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먹기를 지양하다
밥은 잘해 먹어야지, 언니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 당시의 나는 대학생이었고, 급식이 나오던 기숙사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난 그때 자취를 하면서 밥을 차리고 치우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 재료도 사야 돼, 설거지도 해야 돼, 음식물쓰레기도 처리해야 해, 빨리 안 해 먹으면 상하기도 일쑤.
급식을 먹던 버릇이 있으니 남이 해준 밥에 익숙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배달 음식이나 싼 맛에 먹는 학식이었다.
학식은 그렇다 치고, 배달 음식은 음쓰(음식물 쓰레기)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왜 그랬을까.
아무튼 그냥 끼니를 '때우자'라는 생각으로 배달이나 간편식을 주로 먹었던 것 같다. 당장 내가 요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냥 편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내 삶이었고 요리라는 것에 관심조차 없었다.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왜?
그냥 아무거나 먹으면 다인 걸.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자취방을 이사했다며 본인의 집에 나와 또 다른 친구를 초대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휴지와 먹을거리를 사들고 갔던가. 그것까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어쨌든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의 자취방으로 향하던 것만은 확실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자 환한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는 친구가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한창 요리 중인 부엌이 보였다.
맛있는 냄새가 순식간에 코를 자극했다. 주변을 조금 둘러보자 계란으로 만든 요리와 흔히 집밥이라 부를 수 있는 찌개, 다른 반찬도 있었다.
우리가 온다고 해서 이미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차려준 집밥에 비해 자취생의 밥 그 자체였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자취방에서 이렇게 요리다운(?) 요리를 한다고?
안 귀찮나?
아, 오늘은 우리가 온다고 해서 이렇게 차린 거겠지?
라는 나의 생각은 조금 틀린 것 같았다.
주방에 늘어져있는 여러 양념들이 평소에도 자주 사용되는 듯 손길이 묻어나 있었고, 도마며 칼이며 본격적으로 요리를 할만한 주방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대화에도 이미 그런 흔적들이 드러났다.
이 오일은 엄마가 사줬는데 비싼 거라서 일부러 너네 먹이려고 오늘 뜯었어! 잘했지?
이건 평소보다 맛없게 됐지만 맛있게 먹어줘잉.
아, 여기엔 감자가 더 들어가야 진짜 맛있는데!
처음 자취방에 들어왔을 때처럼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이만한 요리를 해 먹는구나.
그 순간 나의 '평소'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어 보였다.
밥은 그냥 끼니를 때우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내 가치관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 당시 내가 끓여 먹던 된장국은 굵게 채 썬 양파하나 덜렁 들어간, 미소 된장국도 아닌 그런(?) 된장국이었다.
나는 놀라운 기색을 딱히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귀찮지는 않냐며, 정말 대단하다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매번 차려먹는 거냐고 말이다.
그러자 친구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밥을 한술 뜨며 말했다.
밥은 잘해 먹어야지, 언니.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인데.
그 말을 듣고 입은 웃으면서도 속마음은 이상했다.
밥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밥이 선물이라고?
그렇다. 나는 나에게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맛있는 한 끼.
제대로 된 한 끼는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챙기고 돌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흔히 나를 사랑하자라는 말을 듣고 내뱉고는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20대 초반의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매 순간마다 끼니가 지나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사실 처음 저 친구의 말을 소화하고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저 생존 수단의 하나로 인식했던 밥이, 나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는 게 한 번에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다시 다음을 위해 그릇을 정리하는 행위들 자체가 오롯이 '나만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그 행동을 통해서 나는 보람을 느끼고 오감이 자극되면서 또 다른 감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시간이 계속되는 것처럼 내 생활도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특히 밥은 많으면 하루에 세 번, 적어도 두 번은 챙길 수 있는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아주 소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나 챙김' 시간이었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나는 꽤 오래전부터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짐작컨대, 20대 초반부터 증상이 있었고 상태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병명이 우울증인지, 재발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상태가 꽤 좋아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우울증인지 조차도 몰랐었고, 혹시...? 하는 생각정도만 있었지, 약물 치료는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저런 식으로 나를 챙기거나 돌본다는 말을 텍스트로만 인식할 뿐이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아마 더욱 악화되어 지금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이혼이라는 명백한 이유는 처음 스스로 병원까지 걸어가게 할 만큼 강력한 우울증의 원인이었지만, 나를 챙기는 방법을 몰랐던 나를 비추어 볼 때,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우울증에 가까워질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비단 밥 챙기기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적인 부분에 '나'를 소홀히 대했다.
원래 하던 생활이기에 그걸 깨닫는 것에 시간이 꽤 걸렸고, 지금도 나는 깨닫지 못한 채 소홀히 대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이어져 내가 나를 죽음에 가까워지게 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제의 나와 싸우고, 오늘의 나를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30대가 된 나는,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보다 양념을 쓸 줄도 알고 식재료의 맛을 가늠하는 실력도 늘었다.
비록 혼자 밥상에 앉아 유튜브와 함께 식사를 하더라도, 내 눈앞에는 오직 나만을 위한 맛있는 식사가 있다.
오늘은 먹고 싶은 요리를 할 계획이다.
사실 요즘은 부엌에 선 지 오래되었던 것 같기도 해서.
모두 맛있는 끼니와 함께 행복한 아침, 활기찬 점심, 아니면 즐거운 저녁을 시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