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번 '왜'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제야 마음은 대답했다.
오늘은 내가 처음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을 때의 일을 적어 보고자 한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왜 이런 감정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가장 처음 생각했던 때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20대 중반으로 극심한 무기력과 수면 장애,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으로 우울증이 아닐까 고민했던 때였다.
운동을 하면 좀 낫다길래 걷기도 했으나, 사실상 그렇게 나가는 것조차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걷다가 울거나 집을 나가려다 다시 들어오거나 반복했었다.
내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다는 걸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정신의학과는 찾아가는 게 뭔가 두렵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지역정신건강센터에 문의하기!
심지어 당시에는 전화 거는 것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심리검사를 진행한 뒤 내 연락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전화가 왔을 때도 나는 이 전화를 받을지 말지 고민했다.
쓸모없는 무수히 많은 걱정들이 떠올라서 겁이 난 것이다.
갔는데 우울한 거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기록 같은 거 남으면 나중에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괜히 연락했나?
하지만 계속 울리는 벨소리에 결국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고, 그렇게 처음 상담센터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저것 검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꽤 많은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이었고, 그 검사지를 바탕으로 첫 상담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상담사님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무엇이 가장 날 힘들게 하는지 생각해 보는 단계를 거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추측한 이유를 하나씩 꺼내두었고, 상담사께서는 적극적으로 내 말에 공감해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양한 것이 기억나지만, 그날 꽤 놀랐던 사실은, 나는 원인을 대충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말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나는 마음이 더 쓰려왔다.
이 힘든 감정을 이유도 없이 느끼는 거라면 치료는 어떻게 하는 건지...
얼마나 앞이 캄캄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어쨌든 나의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20대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우울증의 원인은 가장 가까운 주변인의 영향 때문이었다.
요즘말로는 가스라이팅.
그 말이 나오기 전에는, 뭐랄까. 자존감 도둑이라는 말에 꽤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에 '할 수 있냐.'는 말로 걱정을 표하면서 나의 마음을 고장 냈다.
내가 한 행동 하나에 나를 의심하게 되고, 자기 확신은 사라졌고,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스스로 검열을 하느라 온갖 힘을 다 쓰곤 했다.
그냥 한 번이면 뭐. 나도 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가까운 사이였기에 정말 나를 걱정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걱정을 빙자한 가스라이팅은 계속되었고, 나는 점차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 인물과 멀어졌다.
그때는 우울증을 앓기 전이었다.
아니면 시작단계였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가장 가까운 사이기도 했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 시나브로 아주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10대에 이미 영향을 받은 지라,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내 일부가 되어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때로는 자기 확신이 없어 힘들어한다.
또 실제로 낮은 자신감으로 인해 많은 실패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자 슬금슬금 나는 고장 났던 것 같다.
그런 바탕을 가진 내가, 30대에 이혼이라는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우울증에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나는 깨달았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스스로 나를 조절해야 하고, 이미 시작된 이상 쉽게 헤어질 수 없을 거라는 걸.
내가 약해질 때면 언제든 다시 내게 다가와 나를 힘들게 할 것이라는 걸.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이것도 내 일부’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뭐, 내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원인을 알고 있는 이상, 다시 또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원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심연을 들여다보면 꼭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니면 뭐.
원인이 없더라도 그 또한 뭐 큰일이야 나겠는가?
상황이 어떻든 괜찮아질 수 있다.
믿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니까.
나는 처음 원인을 찾았을 때, 그 원인으로부터 도망치는 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나아질 수만 있다면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하늘이 무너지거나, 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그 시발점으로부터 도망치라고 말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건 없기에.
무슨 일을 하든 1순위를 나로 두자.
나를 챙기고, 나를 돌보는 건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지만,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우울증과 멀어질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