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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Jan 01. 2023

육아일기를 쓰기 힘든 이유

[906일] 쇼윈도 아빠라도 좋아

3개월 만에 육아일기를 쓴다. 갈수록 쓰기가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일기 쓰는 아빠와 현실 아빠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아무래도 육아일기 특성상 글에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날 수밖에 없고, 좋은 아빠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언제는 육아일기를 쓰자마자 아이에게 버럭 성질을 낸 적도 있다. 그럴 땐 내 안에서 작은 비웃음이 들린다.


'이중인격자...'


쇼윈도 부부처럼 쇼윈도 아빠로 사는 것 같은 죄책감이 글 쓰는 일을 망설이게 한다.

그렇지만 글에 적은 내용과 글을 적을 때의 마음은 진심이다. 다만, 글에 다 적지 못한 추레한 모습들이 더 많이 있을 뿐이다. 마치 식탁 위는 난장판인데 깨끗한 일부분만 카메라로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처럼.

분명한 건, 아이를 위해 몇 번이나 김장을 하는 모습과, 아이에게 큰소리치는 모습 모두 나라는 사실이다.

매일 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그 사실을 인정하곤 한다.

김치 호랭이를 위해 어느덧 김장 5회차


또 다른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에 무뎌지기 때문이다. 비단 육아일기뿐 아니라 일기라는 글쓰기 전체에 해당되는 이유일 테다.


몇 주 전 어린이집 재롱 잔치가 있었다. 사회자는 아이들이 보통 세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정지된 것처럼 멍하게 있는 아이, 흥에 겨워 날뛰는 아이, 그리고 내내 울기만 하는 아이.

우리 집 아이는 세 번째 부류였다. 그것도 어린이집에서 유일한. 세상 귀여운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아이는 등장부터 울먹이는 얼굴을 하고 음악이 흐르는 내내 사회자에게 안겨 있었다. 아이가 대성통곡하는 바람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아이 엄마 대신 혼자 그 광경을 보던 나는 왼손엔 카메라 영상을, 오른손엔 휴대폰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숱하게 애를 불렀다.


'울지 마 바보야!'


날 닮아 겁이 많은 아이가 가엽기도 하고, 남은 인생 나처럼 순탄하지 않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일곱 살 형누나들의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담임 선생님이 내게 아이를 한번 안아봐도 되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아이를 안고 고생했다 말했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위로해주었겠거니 생각하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런 중대사가 있었음에도 글로 쓰기 힘든 이유는 뒤따라오는 매일 같은 노동과 분노와 한숨 때문이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 외에 놀아주는 일, 달래는 일, 가르치는 일 등 육아는 끝이 없다.

정신 차리고 보면 재롱잔치는 이미 며칠 전이고 시의성을 상실한 나의 소재는 그렇게 글이 되지 못한다.


누구를 위한 재롱잔치인가


육아일기 쓰기가 어려워지는 세 번째 이유는 같이 있는 시간의 자연적 감소 때문이다.

아이는 집보다 어린이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집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어느 순간 내가 찍은 아이의 사진보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사진이 더 많아졌음을 깨닫는다.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타인을 통해 전해 듣는 게 익숙해질 즈음 일기도 자연스레 뜸해진다.

다른 두 가지 이유와 달리 세 번째 이유는 안타깝게도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주말에 쇼핑몰에 가보면 그토록 아빠들이 육아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리라.

같이 보내는 시간의 절대 양이 적은 대신, 밀도 있게 놀아줘야 한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나 어디.


벌써 아이와 함께한 세 번째 해가 저문다.

아직 맘마 달라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저 갓난쟁이가 한국 나이로 네 살이 된다니. 기가 찰 일이다.

새해에도 똑같은 이유로 육아일기 쓰는 일은 쉽지 않을 게다. 아마 갈수록 더 힘들어지겠지.

새해 다짐으로 다이어트 밑에 성실한 육아일기 쓰기도 한 줄 써넣어야겠다.

이루지 못할 목표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하니까.

아이의 지금은 부모만이 기억해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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