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던 엄마

기억의 파편



1-2 나만 없던 엄마

깔깔깔 호호호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운동장에 피어오르던 흙먼지는 뿌옇게 흩어 날리고 하얀 손수건을 곱게 단 고사리 손과 손을 잡은 엄마와 아들딸들의 아름다운 장면이 가득 메운 날이었다.

지금은 잘 구경하지 못하는 신생아들이 쓰고 있는 하얀 거즈 손수건의 기억이 멈추어 있다.

초등학교 (지금은 초등학교 ) 1학년 입학식 날이었다. 내 눈에 비친 모든 엄마들은 멋쟁이였고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뿐이었다. 넓고 넓은 운동장에 모여서 생애 첫 입학식을 치르던 그 시절 기쁘고 설렘보다는 자꾸만 어디론가 숨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깨끗한 교복에 하얀 손수건을 가슴을 달고 코흘리개 시절이었기에 단 한 사람도 손수건을

가슴에 부착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 교복에 달린 하얀 손수건은 유독 빛이 나질 않았다.

세 명의 언니들께 물려받은 교복과 가방 때문이었을까? 모든 부모님들이 상기된 얼굴로 첫 자식들 입학식에 참여해서 운동장 뒤에는 부모님 들이 자리를 메꾸고 있었지만 돌아봐도 기다려도 오질 않는 엄마의 존재는 알면서 왜 기다렸을까 싶다.

짝꿍 남자는 작은 얼굴에 왜소한 체구 아주 귀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머리 스타일에서 먼저 알 수 있었다. 1학년 눈에 비친 그 아이는 아주 귀공자 마냥 반짝반짝 빛이 났었고 의기양양 목소리가 아주 당당했었다, 교복도, 가방도 모든 것이 다 물림으로 받아서 입학식을 참여한 나는 계속 다른 아이와 함께 내 모습이 쭈뼛쭈뼛 쭈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무슨 말을 걸어온 것도 아닌데 목소리는 계속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는 막내로 태어난 게 너무 싫었다. 2살 때 먼저 돌아가신 아빠도 없어서 가족들에게 물어보면 영도다리에서 주워 왔다고 짓궂은 농담으로 영도다리가 너의 집이야 하고 얼마나 놀려댔는지 그 시절 순수한 꼬맹이는 철떡 같이 믿고 늘 울면서 영도다리가 어딘지 궁금해하며 집을 나갈 생각밖에 없었다. 아이 입학식에 아빠는 못 오던 시절이었지만 다른 사람은 있는데 왜 나만 하고 운동장에 버려진 아이 마냥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못 오는 이유를 알기에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엄마의 자리는 채워질 수 없었던 입학식이었다. 아주아주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목 빼며 기다린 입학식이었다.

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마비된 엄마의 다리는 산복도로의 그 가파픈 계단과 학교까지의 먼 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나 산복 도로 아래 중턱에서 학교까지는 큰길로 버스도 다니지 않았고 도보로 2-30분은 늘 걸어 다녔기에 엄마가 운동장 뒤, 교실 뒤에 왔으면 하고 바랄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아이였기에 도저히 단 한마디도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옆 짝꿍 엄마의 이쁘고 날씬하며 핸드백까지 들고 계신 신식 엄마가 우리 엄마와 함께 떠오른 그날의 간절함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짝꿍 남자아이 이름도 선하다.

그렇게 상냥하던 그 엄마는 당신 아들과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당부하시던 그 목소리가 얼마나 부럽고 질투가 났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길가를 우연히 스친다 하더라도 수십 년 흘러 수많은 스승과 친구를 만났지만 그 예쁜 아주머니와 짝꿍 최 00의 목소리와 표정은 금방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하려고 했던 이름도 아닌데 왜 기억의 저장소에 간직되어 있을까?

그날 내가 마주한 것이 단순한 엄마의 부재가 아니라 세상과의 첫 대면이었기에 유독 지워지지 않고 그 어린 날의 가슴 아픈 질투는 지금도 시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작가의 단상 >

아이의 생애 첫 입학식의 기억에는 엄마라는 우주가 꼭 필요하다.

1학년 입학식 엄마의 부재는 그날의 뼛속까지 사무친 그리움과 질투는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부모의 자리는 아이의 영혼에 반드시 아름다운 무늬로 인식되며 그 빈자리는 어떤 보상으로도 온전히 채워지기가 어렵다. 인생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게 하는 큰 기둥이고 뿌리이다.


<자작 시 >

엄마와의 재회 /아다나

코쟁이 한 겹 두 겹 겹겹이 새벽 북풍 바람 막으며

남창 장날 비둘기호 한편에 몸 실은 울 어머니

쌀자루 보리 콩 이고진 등이 굽었지요

서방 님 몰래 쌈짓돈 구깃구깃 돌려 사놓은

한 마지기가 두 마지기가 되고 육백마지기 에는

희망이 실어졌었다

빨간색 인주 가 마르기도 전에

딸내미 살림 밑천 남의 손에 들어가 버리니

우야가 이 신세 팔자타령 늘어놓는

곡 소리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돌건만

넓디넓은 육백 마지기에 눈 꽃비가 내리고

꿈속에 울 어머니 환한 웃음 지으시니

그땐 원망스러웠던 엄마의 빈자리가

사실은 나를 위해 굽은 등으로 삶을 버텨낸

훈장이었음을 깨달았다.

살아생전 손잡고 떠나보지 못한 어머니와의 여행

오늘 밤 꿈길 따라 못다 한 효도 소원 풀이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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