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스터디 #2015년 4월 25일 주제 : 성장
"어이구, 우리 00이 이제 다 컸네?" 이 한마디의 위력이란 실로 막강했다. 두렵고 무서워 겁이 났던 마음이, 이 한마디를 듣고나면 어깨에 힘이 딱 들어가며 뿌듯함으로 변모하고 만다. 분명 '어린 아이'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다 큰 '어른'이라고 인정받고 싶은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나의 성장을 그렇게 짐작하고 그것을 성취감이라고 느끼며 자라왔다. 아픈 주사를 맞으며 울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혼자 심부름을 다녀왔을 때, 새 교복을 입으며 학교에 진학할 때 그랬다. 주로 고통을 견디거나, 새로 시작하는 두려움을 맞이할 때 이러한 칭찬스러운 말에 마음껏 아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여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견디는 것이 진정 성장인가?' 연이어 든 생각은 '다 컸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걸까? 나는 대체 어느정도 자란걸까?'. 나는 성장이란 단어를 마주하면서 내가 성장한 어른인지, 아직 아이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주민등록증도 나왔고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나이의 경계는 지난지 오래다. 분명 사회적으로 '성인' 즉 '어른'의 상태인데, 실감이 도통 나지 않는다. 견딜 것은 아직 많이 남았다. 당장 취업도 해야하고, 머지않아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를 낳고 길러야한다. 이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섭고 겁이난다. 취업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두려움인데, 이를 잘 해낼 수 있다는 충만한 용기는 이제 예전같지 않다. 주위의 이룬 것이 많은 나보다 더 '어른'인 사람들은 '두려워도 견디면서 해내야지 뭐 별수 있나.'고 흔히 말한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견디는 일이 이제 지친 상태라는 것. 그리고 이 상태를 스스로 실감한다는 것이 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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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20대의 00아. 견디는 것이 어른이라고? 순 뻥이야. 세상에 다 큰 어른이 어딨어! 나이를 더 먹어오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끝이 있는 종점이 아니란 걸 알았어. '다 큰 어른'이란 될 수가 없는 것이더라고. 일기를 쓴 당시의 너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여전히 그때의 너와 같은 고민을 해. 견뎌야 할 두려운 일은 여전히 존재하고 결코 익숙해지지 않아. 심지어 죽음을 앞둔 성장의 끝의 상태에서라도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니까. 내 부모님도 그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증고조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일거야.
이 당시의 네가 두려운 이유가 무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그 이유를 너와 지금의 내 차이에서 알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두려운 일을 잘 해냈을 때, 더 이상 나를 다 컸다며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게 무척이나 힘들고 두려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칭찬이 더뎌진다는 것이더라. 해내야 할 것을 해내는 것이 당연해 지는 시기가 오더구나. 아마 너도 이 과정에 있을 거야.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정수를 친 한 문장이 있다. "삶은 고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책의 첫 문장인데, 이 책의 이 첫 문장을 읽자마자 읽기 전의 나와 그 후의 나는 새삼 달랐다. 이 작가는 책 시작부터 삶 자체를 정의했다. 삶은 필연적으로 힘든 일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란 진리지. 이 문장을 읽기 전의 나는 힘든 일이 안왔으면 싶고, 그 일이 두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삶에서 고난을 피할 수 없어. 너는 '견딘다'라고 표현을 했지만, 힘든 일을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을 때, 견딘다고 애를 쓸려는 작정을 하면 지칠 수 밖에 없겠지. 그 모든 역경은 어떻게든 지나간다. 네가 당시 걱정한 취업도, 결혼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물 흐르듯 해가게 돼. 견딘다는 생각보다는, 어차피 삶은 고해라는 것을 알고, 무조건 찾아 올 수 밖에 없는 역경이나 두려움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해나가면 돼. 견디지 않아도 괜찮고,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아.
삶은 어차피 고해(苦海)야. 살아가면서 당연한 것을 애쓰며 걱정하면서 건강 축내지 말고 헬렐레 하면서 살아.
- 나이가 들어버린 내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