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시작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세요.”
시내 한복판 광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커다란 광고판의
문구가 겨울의 눈길을 끌었다.
겨울은 휴대폰 카메라를 켜 광고판 오른쪽 아래쪽에 있는 QR코드를 비췄다. 한 인터넷 주소를 떴다. 주소를 누르니 스톡홀름시에서 만든 소개페이지가 나왔다. 시에서 지원하는 창업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수요일 주 1회, 3개월 동안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가 사업화 단계로 진행될 수 있도록 법률 자문 및 물류배송 결제까지 도와준다고 했다.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십여 년의 경력,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이제 더 이상 이르지 않은 시기였다. 유럽에서도 k beauty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유럽에서 인기 있는 화장품 중에는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유명한 브랜드들도 많았다. 유럽에 있는 겨울에겐 기회였다.
‘만약 브랜드를 낸다면 어떤 컨셉이 좋을까? 뭔가 한국적인 느낌이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비건, 크루얼티 프리 같은 건 해주는 게 좋겠지? 초기 론칭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라인으로 낼까? 단품으로 시작해 볼까? 어떤 카테고리 제품을 메인이 되는 게 좋을까?’
신규 브랜드 만들기라는 입력값을 넣자마자 겨울의 머릿속에는 관련된 출력값이 끝없이 튀어나왔다.
겨울은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는 워드를 열었다
할 수 있는 일인가? Yes. 힘든 일은 있겠지만 부딪히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인가? 아마도?
하고 싶은 일인가?
..
.
모니터에 써져 있는 글씨를 물끄러미 보던 겨울의 눈이 커졌다.
‘나 하고 싶은 거 같은데?‘
그 순간 겨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브랜드!‘
윗사람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목표 말고,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위해 여기저기 부딪히는 거라면.. 힘들긴 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 컨셉, 제품 컨셉, 제형 특성, 처방, 향, 용기, 패키지, 생산처, 수출방법, 유럽 판매 인증, 홍보, 판매 채널, 재고 관리, 배송, 고객 서비스까지.. 책상에 굴러다니던 이면지에 대충 적어본 것만 15개였다. 그중에는 이미 익숙한 일도 있고 배워가며 해야 하는 것도 있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찾아야 하는 것도 있었다.
리스트를 바라보는 겨울의 눈썹 사이가 찌푸려졌다. 크게 숨을 내쉬더니 눈에 크게 뜨고 입을 앙다물었다.
‘일단, 로드맵이랑 액션플랜부터 세워보자.‘
겨울은 엑셀 파일을 첫 칸에 열어할 일이라고 써넣고는 그 아래로 주욱 브랜드 컨셉부터 고객서비스까지 이면지에 써놓은 목록을 하나씩 옮겨 적었다. 두 번째 줄 첫 번째 칸에는 액션플랜이라고 적었다. 그러고는 ‘브랜드 컨셉‘의 옆칸에는 생각나는 대로 액션플랜을 적기 시작했다.
최근 유럽 내 한국 브랜드 진출 현황 관련해서 kotra보고서나 기사 찾기, 세포라와 아마존 홈페이지 들어가서 화장품 판매량 많은 제품이나 브랜드 컨셉 확인한국 브랜드 찾기, 트렌드 분석 자료 찾기. 대충 컨셉 잡고 브랜드 스토리 써보기, 브랜드 이름 정하기, 로고 정하기.. 15개 할 일 중에 딱 하나에 대한 액션플랜인데도 잘게 나는 액션플랜들이 넘쳐났다.
겨울은 각각의 소요시간을 타이핑해 나가다 손을 멈췄다. 대충 더해도 브랜드 컨셉 잡는데만 세 달은 넘었다. 할 일이 14개나 더 남아있는데 첫 단계에서 세 달에 넘게 걸린다면 출시까지 가는 데는 얼마나 걸릴 것인가?
‘이 속도라면 2~3년은 족히 걸리겠는데?‘
하지만 화장품 업계는 1년 1년이 달랐다. 그렇게 출시가 늦어지면 초기에 집았던 컨셉이 출시할 때쯤 되면 이미 유행이 지나가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속도가 생명인데 정해진 기한이 없고, 일정을 꼭 맞춰줘야 하는 유관부서도 판매처도 없이 그렇게 빠르게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도와주는 이 없이 스스로 하다가 막히기라도 하면 기약도 없이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방학을 하게 된다면?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데 과연 이 일을 우선으로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이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또다시 아이들을 뒤 전으로 밀어놓고 일을 하다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준비기간 동안은 돈도 못 버는데, 아이들 케어도 못 하고 왜 이렇게 아등바등 하나 싶어서 포기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을 다 이겨내고 브랜드 출시 단계까지 간다 해도 브랜드가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울은 미리 걱정하고 포기하고 싶진 않아 졌다.
더. 이.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