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리 꼬마 원정대

처마 밑의 벌거숭이 원정대

AI 가 그린 그림



저 건너편 우뚝 솟은 탑은 유난히 높아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코앞에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용두산 공원 탑은 나에게 매일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모퉁이만 돌면 바로 일 것 같다는 아주 큰 오산 그 가혹한 거리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반드시 꼭 한번 가보리라 고 다짐을 매일매일 했다.


둘째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난 뒤 분가를 했다. 마침 혼자가 된 큰 언니와 남자 조카 3명이 함께 부쩍부쩍이며 살게 되었다. 용감무쌍한 남자 셋은 언제나 나에게 든든한 보디가드였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학교를 다녀온 뒤에도 언제나 골목대장 조카들과 함께 했기에 조카들과 떨어진 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조카 3명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소꿉놀이는 거리가 멀어지고 웬만한 머슴애들보다 더 씩씩한 소녀가 되었다. 자치기, 다 망구, 땅따먹기, 구슬치기 언제나 조카들 덕분에 신난 나는 동네에서 아주 힘 있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든든한 남자 조카 3명이 이모를 보디가드 해주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여자애는 나 혼자였다. 틈만 나면 뭉쳐서 가보자고 약속을 했던 장소가 있었다. 무대책 무일푼으로 그러나 기개만큼은 콜럼버스였던 꼬마 원정대의 시작은 순수하고 절실하고 호기심 발동으로 시작되었다.

엄마 찾아 삼만 리 동화책을 본 뒤여서 더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엄마를 찾기 위해 만 리 길을 떠나는 마르코의 용기처럼 내 어린 마음도 세차게 흔들었다. 저 높은 탑에 오르면 엄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무모한 확신이 조카 셋과 동네 아이들 함께 꼬마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야 우리 저기까지 한번 걸아가 볼래." “도대체 밤바다 빛나는 저 불빛이 반짝이는 곳은 어떤 곳일까"? 반드시 우리가 한번 가보자. 갑자기 구슬치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한마디 던진 게 도화선이 되었다. "그래 오늘 꼭 가보자" "우리가 확인 한번 해보고 오자" 아무 대책 없던 아이들은 걷고 걸으며 부산 앞바다를 구경하며 마냥 신이 났었다. 버스로 도대체 몇 정거장을 가도 가도 쉽게 나오질 않는 거리였었다.


에디슨도 아니고 콜럼버스도 아니고 지구 끝까지 걸을 듯 걷고 걸어서 간 꼬마 원정대들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걸었다. 누구 하나 잠시 멈춤도 없었다. 얼마나 신나고 신난 여로였던지 발가락이 아픈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끊임없이 걸으며 나오는 새로운 동네는 우리들에게는 신세기였었다. 처음 본 아파트도 보였고 가게도 상점도 병원도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거리의 낯선 풍경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린 먼 미래를 걷고 또 걸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리만큼 걸어왔기에 이미 때는 늦었다. 모두가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 말은 안 했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거리였고 아무 대책은 없었기에 그냥 앞만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걷고 또 걷고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를 걸어서 도달한 곳이 용두산 공원 앞 시계탑은 정말 신천지였다.


꽃으로 둘러싸인 시계에 높은 탑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누구 하나 돈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목적을 이룬 곳이었기에 신세계를 맞이한 기쁨도 잠시 날이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동네 머슴애들과 막상 집으로 돌아갈 것이 이제 걱정이 되었다. 다시 그 거리를 걸어서 돌아가는 길은 배도 고프고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는 갈 때보다 더 먼 길로 느껴졌다. 해가 지고 비도 오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모두가 호기심 하나로 걷고 걸은 길이였기에 우리는 단지 해냈다는 마음 하나가 그렇게 즐거웠다. 그리운 엄마도 없었다.


엄마 얼굴보다 호랑이 큰 언니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온 동네를 이 잡듯 다 쑤셔 돌아다녀도 어느 누구 하나 본 이가 없었고 큰 언니는 우리가 올 때까지 오로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집 나간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꼴딱 물에 빠진 생쥐 마냥 옷을 다 젖은 채 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호랑이 같은 큰 언니가 고래고래 혼을 냈다." 도대체 정신을 못 차리고 어딜 갔다 온 거고" 어린 조카들을 챙기지도 않고 함께 갔다 왔다고 다 같이 벌거벗긴 채 비가 내리는 처마 밑에서 벌을 한 시간 세웠다.


비오는 날 벌거벗은 알몸

평생 조카들 한테 수치심을 남기고 모멸감을 안겨준 큰 언니는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서러움과 수치심 앞에서도

부엌에서 감자 넣은 수제비 냄새가 어찌나 코를 간질간질했는지 정말 고문이었다.


늦게 나타난 셋째 언니가 벌거벗은 동생의 모습을 보고 너무 화들짝 놀라서 빨리 옷을 입게 해 주었다. 동네 창피라고 하면서 겨우 모면을 했다. 퉁퉁 불은 수제비가 그렇게 맛있는 적도 없었다. 그리운 엄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반짝이던 네온사인에 엄마 얼굴을 묻어버렸다.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큰 언니는 그날 이후 가장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이었다.


< 자작시 >

그리움 /아다나



눈물과 섞인 빗물

하염없이 타고 흘러내린

처마 밑 벌거숭이 원정대


엄마 찾아 삼만리

마음속 엄마를 불렀던 그 길 속으로

엄마를 묻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적시던 빗물도

엄마를 그리워한 슬픔 이었다


억척스럽게 살아낸

그 호령 친 목소리는

비로소 사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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