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 가득한 고민

멈춤, 다시 원점 4

by 노랑연두

어떤 길이 맞는지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겨울은 쉬지 않고 링크드인에 들어가 구직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적어도 한 달에 6개의 회사에 지원해야 했다. 고작 6개월 다녔을 뿐이지만, 복지의 나라답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가 있었다. 회사의 계약이 끝난 날 바로 노동청에 신고를 하고, 실업급여지급을 대행해주는 akassan에 관련 서류를 내고 나면 지급받을 실업수당이 얼마인지 알려준다. 팀장급 월급치고 적게 준 월급이었지만, 그래도 스웨덴 평균 임금에 비하면 조금 높은 편이었던지라 기대를 해봤다. 한 달 가까이 기다려 책정된 금액은 고작 40만 원 정도였다. 만약 선우가 없이 혼자인 채로 해고를 당했다면 집세는커녕 식비도 모자를 금액이었다. 고작 6개월 일해놓고는 기대한 게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10개월이나 되니 꽤 길었다. 십 년 넘게 일했던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실업수당 기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작은 돈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겨울은 명목상 구직활동을 계속했다. 상황은 전해에 직업을 찾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에 쏙 드는 회사는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맞을 만한 회사에는 무조건 지원했다. 대부분 서류에서 떨어졌고, 드물게 전화로 인터뷰를 봤고 결국은 떨어졌다. 처음에는 직무와 회사에 맞게 이력서를 고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너 개의 이력서를 직무에 맞춰 기계적으로 내고 있었다.


‘어차피 안될 텐데, 괜히 힘 빼지 말고 개수만 채우자.’


가끔씩 링크드인을 통해 리쿠르터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다. 너의 경력을 보니 이 직무에 맞아 보여서 연락했다는 말이 반가워 바로 이력서를 보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그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겨울보다 더 간절하게 직업을 찾는 사람들에게 혹할 만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체적인 틀은 비슷했다. 경력 불문, 재택근무 가능, 시간당 30달러~50달러. 리쿠르터와 회사이름을 구글에 찾아보기 전부터 이미 이게 사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런 메시지인지 모르고 반가워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리쿠르터들이 이름을 알만한 회사들에 알맞은 자리가 있다며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그때 다니던 회사 또한 이름 알만한 회사였고, 굳이 그 회사를 떠나야 할 이유가 크게 없었다. 회사를 새로 간다면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겨울에게 제일 필요한 게 그 시간이었으므로.


간절히 원했다면 돈을 들여 취업컨설팅을 받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력서 첨삭을 받고 인터뷰 과외를 받으며 말이다. 하지만 겨울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나 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섣불리 일을 시작한다면 더 빠르게 지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링크드인에 들어갔고, 대학원, 대학, 직업교육, 자격증 관련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열심히 검색한 덕분인지 인스타에 들어가면 직업학교와 대학등의 광고가 계속 보였다. 지금 지원하세요라고 적힌 피드를 보면 홀린 듯이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교육과정 설명, 등록비 안내, 수료 후 진로… 무엇보다 겨울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챙기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업시간과 위치였다. 자신도 모르게 흔히 말하는 전문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면 아이들 케어는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듯했다.


이민자들이 쉽게 선택하는 직업과정 중에는 간호조무사와 어린이집 보조교사가 있었다. SFI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과정만 졸업하고 나면 시작할 수 있는 데다 기간도 1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교육에는 실습이 포함되어 있고, 졸업 후에는 최소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겨울이 다녔던 SFI반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밟을 예정이라고 했었다. 가진 게 없이 빠르게 이 나라에 정착해 일을 해야 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겨울은 이미 스웨덴에서 일을 해봤었다


할 수 있는 일인가? Yes, 단 1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함.

해야 하는 일인가? No

하고 싶은 일인가? No


들어가기 쉬운 직종인 만큼 처우는 만족스럽지 않을게 분명했다. 전 회사월급의 60% 정도라도 받으면 다행이었다.


‘여기 갈 거면 거기서 그냥 버텼지.’


겨울은 아직 그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도 있었고, 스웨덴에서 받은 월급도 아직 남아있었다. 많진 않지만 실업급여도 나오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선우가 돈을 벌고 있었다.


애들을 재워놓고 침대에 앉아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대학동창의 개원 소식을 알게 되었다. 찐 부자들이 산다는 한남동에 자기 병원을 내다니. 사진 속 병원은 마치 인테리어 잡지를 보는 것 같았다. 우아한 원목 가구와 센스가 돋보이는 그림, 쉼이 느껴지는 대기 공간은 부와 여유가 느껴졌다. 만약 그 친구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갔다면 어땠을까? 겨울이 이미 회사를 다니던 때, 지방으로 가서 두꺼운 전공서적들에 둘러싸여 하루가 멀다 하고 퀴즈와 시험을 보며 괴로워하던 그녀를 위로 아닌 위로해 줬던 일은 이미 머릿속에 지워졌다.


“나는 이 나이에 계속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멋있더라. 자기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 지인의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했던 그녀는 남편의 이직으로 인한 잦은 이사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한국에 있었다면 언제든 다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으로 오게 되면서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직업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던 그녀가 ‘계속 회사‘ 다니는 사람에 대한 동경을 표하자,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 마냥 겨울의 마음은 헤집어졌다. 그 안에 있을 때는 그저 버틸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치사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고, 내 생활을 희생하면서 버텨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밖에서 볼 때는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하는 멋진 커리어 우먼처럼 보일 수 있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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