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받던 아이가 도움을 주는 우산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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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격 중 유년기에 만난 작은 친절은 평생을 지탱하는 인격을 만들어 주는 뼈대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2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악연에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4학년 새 학기는 정말 행운이 찾아왔다.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3월 초 날씨는 완전히 봄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에도 화창한 봄볕이 돌기 시작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오리, 거위, 닭, 새, 토끼 등이 등교하는 우리를 반갑게 해 줬다.
4학년 교실은 별관이다 보니 외부 운동장 청소는 각반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었다. 배설물 냄새가 잔뜩 했지만 병아리 토끼 거위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에 조금이나마 자연을 품게 되는 4학년의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동물원을 꾸면 놓은 곳은 어린 학생들의 자연 공부의 학습장이었다.
그 당시 한 번도 동물원이나 식물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만나는 동물식물을 접하면서 성장했다.
교육대를 졸업하시고 첫 담임선생님을 맡으신 선생님은 얼굴에 살짝 흉터 흔적이 있긴 했지만 마음과 목소리가 너무 착하고 아름다우신 분이었다. 4학년부터는 반의 임원제도가 생겨 남자 3명 여자 3명이 임원이 되어 학급 일을 도맡아서 했다.신학기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청소를 마치고 마지막 종례시간에 조용히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선생님은 임원이던 000과 함께 종례 후 자습을 내라고 했다. 그땐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 자습 문제를 칠판에 적었다.
자상한 선생님은 문제집을 보고 국어와 사회문제를 칠판에 내라고 했다.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고 정말 내가 무슨 큰 사람이라도 된 듯싶었다. 임원도 아니었는데 선생님은 나의 존재 가치를 부여해 준 듯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함께 자습을 내던 아이 000은 참 예쁘고 다부진 애였다. 자습을 내면서 조금 친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엔 부러움이 많았다. 가끔 엄마도 학교에 찾아와 주셨고 한눈으로 딱 봐도 아주 잘 사는 집 아이였다. 언제나 신나는 일이 없었던 나는 학교 등굣길이 너무 즐겁고 감사했다.
자습을 같이 내던 친구 영이는 4학년 1년을 같이 보내고 그 이후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 동창회 모임 때 잠시 만났지만 그때 그 자습 내던 기억을 서로 이야기하며 꽃을 피웠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만나도 결이 통했고 서로서로 대화가 잘 이루어졌다. 60의 나이에도 고운 인연으로 가끔 안부를 전한다. 영이는 정말 공부도 열심히 하더니 사범대를 가서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고 지금도 교장으로 열심히 교육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훌륭한 교육자다.
즐거운 학교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며칠 뒤 조용히 나를 부른 선생님은 영어로 된 몇 글자를 써 주시면서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꼭 가서 구호금을 받으라고 했다.
처음에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은 아주 친절하게 전교생 중 착실하고 모범적인 아이를 추천했는데 다행히 우리 반에 네가 된 거다. 그러니 매달 잘 챙기라고 했다.
YWCA라는 간판이 적힌 건물을 찾기 위해 혼자서 아주 긴 시간을 헤매며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하굣길 걷고 또 걸으며 큰 건물을 찾는 동안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겨우 찾아서 간 건물에 친절하게 안내하는 분이 아담한 사무실에서 돈 봉투와 편지지를 건네주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와서 받아 가고 꼭 구호자님께 고맙다는 안부편지를 적게 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어린 내 가슴에도 따뜻한 마음이 자라도록 인생의 철학을 안겨주셨다.
매달 구호금을 받고 구호자님 한테 쓰는 편지는 나에게 인생의 은혜를 가르쳐 주었다.
"도움 주신 구호자님께" 삐뚤삐뚤 한 글자였지만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적었다. "언제나 얼굴도 모르는 저에게 타국에서 보내주신 귀한 돈으로 한 달 한 달 저희 가족은 유용하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나도 이다음에 성장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겠습니다."
대략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이런 내용으로 적으면서 마음속에는 간절한 씨앗을 하나 심었던 것 같다. "도움을 받는 자에서 반드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자" 고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가난의 훈장 같았지만 나는 전교생의 그 많고 많은 아이들 중 유일하게 한 사람이 선정이 되어 매달 구호금을 받고 편지를 쓰는 시간은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살아갈 희망과 큰 비밀을 안겨주셨던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받았던 큰 돈은 지금 기억으로도 14,000 ~ 15,000원으로 기억난다.
얼마나 떨리고 그 큰 돈을 간직하며 집으로 귀가하던 시간은 유독 너무 길었던 기억이 난다.
환율에 따라 조금씩 금액이 차이가 났던 기억도 있다. 그날 저녁은 우리 가족은 모두 만찬의 식사를 했다. 콩나물 500원어치도 어마하게 많았던 시절이었고 언니 오빠 월급도 몇 만 원밖에 안 하던 시절이었기에 내가 받는 매달의 구호금은 우리 가족의 매달 큰 식비를 차지했고 모두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그때 이름도 모르던 그 구호자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는 나에게 어느 날 입양의 요청도 있었다. 언니 오빠는 입양하는 부모에게 가서 잘 살기를 권했지만 도저히 나는 언니 오빠들이 나를 키워줬는데 외면하고 미국으로 간다는 것이 솔직히 엄두가 나질 않았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살면서 한 번씩 꺼내 보는 추억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호자를 만나서 어린 시절 도움을 받고 편지를 적으면서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자릴 잡고 있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올바르고 바르게 성장하라는 큰 응원과 선생님의 격려로 받아들였다.
우리 반에는 고아원에서 자라는 얼굴이 유난히 까맣고 달리기를 잘하는 00이 있었다.
나는 매번 구호금을 받을 때마다 그 아이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정작 가족이 있는데 가족 없는 고아원에서 자라는 00 이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했다.
담임선생님은 충분히 그 마음도 알지만 고아원은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안심되게 말씀도 해주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아주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신 분이었다.
여름 방학 겨울방학이면 임원들 6명과 꼭 나를 불러서 집으로 초대도 해주었다. 다른 임원들은 언제나 내가 동행을 할 때마다 이상한 눈빛도 보내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을 주었다.
선생님집 옥상에 올라가서도 처음으로 접한 골프 시설을 보고 많이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선생님 아버지가 취미 생활을 하신다고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많이 부럽고 선생님은 방학 때 우리를 초대해서 함께 놀아주셨던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는 마음으로 자릴 잡았다.
<자작 시>
큰 우산이 된 쪽지/ 아다나
열 한 살 교실 뒷마당 동물원에
나의 친구 거위 토끼와 함께 대화를 하며
작은 씨앗 하나가 심전에 심어졌다
영어로 적힌 낯선 이름, YWCA
매달 하굣길 웅장한 건물은 너무 크고 높았고
주머니 속 그 쪽지 하나가
세상이 나를 지켜주는 듯했다.
부끄러운 마음과 감사한 편지는 한 달을
또 살게 해 주었고
가난을 지워버린 찬란한 만찬의 저녁이었다.
구호금을 받던 아이가
이제는 구호금을 주는
커다란 우산을 펴주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