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의 미망인과 세 남자 조카

매주 찾아가던 여정



재잘거리는 새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로 희망찬 아침이 시작되었다. 사랑이 넘치는 세 어린 조카들의 힘찬 휴일 아침 은 언제나 구멍 난 내 심장의 시름을 잊게 해 주던 희망의 시작이었다. 휴일이면 한동안 집을 떠나 낯선 버스를 타고 여행 가듯 외출이 이어졌다. 언제나 덜컹거리는 산복도로의 만원 버스는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낯선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한 정거장이라도 놓치면 안 되기에 언제나 긴장을 끈을 놓치지 않았고 유일한 집을 떠나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먼 산 아래 시가지가 다 보이고 부산 앞바다 항구의 넓고 넓은 시야가 다 들어왔기에 언제나 탈출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크고 큰 아주 넓은 나무가 태양을 모두 다 가려주고 뜨거운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에 평상 밑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 아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 역시 그 어린아이들이 왜 같은 건물에 사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 000” 한자어가 섞인 단어는 호기심 천국이었던 나에게 낯설고도 신선했다. 모자원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가족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형과 누나, 동생이 되어 가족 이상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결핍을 서로의 온기로 채워가는 모습이 마음 깊이 남았다. 무언가 도울 수 있다면 나 역시 기꺼이 나서고 싶었다.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었다. 부모가 일 하러 나간 사이 스스로 밥을 챙기고 동생을 돌보는 모습은 또래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성숙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린 조카들이 더 안쓰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모자원을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곳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게 되었고 모자원의 구석구석을 훤히 알 만큼 가까워졌다.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나는 그곳에서 일찍 배웠다.

눈치가 더 빨라지고 살아가는 법을 빨리 또 체감했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휴일이었지만 나에게 그 휴일은 낭만이었다. 조카들에겐 누나 같은 이모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언니는 종일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서도 집안일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의 무게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초인적인 힘을 내는 언니는 강한 여자 강한 엄마였다. 언제나 무장하고 사는 언니처럼 보였고 옆에서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어려운 언니였다. 시간은 순삭 흘렀다. 완전 슈퍼우먼으로 비쳤던 큰 언니는 언제나 호랑이 같고 무서운 존재였다. 표정도 목소리도 가까이하기엔 정말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이가 17살 차이가 나다 보니 엄마 같은 신 같은 존재였다.


<자작시 >

지금 인고의 세월을 지나온 나는

그 언덕 위에 앉아 그녀의 인생을 조용히 바라본다.

이제야 그 여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푸르다 못해 짙은 잿빛으로 덮인 삶

청춘의 꽃봉오리조차 피워 보지 못한 채 맺은 인연이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숨 쉬어온 시간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견뎌야 했을까

무슨 질투를 당했는지 세월은 야속하게

그녀의 남편을 빼앗아 갔다.

지구반바퀴를 돌아 만난 부부의 인연은

성혼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스물일곱의 꽃처럼 아름다운 나이

설렘도 기대도 미래도 모두 한창이었을 시간이었다.

그 나이에 언니는 미망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큰언니의 가슴 시린 보따리는

어디에다 그 한을 풀어냈을까 싶다.

네 살, 세 살, 열여섯 달, 세 아들만 남긴 채

형부는 떠나버렸다.


겹쳐오는 불행 앞에서 나는 어린 마음으로

하늘을 원망했었다.

온 우주의 신들은 왜 우리 가문을

외면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생과 사의 한가운데 남겨진 세 명의 조카와

가장의 무게에 짓눌린 강하고 무서웠던 언니였다.

아마 그녀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냉혹한 현실이 그녀를 강한 어머니로 탈바꿈

시켜놓았을 것이다.

그 아픔을 누가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까

새살이 돋아나듯 상처를 견디며 살아낸 시간

그 질곡의 세월을 그녀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존귀하고 위대한 이름

며느리라는 이름까지 짊어진 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었을

수많은 밤들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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