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병원의 소아정형외과와 내과 진료를 앞두고, 나는 아기의 건강에 염려가 많았다. 의사가 말하지 않았는가? 다른 곳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아기가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조여오는지 모른다. 숨소리만 조금 커져도, 젖병을 빨 때 생소한 소리만 들려도 표정은 굳고, 어쩔 줄 몰라했다. 몸에 이상이 생긴 신호일까 싶어서 신생아 돌봄실로 곧바로 쫓아갔다.
“선생님! 아기가 젖병을 빨다가 갑자기 숨소리가 거칠어졌어요. 코에서 이상한 숨소리가 나요.”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우리 애가 ‘급하게 먹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웃기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했지만 안도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가, 엄마 뱃속에서 배 많이 고팠어?”
웃으며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또 금세 다른 이상은 안 생기려나 미어캣처럼 경계 태세로 들어가 버렸다.
산부인과에서 예약해 준 3차 병원의 진료일은 생후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내 아랫배의 수술 실밥은 아직 뽑기 전이었고, 우리 아기의 탯줄도 떨어지기 전이었다. 조리원에서 따끈하게 타 준 분유 젖병 한 병과 기저귀 두어 장을 챙겨 차에 올랐다. 아기를 엄마 품에 안고 가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봐 카시트에 태웠다. 보통이었다면 조리원 퇴소할 때 처음 눕혔을 바구니 카시트에 아기를 일찍 태우게 된 것이다.
아직 아기를 돌보는 손길이 어색하고 느린 와중에 첫 외출은 여러모로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병원에서는 어떤 말을 듣게 될지 떨리기도 해서 이래저래 심장이 뛰었다. 조리원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10분쯤, 가까웠다.
접수를 확인하고 진료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20여 분의 대기 시간이 생겼고, 그 사이 아기가 기저귀에 소변을 봤다. 기저귀가 젖었어도 조금 있다 갈아줘도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기가 불편하다고 울지도 않았는데, 부랴부랴 서둘렀다. 초보 엄마는 기저귀를 당장 갈아주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이후에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는 크면서 기저귀가 젖었다고 우는 법이 끝까지 한 번도 없었다. 쉬를 해도, 응가를 해도 말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쉬 하면 말해, 응가하면 말하는 거야."라고 계속 말해줘야 했다. 기저귀에는 무던했던, 불편을 못 느끼는 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날의 나는 진료 시간이 코 앞이라 얼른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화장실을 찾았다. 가까이 있는 화장실에는 기저귀 갈이대가 없어서 조금 걸어가야 하는 화장실로 아기를 안고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기저귀 갈이대가 낡고 더러워 보였지만 내게는 차선책이 없었다. 아기를 눕히고 겉싸개를 펼치고, 속싸개를 벗겼다. 그러자 갑자기 할머니들이 모여들어 우리 모자를 빙 싸고 둘러섰다. 볼일 보셨으면 나가실 텐데 들어오는 분들마다 우리를 구경하는 바람에 좁은 화장실에 사람이 꽉 차고 말았다.
그 사이에 간호사가 우리 아기 이름을 부를까 봐 나는 조바심이 났다. 기저귀 가는 것만 해도 빠듯한데, 할머니들이 너도 나도 질문하고 곁에 서서 말을 꺼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못 하는 사람인지라 점점 예민해져서 신경이 곤두섰다.
“어머나! 신생아다! 갓난아기다! 아들이네! 요즘 아기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몰라! 아이고! 아직 탯줄도 안 떨어졌네! 탯줄도 안 떨어진 이렇게 작은 아기가 어디가 아파서 이 큰 병원에 왔을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기 얼굴에 침이 튀겠다 싶었다. 그 와중에 볼일 보고 나온 할머니가 세면대에서 물로만 손을 휘휘 씻고, 물 묻은 손을 자기 옷에 대충 쓱쓱 비빈 후에 ‘나 손 씻었어요’라고 말하면서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아기 손을 만질 때는 머리에서 스팀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거절하거나 경계를 긋지 못하고, 겉으로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어르신들께는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니까 “아! 네, 네!” 하면서 참은 것이다. 무엇보다 빨리 진료실 앞으로 가야 하는 게 급했기 때문에 그분들과 대거리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화장실을 빠져나오는 데 재난 현장을 탈출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형외과 진료는 금방 끝났다. 의사는 아기를 침대에 눕혀놓고 손을 살펴보고, 다른 온라인 병원 상담에서 들은 답변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나는 다른 증후군의 여부와 장기 이상 등 동반 기형의 가능성을 질문했다. 그때 그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아직 너무 어려서 검사하기가 어려우니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까지 진료 경험으로 이 아기 얼굴을 봐서는 아마 다른 증후군은 없을 겁니다.”
그날 밤, 낮에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나의 행동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어도, 화장실에서 예의를 차리느라 할머니들께 한 마디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웃고 있지만 말고, 엄마로서 막아줘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아기를 지켜주겠는가? 남의 감정 상할까 봐, 예의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눈치 보지 말고, 단호하고 예의 있게 거절하는 연습부터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단지 경험에 의거한 의사의 말은 명확한 근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괜찮을 거라는 내 안에 연두빛 새싹같은 희망을 주었다.
첫 번째 외출을 한바탕 치른 후 남편도 힘들었는지, 그로부터 며칠 후에 예약되어 있던 내과 진료는 백일 이후로 미루자고 말했다. 나도 그러자고 했다. 아기가 일단 잘 먹고, 잘 자는 모습이 우리를 안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