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뇌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이 복잡한 머릿속을 누가 알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이렇게 생각이 끊이지 않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늘 A를 생각하면 A-1이 떠올랐고, 그러다 보면 B와 C까지 떠올라 머릿속이 꽉 차버리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여기서 가장 괴로운 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루종일.
심지어는 자면서도 생각을 했다. 잠을 자던 중간에 깬 순간, 그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입으로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가령
아, 그래서 나 이제 어떡하지?
또는
그때 그러지 말 걸.
와 같은 이런 류의 쓸모없는 생각이 99%인데 말이다.
멈추는 방법 따위는 몰랐었다.
왜냐하면 처음 서술했듯,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사는 줄 알았으니까.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다 약을 먹고 난 뒤에 깨달았다.
와!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평화롭고 깨끗한 뇌(?)로 살고 있구나.
실제로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 약에 적응을 하던 시기였다. 내가 처방받은 약이 다행스럽게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약을 복용하고 며칠 뒤.
난 머릿속에 뿌옇게 내려앉아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느끼고 만 것이다.
종종 누군가 나에게 ‘생각 없이 그냥 살아.’라고 하는 말하는 걸 보며,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삶의 중심은 나였고, 나는 그런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와닿질 않았던 것이다.
그냥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아 보이니 그런 조언을 해준 거겠지,라는 식으로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정말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뒤, 나는 다음 면담 시간에 의사 선생님에게 곧장 이 사실을 말했다.
아마 약이 잘 맞는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원래의 나로 조금씩 돌아왔다. 30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약 몇 알로 일주일 만에
고쳐질 리 없는 습관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원래 우울증이란 게 그렇단다.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멈출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왜 살지?로 넘어가서 죽음에 이른다고.
아아. 나는 선생님의 말에 크게 동감했다. 마치 그동안의 나를 꿰뚫어 본 듯한 말들이었다.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물론 내 속 안에서, 나 혼자.
그러니 대답도 스스로 해야 했고,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그런 부분들은 거의 다 인생에 관한 일들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정해진 답이 없는 물음을 의미 없이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생각을 줄이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선생님은 종이 한 장을 프린트해 주셨다.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를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이 안 되는 병이 우울증 아니던가?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라 처음에는 갸우뚱했다. 하지만 뒤이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생각을 끊는 연습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알 수 있었다.
나는 생각이 많고 끊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방법은 쉽다.
지금 바로 눈에 보이는 것 3-5가지를 입으로 말하거나, 그럴 환경이 아니라면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차분히, 그중 하나의 물건의 특징을 최소 5가지 찾아낸다. 순간적으로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게 힘들다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오감을 입으로 말해보는 것이다. 공기는 어떻고, 입은 옷은 어떤 촉감을 느끼게 해 주며, 방금 마신 물은 어떤 맛인지.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생각날 때까지.
잘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끝까지. 될 때까지.
처음에는 아주 어려웠다. 아주 쉬운 방법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어려운 숙제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곧 잘하고는 한다. 습관처럼.
눈앞에 있는 물건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 방금 했던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버리는 것.
나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무엇이든지 연습하고 반복해야 실력이 늘어나는 법이니까.
우울증도 똑같았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고 완치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느낀 건 인생도 연습이라는 것이다.
고민만 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스스로를 믿으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