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회비와 세상의 편애

투명한 수채화 같은 마음에 생채기



1-4 육성회비와 세상의 편애



매일 먹던 쌀밥에서 갑자기 수제비 반죽을 같이 하던 언니와 김장김치로 밥국을 만들어 식사를 늘리던 시절이었다. 처음 먹어보던 수제비가 너무 맛있어서 지루 하지 않고 먹었다. 밀가루의 첫 만남 이후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없었다.

그나마 유일했던 간식 왕깔사탕과 크림 곰보빵도 끊어졌다. 9살의 눈에 비친 집안의 사정은 조금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빨리 철이든 것은 아니었지만 유독 눈치가 빠른 나는 보채고 떼쓰고 할 수 있는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풍으로 쓰러진 엄마의 병환으로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졌다. 빠른 결혼을 한 큰언니는 아이 셋을 놓아서 바쁜 육아를 했었고 큰 언니와 큰오빠는 줄줄이 매달린 가족들의 생활을 책임지던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다. 동네에서 그나마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새로 지어서 이사 왔었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을 몰랐다.


어느 날 키 크고 코도 유독 오뚝 선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 박 00 아직 육성회비 안 냈지? 내일까지 가져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를 때 정말 교탁 밑으로 숨고 싶었다. 대답만 하고 봉투를 가방 속에 챙겨 들고 하굣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말을 하지 않으면 또 선생님은 나를 부를 것이다. 학교 가기가 싫어졌다. 멋지게 생기신 담임 얼굴을 마주치기가 싫어졌다. 친구들한테 나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 또한 싫었다.


며칠 뒤 또 한 번 종례시간에 내 이름이 불렸다. 친구들의 쳐다보던 시선과 어디다 눈을 둘지 몰라서 한참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갑자기 아주 큰 소리로 낼은 무조건 엄마를 모시고 와야 된다.라고 선생님의 목 청 큰 목소리에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부른 것도 아니고 아주 큰 소리로 예쁘지도 않은 이름을 부른 이유다.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도 겨우 걸음을 떼는 상황이었다. 선생님께 엄마를 모셔 올 수 없는 이유를 말씀을 드렸지만 너무 완강했었다.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는지 정적이 한참 맴도는 흐름을 피부로 느꼈다. 많은 학생 수로 인해 2학년들만 가교사 건물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고 기존 학교에서 또 20분 더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도저히 불편하신 엄마를 모시고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다. 택시나 버스를 탄다는 것 또한 더 상상을 못 할 시절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 발자국을 걷는 데 몇 분씩이나 걸리는 엄마와 산책하며 그 위기를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막내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학교 도착한 시간은 선생님도 퇴근하실 무렵이었다. 더디고 더딘 발걸음으로 학교 도착하신 엄마께 화가 나 있는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


다짜고짜 엄마에게 화를 내시며 뭐라고 하셨다. 회비를 왜 못 내느냐고 다그치시던 그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유독 잘 살던 아이들한테 대하는 태도는 두 얼굴을 하고 있던 선생님이었다. 9살 눈에 비친 선생님의 표정과 태도에서 어린 마음에 독기를 품었다.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상처가 영원할 줄을 몰랐다. 생채기 난 마음은 많은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비교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작은 마음 한편에 아주 의미심장한 각오가 그날 이후 똬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선생님이 되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상처는 주지 알아야겠다. 나름 철이든 기특한 생각을 했다. 말도 어눌하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던 엄마는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연신 빌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그 순간 선생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처음으로 어른에 대한 실망을 했었다. 꿈이 없던 아이에게 꿈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올 때 하염없이 슬프고 슬펐다. 엄마는 말도 잘 못하셨는데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굳은 표정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투명한 수채화 같은 마음에 모진 비수를 꽂은 선생님의 모습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선생님의 성씨도 이를 갈 정도였다. 해가 져서 겨우 집에 도착한 엄마는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바로 자리에 누워 버렸다. 유독 눈과 코가 크신 선생님의 강렬했던 표정을 언니들께 일러바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의 맺힌 가슴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날 이후 식사를 더 못하셨다. 마음의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인 선생님은 어린 눈에 비친 모습은 예의도 도리도 없었다. 권위와 세상의 편애를 다 안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장 >

천진난만 어린이가 무슨 죄가 있을까? 가난이 죄는 아닌데 가난을 죄로 받아들인 마음은 한없이 가난해져 버렸다.

여유와 포용력으로 감싸는 진심의 마음은 어린 눈에도 그 진심은 반드시 전해진다.



<자작 시 >

육성회비/ 아다나

처음으로 세상의 편견을 배우다

원망 가득 한 돈은

원대한 꿈을 심어주었고

살아낼 희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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