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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S Sep 02. 2020

초코 바나나 잼 토스트 그리고 커피

오늘은 정말 달디 단 게 필요해

피곤한 날입니다. 개운하게 일어나지도 못했고, 잠을 잘 못 잔 것에서 기인한 두통도 찌릿찌릿 관자놀이 주변을 괴롭히는 그런 날.

창밖으로 보이는 날은 맑은데 몸이 축축 쳐지는 게 영 찌뿌둥한 아침을 맞았어요.


보통은 정신이 번쩍 들게 찬물로 세수를 하지만 괜히 그 아찔한 차가움이 내키지 않아 오늘은 물을 데웁니다.

뜨거운 물 반, 차가운 물 반 졸졸 섞어 세숫물을 만들고 손을 넣어 그 미지근한 느낌에 위로를 받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쿨(cool) 한 것과 핫(hot) 한 것이 좋다고 많이들 외치죠, 그 둘을 오가며 담금질하다 보면 오늘같이 뜨뜻미지근한, 그저 누군가의 체온 같은 위로가 필요한 때가 오지 않나요?


얼굴에 부딪히는 맑은 물, 꼼꼼히 씻어내고 개운해진 마음. 묶어 올렸지만 결국 몇 가닥 젖고만 잔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나면 얼추,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볼 힘이 납니다.


아침엔 모름지기 허기가 져야 해요. 공복이 주는 그 허전함은 아, 오늘은 또 무엇을 내 인생에 채워볼까 하는 기대감을 일으키잖아요.

가라앉았던 기분도 상쾌하게 북돋웠겠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보니 입안이 쨍하도록 단 것이 먹고 싶어 집니다.

집에 항상 있는 바나나, 마음이 짜게 절여진 날이나 뾰족한 것에 긁힌 날에 달고 부드럽게 위로를 받을 수 있어 언제나 상비해둡니다.

보통 하루에 하나 먹는데 오늘은 두 개. 두배 더 부드럽고 달달하고 싶으니까요.

마트에서 750g 용량의 누텔라를 보자마자 했던 생각은 ‘이건 인생의 치트키다!’였습니다. 묵직한 초콜릿 크림병을 들고 귀가할 때의 기쁨이란.


작은 용량도 있었는데 큰 걸 집어온 이유는 찬장에 넣어두고 자린고비처럼 오래오래 기쁘고 싶어서였습니다. 집에 꿀발라 놨어? 하는 농담도 하잖아요, 전 이제 집에 초콜릿을 발라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치덕치덕. 이보다 더 알맞은 의성어는 없으리라 생각될 만큼 듬뿍. 바나나를 깔기 위해 얇게 쫑쫑 잘라줍니다. 요리를 업으로 삼은 친구에게 물었더니 초콜릿이랑 바나나, 또 초콜릿과 오렌지가 의외로 어울리는 조합이래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저의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또 꺼냅니다. 한번 사서 두고 여기저기 쓸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재료는 없지 않겠어요? 아마 마멀레이드를 사두지 않았다면 전 포도잼을 사러 달려 나갔을 것 같아요.

한 면엔 초콜릿 잼을 다른 한 면엔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듬뿍 바르고 바나나를 차곡차곡 올려준 후 계핏가루를 솔솔 뿌려줍니다. 바나나랑 계피가 또 끝내주게 잘 어울리죠.


오늘은 블랙커피를, 그것도 인스턴트커피를 마실 거기 때문에 무엇이든 풍미를 살려줄 재료가 있다면 과감하게 넣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진득한 잼에 잘 달라붙은 바나나는 토스트 두장을 겹칠 때에도 빵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버텨주네요.

쓱쓱 반으로 잘라 접시에 착착. 마치 싱가포르의 카야잼 토스트가 생각나는 비주얼이 되었어요. 남은 바나나를 옆에 깔고 보니 싱그러운 기분이랑 다르게 접시 위에 초록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아이스크림 대신 얼려먹고 남은 청포도 몇 알도 잘라 나란히 올려봅니다.


그야말로 머리카락까지 쭈뼛 설 정도로 달지만 한입엔 초콜릿, 한입엔 바나나, 또 한입엔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느껴지는 쫀득하게 기분 좋은 아침 한 끼입니다.


커피가 블랙이라 더 좋은 이유는 달디 단 한입 후에 쓰디쓴 한 모금이 마치 요즘의 인생 같아서죠.

일부러 아주 뜨겁게 만든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한 모금. 뜨겁고 쓰디쓴 느낌이 가시기 전에 달디 단 토스트를 한입. 쓰고 단 인생을 한 조각에 담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앞으로 어디서든 영혼을 얻어맞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날엔 이 토스트를 먹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아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영혼이 건강해졌다고 믿어요. 그리고 오늘은 제자리걸음을 하더라도 꼭 만보를 걸어야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란다는 말은 다정하지만 휘발성이 강하죠. 삶은 달콤한 날보다 쓰디쓴 날들이 사실 더 많으니까요.

푹 젖은 마음을 단숨에 말릴 수 없을 땐, 코끝까지 쨍하게 울리는 단 걸 크게 한입 드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꼭 뜨겁고 쓴 커피랑 함께요. 하지만 그런 날이 너무 많지 않기를. 마음을 위해서도 건강을 위해서도.


오늘보다 내일 아주 조금은 더 달달한 하루가 되기를. 저도 스치듯 이 글을 읽어주신 당신도.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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