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미웠지만 이제는 내 친구입니다
2주에 한번.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나는 요 근래 들어 굉장히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우울증과 무기력함에 시달리면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1, 2주가 흘러가있는 반면.
요즘은 매일매일이 정신없이 바쁘다.
그리고 날씨가 아무리 화창한들 기분이 좋은 날이 거의 없는데, 그날만큼은 정말 날씨에 따라 기분도 좋은 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 들어 깊은 감정에 빠지거나 생각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가 꽤 드물어졌다.
너무 기분이 들뜨는 것도 좋지는 않은데요.
지난주 상담에서 병원을 다닌 이래로 가장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셨다.
그리고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게 다시 물어왔다.
위에 서술했던 내용들을 선생님과 나눈 것이다.
오늘 기분이 좋다고 하셨는데, 오늘을 포함해서 최근에 기분을 점수로 매기자면 몇 점을 주시겠어요? 100점 만점입니다.
이 질문은 내게도 다시 해볼 만한 질문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도 매겨보셨으면 한다.
음.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병원까지 걸어오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80점 할게요. 평소는 70점 정도?
나의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잠시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행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유인즉, 100점이면 오히려 조증을 의심하는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7~80 사이면 적당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일종의 기믹이었다.
내가 혹시나 우울증과 조증을 함께 앓기 시작하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지신 것이었는데...
나는 속았다는 기분이 1초간 스쳐 지나갔지만 크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곰곰이 2주간의 기분을 점검했다.
그날이 특별히 80점인 것이지 평균 60-70 사이를 오가고 있는 듯하다.
빈도는 60이 더 많고, 늘 잔잔한 마음을 유지 중이다.
예전에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내게 어떤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우울증을 앓지 않는 사람이 평소에 느끼는 감정은 약간 차분하면서도 오히려 다운된 쪽이 가깝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너무 들뜨는 게 정신건강학 쪽에서는 병명을 붙일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때의 그 말이 떠오르면서 선생님이 중얼거렸던 '다행이다.'를 내 마음속으로도 되뇌었다.
다행이다.
이 친구, 그냥 조용히 그 자리에 있어주고 있었구나.
이제 매사 이런 식일 것이다.
숨겨져 있던 우울증이 어느 날은 고개를 내밀어 날 강하게 흔들어댈 테고.
또 어떤 날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주 솔직한 심리상담사에게, 우울증은 사실상 완치가 어렵다는 말을 이미 들었었다.
그 말을 들었던 때가 다행스럽게도 이미 그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단계였기에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혹시 이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어 혼란스러운 사람이 있으시다면... 매우 죄송합니다.)
그냥, 그렇구나.
내가 조절하면서 관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거구나.
포기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힘들었다.
이런 기분과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장담컨대, 상태는 좋아질 수 있다.
노력에는 어떤 실패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결국, 이것도 나의 일부구나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마음이 참 편해졌다.
매일 다른 일로, 상황으로, 우울증 말고도 이겨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뭐, 그것도 다 지나가겠지?
사실 나는 심각한 단계를 지나왔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차마 여기에는 쓰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심하든, 심하지 않든
우울증이 나아질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오래 걸렸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우울증을 친구 삼아 살아가니 그럭저럭 살만해졌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세상이 그리 희망차지는 않아도 그래도 나는 사람을 믿는다.
반드시 나를 지탱해 줄 사람이 있다.
그게 오롯이 모든 걸 버텨낸 자기 자신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