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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시진 Apr 18. 2024

마음에도 항상성이 있다

조금 더 강한 내가 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일


어제는 지역상담센터에 다녀올 일이 있어 방문했다.

정신질환 치료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 주는 지역사업을 알게 되어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준비를 마친 나는, 필요한 서류 몇 가지와 가벼운 마음을 들고 길을 나섰다.


사실 가기 전에 '가지 말까'하는 무기력이 발목을 잠시 잡아끌었지만, 그래도 나가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왕 나오니 날씨가 좋아 기분도 꽤 괜찮았다.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뭔가 해내었다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리고 가는 길에도, 예약 전날인 그저께도.

센터에서는 서류는 다 준비했는지, 방문을 잊으신 건 아닌지.

잘 오고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신청해 두고 오지 않는 사람도 꽤 있나 보다 싶었다.

우울증은 그런 병이다.





서류는 잘 준비해 주셨고요.

간단하게 상담도 진행해 볼게요.


나는 정말 신청서류만 작성하러 간 길이라 상담사와 상담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의외의 상담이었지만, 심리상태가 늘 건강하기만 한건 아니기 때문에 내심 이 상황이 반가웠다.


무슨 상담일까.

이런 상담은 꽤 오랜만인데, 하는 설렘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진행하는 면담과 심리 상담사와 상담하는 시간은 느낌이 약간 다르다. 

내가 전문적으로 이 분야를 파고들지 않았기에 어떤 점이 확실히 다르다고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병원은 어떤 약물을 쓰기 위해 상담을 하고 필요한 약을 처방해 주는 느낌이라면.

상담센터는 조금 더 내면의 세계를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우울한 감정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간다는 기분이 주로 들었다.


물론 두 곳 모두, 결국에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기관이라는 건 똑같다.

뭔가를 이뤄내고 해내는 건 내 몫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증을 앓으신다고 생각하기 힘드네요. 굉장히 밝아 보여요.



나를 담당하게 된 상담사 님께서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뒤 저렇게 말씀해 주셨다.


뭐... 근데 나도 알고 있다.

습관적인 웃음과 활발하게 보이는 사회적인 내 모습을.

하지만 혼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또 다른 내가 있기에, 저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해주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의문을 던졌고, 상담사 분께서는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다.


저희는 전문가잖아요.
아무에게나 좋아 보인다고 말하지 않아요.
내담자 님께서 정말 강해 보여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거고, 스스로 많이 노력하셨다는 걸 제가 느꼈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마음에도 항상성이 있거든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이요.
내담자 님은 그 항상성이 좋으신 분 같아요.


아.

듣던 중 정말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의심이 많은 편이다.

자기 확신이 적고 그래서 우울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 나에게 확신을 주는 말을 해주시다니! 

근래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분이 좋은 말이었다.


나, 잘 헤쳐가고 있구나.






약물이나 상담은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 부분이 있다. 


우선 말하고 싶은 건, 항우울제나 안정제를 처음 먹으면 효과가 정말 좋아서 이대로 빨리 나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만큼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약효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결국 문제의 원인인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과 무기력함에 대해 조금씩 공부했다.

어째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나는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예민한 감정과 기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등.


사람마다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을 앓는 이유는 다양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자신을 알아가야겠지만, 나는 저런 식으로 '나'에 대해 공부했다.


즉, 내가 나아지고 있었던 과정 중에 하나이자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이 부분은 상담사 님께서도 먼저 '받아들이기 힘드셨겠지만 그걸 해내셨기에 치료가 가능한 거다.'라는 식으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예민하고 우울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마치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느껴져서, 내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여가자,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 순간이 왔다.


아아.

이것도 내 모습이고, 저것도 내 모습이구나.

그냥 이게 나인 것이고, 이걸 다스리는 게 인생의 숙제구나.

라고.


조금 전에도 서술했듯, 이렇게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상담사께서도 똑같이 말씀해 주셨다.

결국 병원이나 상담센터는 서포터의 역할을 할 뿐, 내담자의 의지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뇌, 너의 정체는 뭐니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울증은 왜 생기는 건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로 뇌의 기능이 저하되어서 생기는 질병이고, 어떤 습관이 뇌를 망가뜨리는지, 또는 되살리는지도 서서히 공부하게 되었다.


나도 아직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라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기에 자세한 걸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를 객관화해서 돌아보고 곱씹어 보았을 때.

나는 상당히 불건강한 삶을 살았다.


가령 의지가 생기지 않으면 그냥 방치한다든지.

세상을 등지고 싶으면 그대로 시간을 정해두지도 않고 잠을 잔다든지.

식사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건강을 챙긴다는 행위 같은 건 하나도 하지 않거나 말이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몸의 기능이 퇴화되고 하나씩 고장 나고 자연스레 뇌의 기능도 떨어지고,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살았던 것이다.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인지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꽤 걸렸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고 있는 줄도 모를 만큼 무기력함에 오래 시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씩 괜찮아질 만한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인지하게 되었다.


혹여나 나처럼 힘든 사람이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먼저 가지고, 마음을 추스른 뒤.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정말 도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를 다시 깨워주는 건 어떨까!


처음에 나는 떨어진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뇌를 다시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모든 걸 외면 한 채 잠을 자고 싶었지만, 5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5분이 10분으로, 10분이 30분으로 점차 늘어갈 수 있게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노력한다는 말보다 연습한다는 말이 더 좋다.

부담감이 덜어지는 기분이라서, 가볍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방법으로 내 친구 우울증을 오늘도 조금씩 달래고 있다.

모두 평안한 시간을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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