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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Mar 05. 2020

코로나 사태에 삼시세끼 집밥, 외식이 몹시 그립다

김치 수제비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글을 쓸 수 없다. 내 속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뜨겁고 폭발적인 것을 마구 쏟아내고 있지만 그것은 언어로 결절되기도 전에 내 감정의 불안정함으로 인해 짧은 한숨으로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뜨겁고 불안정한 무엇이 솟아났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동시에 나는 단 한 줄의 문장도 만들 수 없다. 밥상을 차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싶지 않다. 내 마음속에 밉고 싫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람을 먹이기 위해 음식을 하고 밥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을 갖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그 밉고 싫은 대상이 내 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큰 아이가 공부하는 의미를 모르겠다며 하루 종일 유튜만 들여다보는 자신의 '공부 안 함'을 합리화시키다 난데없이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공부해보고 싶어요"할 때, 초등생 작은 아이가 금방 들통이 날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때, 남편이 내게 상의도 없이 큰돈을 써버릴 때 처음엔 화가 나고, 나중엔 자괴감이 들고, 종국에는 모든 걸 회피하고 싶다. 내 SNS에 올렸던 가족들과 행복했던 나의 시간조차 거짓으로 느껴지고 내 인생 전부가 부정되는 듯하다.  가출하고 싶은 심정인데 또 밥상은 차려줘야 하니 나의 식탁은 즐거울 수가 없다. 즐거운 식탁을 차릴 수 없을 때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밖에 나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사 먹는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요즘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사 먹을 수 없어 삼시세끼 집밥의 연속이다.


도서관에 갈 수도, 쇼핑을 할 수도  없으며,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없다.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도 못 간다. 여행을 계획할 수도 없다. 학교도 학원도 쉬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최소한의 외출을 하며 필요한 것을 사들고 와 세 남자의 아침 점심 저녁밥을 해대고 있는 요즘이다. 어느 기사의 제목처럼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닌 듯 매실꽃이 벌써 펴서 봄햇살에 아래 웅웅 거리는 벌들을 부르고 있는데, 물빛도 봄햇살에 푸르게 흐르는데, 이 봄을 모두 놓치고 집에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며 삼시 세 끼를 해대고 있다. 이러다가 목련이 피는 것도 마스크를 끼고 봐야 할 판이다. TV에  나오는 "힘내라! 대한민국!" 영상에 뭉클한 뭔가가 느껴진다.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가엾고 어서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는 답답함 때문인지 땀을 뻘뻘 흘리며 얼큰한 것을 들이켜 "아! 시원하다"는 무언가 해소된 듯한 느낌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오늘 점심엔 김치 수제비를 끓였다. 진하게 우려낸 멸치 다시마 밑국물에 김치 국물과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끓이니 칼칼하고 깔끔하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망가지고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없는 답답함으로 덜컥 겁먹은 마음이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시원함으로 조금은 위로가 된다.


그냥 집에 있겠다는 아이들에게서 핸드폰을 뺏고 마스크를 씌워 강변 산책로를 걸으러 나갔다. 봄 햇살이 반갑다.  햇살에 눅눅해진 마스크처럼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탁탁 털어 말리고 싶다. 그리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소중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어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삼시세끼 집밥을 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마구 외식을 하고, 볕 잘 드는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그동안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 문장들을 꺼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맘 편히 하고 싶다. 어서 코로나 이후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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