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현실2
10월 중순, 회사에 들어온 지도 3개월에 접어들었다. 많은 직원이 출근을 하는 터라 이 시간 사무실은 한가하다. 주재원과 몇몇 직원이 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북유럽 법인입니다. 지금부터 북유럽 법인의 10월 3주 차 매출 현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겨울의 맞은편에 앉은 주재원은 지금 한국 본사와 회의 중인지 이어폰을 낀 채 말을 시작했다. 서머타임인 지금,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현재 한국은 오후 3시이다. 요즘 한국도 52시간 근무 때문에 불필요한 야근은 삼가는 분위기인 탓에 팔로우업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최대한 일찍 전체 미팅을 시작하는 게 낫다. 잠시 해외 쪽을 담당할 때, 분기별로 회의를 참관하던 본사 직원이었던 겨울은 이제 애써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노트북을 열어 크라우드 피씨 접속 버튼을 클릭한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클라우드 피씨는 이역만리 해외법인까지 와있었다.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된 클라우드 피시는 모든 문서와 정보를 개인이 가지고 있는 노트북이나 피씨가 아닌 가상의 클라우드 피씨에 저장한다. 클라우드 피씨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서버가 한국에 있는 터라 매번 로그인할 때마다 5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모뎀을 쓰던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멀뚱멀뚱 접속되기를 마냥 기다리는 대신 겨울은 자리에 일어나 회사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싱크대를 열어 작은 볼을 꺼내 며칠 전 사놓은 시리얼과 요거트를 넣고 커피 한잔을 내려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 앞에서 시리얼을 먹으며 로그인되기를 기다렸다.
뱅글뱅글 돌아가던 화면이 멈추고 크라우드 피씨가 켜졌다. 보기에는 노트북 화면과 같지만, 인터넷 화면인 탓에 조금이라도 프로그램을 많이 돌리면 버벅대곤 했다. 크롬을 열어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그래도 인트라넷 접속은 조금 빠르다. 거기에서 다시 어제 판매, 생산, 물류 현황을 체크하기 위해 회사의 프로그램들을 열었다. 검색 완료 날짜를 어제 날짜로 바꾼 뒤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한다. 각 프로그램이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빈 그릇과 숟가락을 헹궈 식기 세척기에 넣어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어제 거래처로 나가기로 했던 물량 중에 웬일인지 일부가 아직 남아있었고 다음 주에 납품예정인 물량은 아직 폴란드 공장에서 출발하지 않고 있다. 오른쪽에 펼쳐놓은 다이어리에 내용을 적어놓는다.
ZN101 납품 지연, 다니엘에게 확인할 것.
BT207 배송 일정 재확인.
대충 시스템을 살펴보고 난 뒤, 메일함을 열어 메일을 확인한다. 본사와 유럽 지역 본부, 그리고 법인 내부에서 온 메일들을 읽는다. 자료 요청, 회의 알림, 이슈 해결 요청 메일들이 밤사이 한가득 와있다. 일정은 캘린더에 넣고, 이슈들은 확인해서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건 처리해서 답메일을 보내고 필요한 건 담당자들에게로 전달한다. 자료 요청은 내용을 확인해 날짜를 캘린더에 넣어놓는다. 그 사이 법인장이 출근을 한다. 면접 때 말했던 그대로였다.
“여기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는 건 아닌데, 주로 9시까지 출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근데 나는 좀 일찍 오는 걸 선호해요. 나도 늦어도 8시 반 전 출근하고. 뭐 꼭 일찍 오라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일찍 오는 게 좋지. “
스웨덴은 정규직이라도, 경력직이라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수습기간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 기간엔 합법적으로 고용주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겨울의 수습기간은 6개월. 그 안에 법인장의 눈에 들어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은 애들 등원을 선우에게 맡긴 채 법인장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해 앉아있는 것이다. 겨울은 한국에서도 일찍 출근하는 직원은 아니었다. 9시까지 출근이면 8시 50분쯤 들어와 앉으면 충분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일을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서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닌가. 잘 보이려고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일없어도 앉아 있고, 상사 출근 전에 나와서 일하는 척하는 건 너무 옛날이야기 아닌가. 물론 겨울이 회사에 입사할 때 겨울의 아버지는 30분 전에는 가서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그게 기성세대의 방식이었다. 더 일찍 나가 더 늦게 까지 20년 넘게 일해서 받은 거라곤 명예퇴직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겨울의 아버지는 그걸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바보같이... 밀레니엄이 지나고 대학에 입학해서 회사에 들어온 겨울 또래에게 회사는 더 이상 몸 바쳐 충성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전략적 동지라고나 할까.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 기본은 ‘받은 만큼 일한다.‘였다. 그 이상을 하는 건 회사가 아닌 자신의 커리어를 위함이었다. 더 이상 평생직장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한 회사를 꽤나 오래 다녔을 뿐이지.
상사가 일찍 오랬다고 애들을 선우 손에 맡긴 채 따르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수십 차례 거절 끝에 얻은 이 책상과 사원증이 겨울에겐 소중했다. 법인장은 여전히 잘 보이고 싶고, 잘 해내고 싶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열망이 겨울을 움직였다.
겨울이 얻은 자리는 법인장 직속으로 있는 미용기기 팀의 팀장이었다. 한국에 있는 본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업 다각화를 위해 미용기기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최근에 해외법인까지 불어닥쳤다.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식 전개였다. 경영진에서 신사업 아이템을 지정하면 일단 각 팀에서 똘똘해 보이는 직원들을 착출해 태스크포스팀을 조직한다. 그 팀은 밤새을 새 가며 업계동향과 국내외 경쟁사들의 기술을 파악하고 최대한 빠르게 베껴서 프로토타입을 완성한다. 거기에 경쟁력을 더할 플러스알파를 넣어 상용화 가능한 수준이 되면 제품화하여 가지고 있는 자본과 인력을 퍼부으면서 시장에 진입한다. 늘 성공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담당을 만들어 놓고 승진이 걸리면 “뜬금없이 갑자기 이게 되겠어”하던 거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게 한국식 기업 문화 아니겠는가.
미용기기 사업도 그랬다. 한국에서 미용기기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확산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다. 연말에 발표하는 다음 해 중점사업에 미용기기가 포함되어 주주와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공표된 다음에, 각 법인에 담당팀을 만들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북유럽은 시장자체가 작아서 굳이 담당팀을 만들어 운영할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지시에 따라야 하던 차에, 겨울이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름은 미용기기 팀이었지만, 그것만 하는 건 아니었다. 팀원이라는 디맨드 플래너는 다른 품목을 담당하면서 미용기기도 함께 하는 것이었고, 겨울도 미용기기 팀 팀장이었지만, 절반은 법인 전체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해야 했다. 현지어나 영어는 좀 부족해도 한국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고 흔히 ‘장표‘라고 일컫는 자료를 만들 수 있는 겨울에게 시키기 적당한 일이었다. 그래서 본사와 유럽 지역 본부와의 실무자들과 소통하며, 각 부분 매출을 취합하고 본사나 유럽 지역 본부에서 요청하는 자료의 초안을 만들어 법인장에게 보고했다. 그렇다고 미용기기 사업 확장에 소홀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쨌든 미용기기 팀 팀장이 아닌가? 본사에서도 중점사업을 선정했고.
한국회사의 해외법인에서 한국인으로 일하는 건 안과 밖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처럼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연결되어 있었다. 회사의 공식언어는 영어였지만, 본사와 회의를 하거나, 한국인 직원들끼리 소통 시에는 당연하게도 한국어로 말했다. 매출, 회계, 물류 등등 회사 내의 모든 시스템은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볼 수 있었다. 본사에서 보내는 모든 메일은 아래 한국어로 된 내용이 따로 있었기에 한국에서 일하던 겨울에게는 적응하기가 편했다. 법인 내부 인원과 이야기하지 않고, 본사와 유럽 지역본부와만 소통할 때면 한국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문서나, 정보들은 한국어로 되어 있었고, 궁금한 게 있으면 한국에 있는 담당자에게 연락해 다년간 다져진 k-직장인 매너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다는 건 한국인이 가질 수 있는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쉽게 부려졌다. 일반적인 스웨덴 회사처럼 여기도 유연근무제라서 어떤 날은 더 많이 일하고, 일이 있는 날에는 좀 더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했지만,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한다면 겨울은 8시에 출근했으니 5시에 퇴근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법인장은 5시가 넘어서 겨울을 호출하는 일이 잦았다. 다음날 발표가 있는 날에는 저녁도 먹이지 않고 8시 가까이 잡아놓기도 했다. 6시가 넘으면 인적이 거의 없었는 어두컴컴한 산업단지 안에 있는 회사 버스정류장에서 겨울이 앞집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두려움에 떨며 뜸해진 버스를 기다릴 때, 겨울을 잡아놓은 당사자는 회사차를 운전해 유유히 집으로 갔다. 물론 그렇게 붙잡아 놓을 때면 몇 시까지 법인장실로 오라고 말하면서 뒤에는 일 있으면 괜찮다고 말하긴 했다. 대신, 늦게까지 있으면, 같이 하니까 훨씬 편하다는 뉘앙스를 풍겼을 뿐. 한국식 회사 생활을 해봤기에 ‘눈치’ 없이 굴 수 없었다. 그게 겨울이 뽑힌 이유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