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례식날 소풍 간 철부지

평생 옥쇄를 진 빚

하얀 수의가 주는 이상하고 야릇한 감정을 주는 그 느낌은 누구에게 묻지도 못하고 혼자서 느끼고 혼자서 체득해야 했다. 수의라는 단어를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돌아온 시간이다. 방에만 누워서 말없이 자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입고 있었던 그 하얀 옷은 두 동공에 박혀 있었지만 단어의 뜻을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고 네이버 백과사전도 없었다.

국어사전을 통해 배운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와 방을 가득 메웠다. 집안을 채운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곡소리가 아닌 비명에 가까운 절규였다.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언니들 오빠들 틈에서 나 역시 울음을 터트리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리 흔들 어도 대꾸 없는 엄마 9살 소녀는 그제야 감지를 했다. 멈춘 심장, 말 없는 표정, 아무 의식 없는 그 상황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2학년 봄이었다. 받아쓰기를 하며 단어를 배우는 그 시절 겨우 쉬운 한 문장 두 문장을 쓰고 익히던 시절인데 수의와 죽음은 감당하기 힘든 단어였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신 엄마의 얼굴에서 느꼈다.

죽음, 장례식, 생소한 낯선 단어는 마음속에 닿기도 전에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와 박혔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그렇게 나를 안타깝고 측은지심으로 보던 그 눈빛이 말을 했다. '' 불쌍해서 어쩌누 " " 저 어린것이 앞으로 힘든 세상을 어찌 헤치고 살겠노" " 철없는 아이를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 참으로 아픈 현실이다" 한마디 내뱉은 그 말은 위로도 아니고 격려도 아니었다. 어린 심장에 박히는 날카로운 가시였다. 슬프다 못해 심장에 구멍이 나 버린 마음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초등학교 봄 소풍과 겹친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다. 가족들은 내가 충격받을 것을 우려해 나를 학교 소풍에 보냈다. 왜 소풍을 보냈는지? 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무가내로 소풍을 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철부지가 소풍을 보내달라고 떼를 썼던 건 아닐까? 그 기억마저 흐릿하다. 2학년 전교생이 뒷산으로 향하는 줄은 봄빛처럼 유난히 길었다. 뒷산 절 뒤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옆 친구의 도시락에서 노란 바나나를 보았다. 엄마와 함께 따라온 친구의 도시락에서 더 궁핍한 나의 도시락이 비교되었다. 이어진 보물 찾기도 하면서 모두가 신나고 들떠 있었다. 그 들의 웃음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온 산을 울렸다.

나는 보물을 찾으러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올랐다. 발밑의 흙을 밟고 밞으면서 자꾸만 떠오르는 엄마의 잠든 얼굴 나는 그 순간 흙 속에서 진짜보물을 발견했다. 그건 보물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즐거운 봄 소풍이었지만 나에게는 숨 막히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보물 찾기를 하고 손수건을 돌리며 노래를 부르던 그 봄날 나는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을 노래하고 있었다.

괴로운 시간을 안겨준 가족들은 그것이 배려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섰을 때, 한구석에 수의를 입고 누워있던 엄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퉁퉁 부어 붉어진 눈의 언니들과 오빠들은 말없이 넋을 잃고 있었다.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의 시신은 태종대 바다에 뿌려졌다고 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유언이었을까? 산소라도 있었다면, 구멍 난 심장을 좀 메우러 찾아갈 곳이라도 있었을 텐데 너무나 야속한 현실이었다.

기울어진 가세 탓에 엄마의 산소조차 마련하지 못했던 그 격동의 시간들 그건 평생 안고 가야 할 빚이 되었다. 마음속에 두 번이나 진 빚, 그 무게를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었을까 유난히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나는 태종대를 찾아 헤맸다. 파도가 부서지는 그곳 어딘가에 엄마가 있을 것만 같아서 바람 속에 파도 소리 속에 엄마의 목소리라도 들릴 것 만 같았다.


철부지였던 나를 영원히 가두어버린 감옥의 시간 세월이 흘러도 나는 그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의 구멍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다. 그 아픔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가 되었다.

혼자만의 비밀이 시작된 시간 나를 옥죄고 숨 막히게 짓누르던 그 시간들 엄마의 장례식 날 소풍을 갔다는 이유로 내 삶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꼬리표 가 붙었다. 철부지 소녀라는 낙인 원망하고 미워했던 가족들의 배려, 그건 결코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건 나에게 씌워진 보이지 않는 족쇄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엄마의 그리움과 함께


<작가의 문장>

죽음이 무엇인지 몰라 산으로 보물찾기 하러 떠났던 아이의 후회는 평생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평생 안고 살아야 했지만 상처 난 구멍을 채우려 애쓴 그 아픈 시간들이 저를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 이제는 잘 알아요. 당신이 남기고 간 빈자리가 저를 어른으로 키웠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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