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터널에서 파도 같은 인연

에델바이스 액자와 노란 손수건

AI사진


부모가 없는 집안의 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더 철저히 예의가 발랐고, 인사성은 끝내주게 좋았다. 살아남기 위한 스스로의 방어기질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자랐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부재 가난의 연속, 늘 수제비를 툭툭 끊어 넣어 두껍게 빚어 혼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자신 있게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내 감정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느끼지도 못했다.


갖고 싶은 것을 표현도 못 했다. 힘듦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었다. 넉넉함 보다 결핍으로 생긴 자신의 비하는 언제나 마음속에 깔고 있었다.

남자 조카들 3명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모 역할을 하던 나는 언제나 내가 없었던 아이였다.


눈치를 먼저 보고 배려라는 것이 먼저 자릴 잡았고 강한 언니와 강한 오빠들 틈에 가족들이 요구하는 모범 학생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반듯함 모범 소녀였기 때문에 더 강하게 나를 옥죄고 살았던 시간이었다.


우연히 스멀 쩍 스며든 나의 감정에 파도처럼 등장한 아이가 생겼다. 여느 여자 친구들처럼 치마도 입고 싶었고 옷장을 열고 또 열어봐도 예쁜 치마는 구경을 하려고 해도 없었다.


예쁘지도 않았던 소녀에게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고 있을 줄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갑자기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동네 자주 보였다. 낯선 사람들이 앞집으로 이사를 왔다. 계단 건너편 보이지 않던 예쁜 소녀와 남자애가 같은 등굣길을 계속 함께 걷고 있었다.


하굣길에도 자주 만나다 보니 어느새 친하게 되었고 2살 어린 이쁜 순이는 아주 나를 많이 따랐다.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자주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유독 챙겨줬다. 그 호기심 어린 베풂 뒤에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가 있다고는 털끝만큼도 몰랐다.


자연스레 언니 동생 하며 지내던 우리 사이는 어느새 가족들보다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

서서히 핑크빛 크레파스 같은 색채가 계속 몰려왔지만 그땐 너무 순순해서 무조건 다 받았다. 그 동생의 오빠의 계략이 6학년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알게 되었다.


에델바이스 꽃이 예쁘게 박제된 액자와 노란 손수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6학년으로 산 물건치고는 거금이었다.


수학여행 선물을 건넨 예쁜 동생은 오빠의 심부름을 전했다. "언니 이것 오빠가 언니 갖다 주란다"


'뭐 때문에 이 비싼 것을 주노' '이렇게 좋은 선물은 처음이야 ' 하지만 '싫다 이런 것 받으면 부담되고 내가 받을 이유가 없다 아니가'


"언니 솔직히 그동안 우리 오빠가 언니를 무지 좋아했다 " " 눈치 전혀 못 챘나"

'무슨 소리고 '

"그동안 언니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오빠야가 언니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늘 오빠 방에 들어가고 했다 아니가"

'그래서 '

" 그게 언니를 좋아했던 신호였다"

'세상에 나는 진짜 몰랐다 아이가'

'어쩐지 친절하게 잘해 주더라'

동생한테 시킨 그 선물을 안 받을 수 없어서 집으로 갖고 왔다. 언니들이 깜짝 놀라며 종일 놀려댔다. 우리 모야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겼구나 하고 오히려 언니들이 더 좋아했다.


나를 비하하며 살던 시절 누군가는 나를 꽃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흥분된 목소리 자주 웃던 미소 예전의 나의 모습은 어디론가 숨었는지 사라져 버렸다.

자신감이 생기고 당돌하고 자존심 강한 아이로 돌변해 가기 시작했다. 잦은 선물의 탓인지 조금의 친절함으로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앞둔 겨울 방학 문제집 살 돈도 없었다. 언제나 여자 동생 편으로 문제집을 빌려주면서 만날 건수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게 싹튼 감정이 자라났지만 이성보다는 친절한 남자 친구로 언제나 내 맘 구석에는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쌀집을 하던 여친구가 그 남자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나의 감정이 이상 야릇 해졌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질투는 왜 났던지? 그렇게 삼각의 구도로 자릴 잡힌 우리의 우정이 살짝 금이 가길 시작하면서 중학교를 올라갔다.

끊임없는 관심과 선물 세례에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도도한 소녀는 한 어린 남자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강물처럼 깊은 세월에 한 남자아이의 마음에는 물처럼 흐르지 못한 상처가 남았었다. 50대 동창회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나를 찾고 기다렸다는 말에 동창생들도 모두 놀랬고 아연질색한 나는 그날 밤 얼마나 많은 미안함과 죄송함으로 참회를 했는지 모른다.



유독 결혼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힘든 이유가 그 아이한테 상처를 남긴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참회의 기원을 보낸 적도 있었다. 가슴 한편 큰 빚으로 남아서 갚지 못한 그 마음을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속죄하고 살았던 인연이 될 줄 그 당시 그렇게 큰 인연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름 어린 시절에도 나만의 이성의 친구 동경의 친구는 한 명쯤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 그리고 착한 친구 모범적인 친구 그 반듯한 정사각형 친구의 틀은 왜 만들었을까 싶었다. 그만큼 대수롭지 않았던 순수한 시절이었고 순수했던 마음이었다.


6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도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어디에선가 잘살고 있을 친구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 그리고 남편으로 잘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심 빚을 갚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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