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현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겨울은 침대 옆 창틀에 놓아놓은 휴대폰을 들어 알람을 끈다. 6:45.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침대를 빠져나와 화장실로 들어간다.
“자 이제 일어나자..”
윙하는 드라이어 소리 사이로 선우가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까치집을 한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고, 겨울은 사과 하나를 한 입 크기로 잘라 통에 넣고는 하준이 책가방 안에 넣어놓는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또다시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7시 15분. 이제는 나가야 할 시간이다. 입술을 마저 바르고 트렌치코트를 걸친 뒤 현관 앞에 놓인 검은색 스니커즈를 급하게 신고는 인사를 한다.
“나 먼저 갈게, 오늘 하루 잘 보내!”
아침을 먹던 하린이가 엄마를 부르며 나온다. 겨울은 하린을 꼭 안아주고는 볼에 뽀뽀를 해준 뒤 현관문을 나선다. 지하철 역까지 가는 겨울의 발걸음이 바쁘다. 이 걸 놓치면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겨울은 8시까지 도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개찰구를 통과해서 승강장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승강장 끝 너머로 밝은 빛이 보이며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두 번이나 환승을 해서 도착한 겨울의 일터는 스톡홀름 근교에 있는 한국기업의 북유럽 법인이었다.
졸업이 가까워 오면서 겨울은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었다.
그 와중에도 한국기업에 지원하는 건 꺼려졌다. 한국 기업의 현지 채용 직원의 현실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한국에서는 과장이더라도 주재원으로 해외에 나가면 팀장, 부문장의 역할을 하게 되니, 현지채용으로 들어가면 본인보다 더 경력이 적은 사람들 밑에서 일하기가 쉬웠다. 거기에 현지채용은 월급만 받지만 주재원은 거주할 집에, 차에 국제학교 학비까지 받는다. 결혼을 안 하고 아이가 없었으면, 어쩌면 겨울도 어쩌면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안 보면 모를까, 그 걸 옆에서 보면서 일하면 더 속상할 것만 같았다.
지난여름, 스웨덴어 대신, 여행 대신, 인턴쉽을 해야 했었을까?
아님 영어공부를 더 해야 했을까?
스웨덴어를 더 열심히 해야 했을까?
애초에 전공 선택이 잘 못 되었던 걸까?
스웨덴의 구직시작은 작았고 겨울의 경력이 맞는 일자리가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마케팅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스웨덴어 능통자 아니면 최소한 영어 능통자를 뽑으려 했다. 겨울은 애써 잡포스팅에 쓰여있는 언어 부분을 못 본채하며, 언어는 좀 부족해도 실무경험이 있지 않나며 조금이라도 맞아 보이는 기업이라면 큰데 작은데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냈다. 하지만 인터뷰를 본 곳은 손에 꼽았고 합격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현지 대학원을 나오면 더 나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겨울에게 이 상황은 너무나 낯설었다. 학교를 다니든 회사를 다니든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갔고, 대학을 졸업하기도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막달까지 일을 했고, 육아휴직이 끝나자마자 복직을 했다. 근데.. 이젠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해는 점점 길어지고 날이 점점 따뜻해지는데, 메일함에 늘어나는 거절 메일을 읽는 겨울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에게 남편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한국회사에 사람을 뽑고 있는데 혹시 지원할 의향이 있냐는 이야기를 들은 게.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은 한국기업은 절대 안 간다던 겨울의 결심을 무너트리는데 충분했다. 그게 지금 겨울에 새벽같이 회사로 출근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