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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시진 Apr 11. 2024

묵묵하게, 그리고 진득하게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날 돌보느라 주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마음을 잘 읽지 못할 때가 있다.

그들이 날 얼마나 걱정하고 생각해주고 있는지, 그 마음의 깊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꽤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왜 네 이야기를 안 해줘? 


라는 뉘앙스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난 네게 비밀을 털어놓는데 너는 왜 그러질 않니, 에 가까운 말이었다.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도 난 내가 그런 성향인 줄 잘 몰랐었다.

딱히 말할 비밀도 없고, 있다고 해도 이걸 털어놓아도 되는 건지 헷갈렸다.

상대방에게 힘든 말을 늘어놓는 게 짐이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처음 스스로 우울증이 아닐까 걱정되었을 때.

나는 겁이 났다.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버릇이 되어, 어떻게 물꼬를 트고 이어가야 하는 건지조차 잊어버린 것이었다.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도 될까?

내가 힘들다고 말을 해도 될까?

괜히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는 싫은데.

이상한 시선을 받으면 어떡하지?

내가 이걸 말하면 상대방 기분도 안 좋아지겠지?


라는 착각을 했었다.

내 친구들을 믿지 못한 건 아니었다. 

모두 내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진심으로 경청해 주고 함께 답을 찾아줄 친구들이었다.


그냥 내가 문제였다.

혼자 일을 해결하려는 습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려는 고집.

환경 탓인지, 내 원래 기질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뭐든 혼자 겪어내고 지나가는 게 마음 편했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남아 오히려 남에게 아무것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정신과에 관한 이미지는 꽤 폐쇄적이었다.

정신건강의학이라는 말보다는 ‘정신병원’이라는 말에 갇혀 있었던 시절부터 자랐기에, 나에게도 그런 이미지가 강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말하지 못했다. 

내가 혹시 우울증이 아닐까 걱정된다고.




그때가 적어도 10년은 더 된 일인 것 같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제 나는 꽤 달라졌다.

스스로 내 고민을 나누고 날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의지하고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 행동의 시작은 우울증 치료에서 비롯됐다.

뭔가 바뀌어야 나의 우울증도 나아질 텐데, 그 첫 단추가 된 셈이었다.


나에게는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표현은 서툴지만 누구보다 날 아껴주는 가족이 있었다는 걸 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날 기다려주었다.

아주 고맙게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때로 하고는 한다. 

내 성향을 가장 먼저 이해한 나의 친한 친구는 조용히 날 기다려주었다.

내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재촉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았다.

묵묵하게, 그리고 진득하게.

그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날 향해 응원을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힘든 일을 털어놓고자 마음먹고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꽤 많이 바뀌고 있고, 그게 좋은 방향인 것 같다고. 내게 고민을 털어놓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내가 더 고마운데.


그 당시 나는 몰랐지만, 긴 시간을 지나오고 뒤를 돌아보니 그 친구는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건강한 소통의 방법을 몰라서 갈등이나 고민을 풀어가는 법을 몰랐던 내가, (그 친구를 통해서) 서른이 넘어서야 그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때가 가장 떨린 순간이었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말을 먼저 할지, 어떤 반응일지.

누구보다 날 아끼기에 내 슬픔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치료 중이라는 걸 알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있어 최대한 아무 일 아닌 듯 털어놓았고, 나의 가족들도 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내가 안 보는 곳에서 날 더욱 걱정하겠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가깝다는 이유로 아픈 말을 서슴없이 할 때가 있다.
그 말이 가시가 되고 비수가 되어 꽂힐 거란 사실을 모르고 서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서 후회한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묵묵하고 진득하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볼 걸.

내 가족들도, 그리고 나도.
시간이 지나니 그런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랑했기에 더 아픈 말을 했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 참아야 했다.




이제는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힘든 일이 생기면 곧 잘 털어놓는다. 

연습이 실전이 되고, 내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정, 애정, 의리, 편함 등 다양한 형태로 내게 사랑을 전하고 나를 치료한다.


언제나 365일 24시간 사랑만 줄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겐 우울한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까지만 보고 죽을까? 

이번 일까지만 잘 끝내고 죽는 건 어떨까? 


나는 이렇게 삶을 연명하고 있다. 

언젠가 끝을 정해두지 않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하루를 잘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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