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버팀목
1-3 유일한 친구 키 큰 지팡이
남향의 집이라 햇빛이 완연히 비쳐서 언제나 복도식 대청마루와 방 3칸은 환한 태양이 가득 드리워진 가운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마당도 아주 넓은 집엔 항상 빨랫줄에 빨래가 바람에 휘날리고 강아지 베스는 항상 하굣길 누구보다 먼저 나를 반겨준 친구이었다.
방안에는 언제부터 인가 엄마의 약봉지와 나보다 키가 큰 지팡이가 어느 날 구석에 자릴 잡고 있었다. 왜 지팡이가 구석에 있었는지 이유도 몰랐다.
그만큼 생각도 철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눈에 들어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4시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른 친구들처럼 밖으로 나가서 고무줄 뛰기, 소꿉놀이, 등등하고 싶은 일이 참으로 많았다. 밖에서의 재잘거리던 친구들의 낭랑한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유일한 내 친구 내 말벗은 시종일관 꼬리를 흔들어주는 강아지 베스 한 마리와 함께 산책의 보조 기구로 사용한 키 큰 지팡이 밖에 없었다.
나도 의지하며 몸무게 가 유독 많이 나간 엄마를 부축하며 다녔기에 내 친구는 말없이 나를 지켜주었고 불편한 몸을 끌고 다니신 엄마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엄마가 쌀집을 운영할 때는 참으로 풍족했었다.
언제나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땐 큰 고무대야에 들어있는 나의 선물인 왕깔사탕과 하얀 잼이 들어있는 곰보빵은 하루도 빠짐없이 집을 지키는 막내 선물이라고 나한테만 주셨다.
엄마의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는데 그 기억도 잠시 어느 날 화장실 다녀온 뒤 쓰러지신 엄마는 그날 이후 자리에 누워서 제대로 거동을 못하셨다.
하굣길 눈만 버금 거리시는 엄마의 표정과 불편하신 다리 대신 함께 산책을 하던 내 친구는 나보다 키가 더 큰 지팡이 하나가 전부였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신 엄마는 혼자서 외출이 힘들었고 모두가 일터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는 언니 오빠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와 함께 점심을 챙겨 먹고 강아지랑 마당을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엄마의 외출이었다.
엄마의 말 없었던 엷은 미소와 눈이 축 처진 하회탈같이 아름다운 그 인자한 모습은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 인상이 유일하게 기억된 것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 세월이 지나 유일하게 바로 위 언니가 엄마랑 나랑 마당 앞에서 의자에 앉은 엄마의 사진 속에서 본 그 미소가 지금껏 그대로 나의 기억 속에 있다.
격동의 시절 70년 그 시절에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유일하게 엄마의 기억을 되찾아 주었다.
유난히 44살의 엄마 모습은 내 머릿속엔 할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2남 4녀 중 막내인 나를 아주 늦게 임신이 돼서 임신 중독증을 앓아서 힘들게 출산을 하셨다고 했다. 언니 오빠들이 늘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임신중독증을 겪은 이후 엄마가 건강 이 좋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 말은 언제나 나는 거꾸로 듣고 해석을 했다.
‘막내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건강했을 테이고 중풍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혼자 나에게 되묻고 나란 존재가 태어나지 말 아어야 할 아이였다고 늘 자괴감도 빠져 있었다.
그때부터인지 혼자 묻고 혼자 판단하며 혼자 속상해하던 성격이 형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성격이 결국 열등감으로 계속 자릴 잡았었고 말 못 하는 혼자의 비밀은 언제나 혼자서 풀기도 했다.
<작가의 문장 >
사람들은 친구를 통해 대화하며 마음을 교류 하는 방법을 배울것이다.
인간 관계의 첫 걸음은 좋은 친구이다.
자작시
친구/ 아다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말이 없는 공기를
끊임없이 보내준
두 여자의 유일한 버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