었거든요.


회사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홈페이지 전화번호를 변경했는데, 주문확인 메일에는 옛날 전화번호가 그대로 있질 않나. 결제확인메일에는 남의 회사 로고가 붙어있지 않나. 알면 알수록 수정이 필요한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이상한 걸 이야기했을 때 웹마스터와 전임자는 대부분의 지적에 "우리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안 돼"라고 얘기했습니다. 명색이 판매사이트인데 재고 없는 제품이 제일 윗줄에 있는 게 말이 되나 싶은데도 말이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저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대답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구성원. 계열사 소속인 웹마스터는 사실 디지털 마케팅 팀원이었습니다. 웹마스터가 그만두면서 대신한 거라 기본적으로 시스템이나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이해가 낮았죠. 그래서 태그 하나를 만들래도 제품 배열 로직의 기본값을 바꿀래도 무조건 외부업체를 통해야 했죠. 그래서 본사에서 어떤 기능을 추가하더라도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매뉴얼이 없으면 기능을 열 수 없었죠.


두 번째 복잡한 시스템 관리자들. 기본적으로 한 개의 물건을 판매하는데 연결된 시스템이 4개였고 배송과 결제를 포함하면 시스템이 10개 가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상한 게 있어도 고치려면 연결된 시스템까지 다 영향을 줘 고치는 게 쉽지가 않았죠. 그리고 각 시스템별로 관리하는 주체도 다르고 거주국가도 달라서 문제가 생겨도 어떤 시스템에서 생긴 문제인지부터 파악해야 되어서 빠르게 대응이 힘들었죠.


이렇게 파편화된 관리주체로 인한 불편함은 다른 한국회사들의 법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앙시스템은 한국에서 관리해전 세계 법인의 사이트까지 한국에서 관리하긴 힘드니 유지보수는 인건비가 싼 업체에 외주를 주기 십상이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시스템은 중앙에서 만들더라도 현지화를 위한 작업들이 필요한데 현지업체를 쓰면 본사랑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어 중앙시스템과 잘 붙지 못하고, 본사와 연결된 업체에서 와서 작업을 하면 현지상황에 딱 맞지가 않죠. 그래서 어떤 업체가 맡던 원활하게 운영되기가 쉽지 않죠. 그나마 내부에 담당자가 있으면 훨씬 나을 텐데 대부분의 중소법인들 특히 스웨덴처럼 인건비 비싼 나라에 있는 법인은 모든 업무를 회사내부에 소화할 인력을 가지고 있기 힘듭니다. 그리고 법인별로 사업 여건이 다 다른데 본사 입장에서는 일괄로 정책을 짜서 끌고 갈 수밖에 없으니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프로젝트들이 탑다운으로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보고라인이 심플한 게 얼마나 중요한지 법인에 있으면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예전 회사에서 연구소 다니던 시절 항상 중요한 결정이 본사에서 이뤄지는 게 좀 힘들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구소장님이 받아온 미션을 '의중'을 파악해 가며 하루이틀 만에 해결해야 하는데, 결국 그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또한 윗분들의 보고를 통해서 받아오니까요. 어쩔 때는 의중을 잘 못 읽어서 엉뚱한 일을 해가기도 하고 어쩔 때는 보고하다가 꼬여서 며칠의 야근을 수포로 만들어 오시기도 하죠. 그런데 사원 대리 나부랭이는 그 어떤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 한 채, 연구소장님이 들어오신 이야기를 팀장님을 거쳐 듣게 됩니다. 중간에서 어떤 각색이 있었는지 어떤 오역이 있었는지 모르는 채로요. 나중에 본사로 올라갔을 때는 그건 좋더라고요. 비록 내가 CEO를 못 가더라도 다녀왔던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같은 건을 가지고 이랬다 저랬다 하신들 결정권자의 의견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마 본사에 있는 사람은 모를 겁니다.


스웨덴이라는 유럽의 변방에 있는 한국회사의 해외법인은 정말 그런 결정권의 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는 법인장이 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와보니 뭐가 이상하고 말이 안 돼도, 본사에서 또는 유럽법인에서 한마디 하면 그대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기본 세팅이 '어차피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없어'가 돼버리더라고요.


우리의 입장을 소리 내서 말하라던 법인장님도 결국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와 버리니, 법인의 팀장인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안 될 거라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느니 의견 대신 시킨 일이나 맞춰주다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면피용 이유를 잘 생각해 내는 수밖에요. 참 다행인 건 안 되는 이유는 말하려면 백한가지는 댈 수 있는 상황이었단 거?


물론 진짜 능력 있는 리더였다면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서 법인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체 방향성이 가게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본사에서 금전적으로나 인력면에서 서포트도 많이 받을 수도 있고요. 근데 너무 능력이 뛰어나서 급성장을 시키든 갑자기 전략적으로 그 나라가 너무 중요해지지 않는 한, 미국이니 영국 같은 주요 법인보다 더 케어를 받긴 힘들겠죠.


결국 왜 안되지가 아 안 되네로 바뀌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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