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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Oct 11. 2023

5년의 연애가 끝났다

헤어지면 세상 무너질 줄 알았는데

민준은 같은 연극단체에서 일하던 선배였다. 키는 180cm, 발은 300mm. 나에게 공룡발(빅사이즈 신발 브랜드) 세계를 알려준 세 번째 애인. 그는 등단하지 못한 시인이었고, 말수가 적었다. 당시 우리는 연극을 하며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많았는데, 꼼꼼하고 깔끔했던 그는 내가 양말을 분리 세탁하지 않는다며, 샤워할 때마다 내 양말을 손빨래했다. 그때마다 “유난이다”라며 진저리를 쳤는데, 미운 정이 들었는지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을 때도 자꾸 그가 청소하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그가 전화했다. 다짜고짜 “무대에서 팔자로 걷지 말라”며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밤 열한 시였다. 스물여섯 살이었던 나는 그걸 사랑 고백으로 받아들였다. 며칠 뒤, 그와 키스하는 꿈을 꿨다.


그전까지 난 남자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다 H.O.T를 좋아할 때도 나는 핑클 이효리가 좋았다. 남친을 만나다가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부르면 달려갔다. 술에 취해 막차가 끊길 때도 남친 집이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애 집에서 잤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나 좋다는 남자가 있을 때마다 연애했다.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하지만 도무지 좋아지지가 않았다. 그런 내가 민준이 좋았다. 동성애자임을 부인하다가 드디어 미친 걸까? 아니면 이제 나까지 속이는 데 성공할 걸까? 혼란스러웠지만, 꿈에서 키스까지 한 이상 남은 건 직진이었다.


하루는 술을 마시고 사무실에 갔다. 택시 기사와 말이 통해 명함까지 주고받았다. 경기도 외곽에 사는데, 택시비가 많이 나올 거 같아 서울 사무실에서 잔다는 말도 했다. 사무실에 왔는데, 기사한테 전화가 왔다. 경기도 집까지 공짜로 데려다주겠다고. 술이 확 깼다. 명함에는 사무실 주소가 있었다. 민준에게 전화했다. 언제든 그 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한 시간 뒤, 민준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벽 1시. 일산에서 구로까지 택시를 타고 온 것이었다.


다음날, 그와 밤새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자꾸 웃음이 났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몸이 가뿐했다. 종일 그에게서 온 사귀자는 문자를 보고 또 봤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었다. 저 남자 만나요. 드디어 공개 연애를 할 수 있다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 같은 매칭이 내게도 일어났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동성이란 이유로 절연당할까 봐, 자칫 소문이라도 나 따돌림당할까 봐 고백도 못 하고 끝났던 숱한 짝사랑과도 이제 결별이었다.


나는 민준이 좋았다. 무엇보다 민준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친구들은 말했다. “너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 같아. 그렇게 좋니.” 길을 걸을 때도 앞을 보고 걷지 않는다고 민준은 내게 늘 “네가 꽃게야?”라고 물었다. 꽃게든, 매미든 상관없었다. 연애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부동산 전단지를 열심히 봤다. 반지하도 좋으니 민준과 살 집을 구하고 싶었다. 한 달 모텔비만 모아도, 월세는 거뜬히 낼 수 있었다. 연애 1년 차, 동거 이야기를 꺼내니 민준이 말했다. “나 비혼주의자야. 너도 비혼주의라며?” 아니, 그건 널 만나기 전 이야기지. 난 다시 물었다. “비혼주의면 동거는 할 수 있잖아?” 민준이 말을 바꿨다. 사실 자기는 독신주의자라고. 말문이 막혔다.


그럼 너는 평생 나랑 모텔에서 만날 생각인 거야? 왜 나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야? 내가 물으면 민준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간 나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비혼주의자로 살기> 강의까지 들었지만, 동거를 안 하는 이유까진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동거 이야기로 자주 다퉜고(주로 내가 화를 냈고), 대화하면 기분만 나빠진다는 이유로 섹스만 하고 헤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 년에 한두 번 2~3일씩 잠수를 타던 민준이 한 달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정한 일자리가 없던 그가 입시 캠프 강사로 들어갔을 때였다. 한 달 뒤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폭발했다. 차라리 헤어지고 싶다고 말하라고 화를 내니 그는 질린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헤어질지 말지를 결정해 연락하라고 그에게 통보했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석 달이 넘도록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2호선 낙성대역 7-1에 올라탔는데, 민준이 있었다. 나는 그가 곧 사무실이 있는 신림에서 내린다는 걸 알았고, 다급해졌다. 그에게 다가가자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나는 말했다. “잘 만났다. 우리 헤어져.” 그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뭘 기다려? 어떻게 더 기다려.” 내 기다림은 충분하니 제발 헤어져 달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민준과 오늘 정리하지 않으면, 또 묵묵부답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기다림 속에서 고통받겠지. 이 기다림의 고통을 끊을 수 있다면 그를 다시 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티끌만큼은 그가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잡지 않을 거라는 것 역시 알았다. 그는 기다려 달라고, 더 이야기해 보자고 했지만, 신림역에 도착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전철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는 사이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얘기해.”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자신의 선택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 그저 이별이 도착했기에 자기는 내린다는 태도. 도착한 이별마저도 못 본 척 회피해 버리는 우유부단함. 처음에는 우유부단한 그가 모질지 않아 좋았고, 따뜻한 사람이라 믿었다.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려서인지, 그날 신림역 전철 안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의 연애가 끝이 났다.


헤어지면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속이 후련했다. 왜 진작 헤어지지 못했을까. 같이 살자는 내 말에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미소만 지었을 때, 아무 언지도 없이 며칠 동안 연락이 끊겼을 때, 대화를 하면 자꾸 싸우니 섹스만 하자고 그가 제안했을 때, 왜 나는 이별이란 선택지를 고르지 못했을까. 그를 사랑했지만, 만날수록 괴로웠다. 그런데도 헤어질 수 없었다. 민준과 헤어지고 다시 좋아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성애자로 살 자신도 없었다. 그때까지 내 주변에는 레즈비언이 한 명도 없었고, 동성애자로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걸 이십 대의 나는 알지 못했다. 민준 외에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이 연애가 결국 실패로 끝날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우리 관계가 이미 망가져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 년 뒤, 지인에게서 그가 나와 만나던 마지막 반년동안 우울증 약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일주일에 서너 번 얼굴을 보고, 매일 통화하던 애인이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입시 캠프에서는 뭐가 힘들었는지, 잠적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왜 혼자 살고 싶은 건지. 물으면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까 봐, 그렇게 겨우 잡은 연애의 기회를 놓칠까 봐. 그가 내게 온 기회가 아니라 고통받는 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신림역에서 내려 그에게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전에 우리의 관계가 이만큼 망가지기 전에, 평범한 연인처럼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았을까.


헤어지고 석 달 뒤 딱 한 번 그에게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해 하는 비명에 가까운 말을 삼십 분 동안 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날 그가 내게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연애 5년 만에, 헤어진 뒤에야 전하려던 그의 마음은 끝내 내게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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