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스웨덴 소설은 뭐가 문제이길래..스웨덴 수업에서 읽으라는 소설은 하나같이 우울과 절망이 묻어나는 걸까.
이번 책은 의심과 증오, 혐오 가득한 한 남자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떠나려는 그의 부인을 붙잡고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죽을 때까지 60년 동안 그녀를 괴롭히며 온 가족과 손주들에게까지 증오의 씨앗을 물려주는 이야기이다.
그의 손자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분노의 원인을 찾아가다 발견한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인데 실화 바탕이라 더 절망적이다.
그전 수업에서 읽어야 했던 책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치유되는듯하다가
할머니 사망으로 자기도 모르게 다시 자살시도를 하질 않나..
그 전전 수업에서 읽어야 했던 책은
직장 내 성폭력 시도 때문에 직장을 나온 주인공이
그녀를 이용하기만 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재기하는 내용인데,
주인공 친구의 엄마는 친구가 청소년시절에 자살을 했다.
그 전전 전 수업에서 읽어야 했던 책은
엄마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소녀가
자신도 엄마처럼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지 않기 위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하는 내용이다.
4개의 책 모두 다,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희망을 주려고 시도하지만, 그 힘듦이 너무 딥해서 마음이 힘들다.
어릴 때 1990년대 초반까지 나왔던 한국소설들을 읽을 때 느꼈던 거대한 절망과 무력감, 슬픔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민주화 운동을 지나면서 망가진 청춘들의 갈 곳 잃은 분노가 무력감이 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 한 채 떠도는 이야기들. 모노톤의 풍경에 손으로 찍으면 슬픔이 묻어날 것 같은 이야기들..
그래서 2천 년대로 넘어갈 무렵, 칙릿이라고 불리는 가벼운 소설이 나왔을 때 진심으로 반가웠었지..
그런데 왜 스웨덴 소설은 아직도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날씨가 문제인가?
이런 걸 보면 차라리 물질만능주의, 영웅주의와 해피엔딩 가득한 미국문화가 차라리 나은 것 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