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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Mar 31. 2016

마지막다운 밤

태교여행


낮잠을 잤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다시 나왔다. 하루를 두번 또는 세번으로 쪼개 여행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여행 첫날 예전같지 않은 체력에 당황했다. 삼일 째이자 마지막 밤을 앞둔 지금은 새로운 여행 패턴에 적응했다. 아침 산책 후 한번 쉬고나서 오후에 놀러나갔다가 다시 쉬고 이렇게 저녁에 또 한번의 외출. 하루지만 삼일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첫날의 울적함은 이제 없다. 밤이 되니 날도 선선하고 자고 나니 발걸음도 가볍다.

타이윤 시장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빅토리아 피크로 가는 이층버스를 탔다. 버스는 좁은 길을 한참 오른다. 한 쪽으로 산 아래에 불빛들이 가득 보인다. 설렌다. 빅토리아 피크에 도착했다. 피크트램을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엄청나다. 현지인의 충고대로 버스 타고 올라오기를 잘했다. 전망대로 갔다. 이거다. 내가 상상한 홍콩풍경이 바로 이거였다. 어디서든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볼 수 있는 지점은 나를 설레게 한다. 골목을 걷는 것이 낯선 세상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라면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는 것은 아득한 공간에 머무는 기분이다.

사람이 많았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난간에 기대고 남편이 뒤에서 안았다. 홍콩의 가장 화려한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불빛들을 한참 바라본다. 초점이 흐릿해지는 만큼 소음도 점점 흐릿해진다. 많은 사람들의 여러 나라 말소리들이 점점 멀어진다. 윙. 완성이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과 멀어지는 순간. 사라져버린 것 같은 순간. 서울에서도 이 느낌이 고플 때 찾는 곳이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싶어 이 곳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등 뒤가 든든하다. 따뜻하다. 화려하고 복잡한 이곳에서 둘만 있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본다. 웃어준다. 몸을 돌려 힘껏 안았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었다. 아득함에서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신이 난다.

계속 야경을 바라보고 싶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다. 한층 내려오니 식당이 있다. 전망대 올라갈 때만해도 줄이 길었는데 시간이 늦어지니 사람이 없다. 창가자리에 앉아 케익을 먹었다. 바람을 맞으며 구경했던 장면을 이번에는 앉아서 감상한다. 내려올 때는 피크트램을 탔다. 여기도 시간이 늦으니 사람이 줄었다. 피크트램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여기도 내가 상상한 홍콩이다. 높은 빌딩이 가득 반짝이고 있다. 센트럴역쪽으로 걸었다. 소호를 가기 위해 들렀던 센트럴역과 너무 다르다. 지나가는 버스도 그 동안 본 것들과 달라보였다. 화려하지만 한산한 거리를 뛰듯이 걸었다. 기운 넘치는 나를 남편이 신기하게 본다.

 추천받은 루프탑 라운지로 향했다. 복장제한이 있다는 이 곳에 가기 위해 남편에게는 긴 바지를입히고 나도 원피스를 입고 나왔었다. 상상보다 검색해볼 때보다 더 좋다. 편안한 소파 자리가 남아있다. 오늘 밤 여행은 늦어진 시간 덕에 누리는 것이 많다. 젊고 멋낸 남녀 여러 명이 함께 있다. 건배를 하며 웃는다.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중년의 외국인 남자 세명은 스탠딩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눈다. 옆 자리에는 예쁜 옷을 입은 여자 둘이 칵테일을 마시며 대화를 한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빌딩 속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며 퇴근 후 한잔 하러 온 사람들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이 분위기에서 술을 한잔 할 수 없다는 한 가지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

쥬스를 앞에 두고 남편에게 묻는다. “어떤 아빠가 되고 싶어요?” 젊음과 웃음과 애정이 가득한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과일주스와는 어울리는 질문이었다. “친구같은 아빠요.” 아이 얼굴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상상된다. 사소한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해주고 작은 몸짓에도 정성껏 반응해주는 친구같은 아빠. 나는 갖지 못한 모습이다. 남편이라도 그런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나도 남편을 따라해봐야지 생각한다. 친구같은 아빠가 어떤 의미인지 남편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 멋대로 상상하고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오빠는 언제부터 이런 사람이었어요?” “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남편이 웃는다. “언제부터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됐어요? 원래부터 그랬어요?” 내가 남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아내인 나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기 죽을 일이 없고 우쭐댈 일도 없다. 속상하고 좌절했을 법한 시절이 있었음에도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에 최선을 다한다. 지금-여기의 중요함을 알고 충실하게 머무는 사람이다. 내가 책에서 배우고 가까워지고자 하는 그 모습을 가졌다. 남편이 내가 무슨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냐며 웃는다. 얼른 대답을 하라며 조른다. 어느날 문득 사람들이 나에게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사실 주변 사람들은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조금씩 편해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온전히 집중받는 느낌이 든다. 친구같은 아빠가 되겠다는 대답에 아이에게 온전한 집중과 사랑을 주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있을때면 나 스스로가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사랑받는 것에 대한 믿음이 유지된다. 이 대목은 나같은 사람에게 무척 중요하다. 나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으면 사랑이 없다고까지 단정짓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옆에 없으면 사랑이 없어졌다고 불안해했다. 그 불안은 나를 못난 사람으로 만들곤 했었다. 하지만 남편이 된 이 남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온전한 집중을 통해 믿음을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집중이 가짜가 아닐까 이 믿음이 착각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런 나는 연애시절 “안 좋아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싶을 때마다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가 이 남자에게 너무 마음을 많이 줄까봐 그래서 상처받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미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이 드러나면 흥미를 잃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됐다. 그러면 혼자 조용히 마음단속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계속 안 좋아한다고 말한다. 좋아 죽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바없다. 이 남자는 그게 좋다는 말 아니냐고 너 나 좋아하는 거라고 간단하게 결론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내게 사랑을 주고 믿음을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는 두렵지 않아요? 내가 어느 날 오빠 싫어졌다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날 이렇게 좋아해요?”라는 질문에 “그런 걱정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라고 말하며 안아주던 날이 기억 난다. 나도 더 꽉 안고 싶었지만 또 한번 밀어냈다. “여자 마음은 갈대라는 말도 몰라요?” 진작에 항복하고 싶었던 나는 달리 버틸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진부한 표현을 꺼냈다. “바람이 계속 한 쪽으로만 불면 돼요.”라며 나를 한번 더 안는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남편의 온전한 집중과 사랑을 받으며 산다. 무언가를 함께하면 더 즐겁다. 혼자 할 때는 예전보다 더 자신있어졌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덕분이구나. 그래서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고 그 삶의 일부인 나에게 집중하는구나. 우리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 주겠구나. 내가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도 아빠의 사랑 덕분에 함께일 때 즐겁고 혼자일 때에도 안정된 사람으로 클 수 있겠구나. 화려한 홍콩의 한 가운데에서 퍼즐을 맞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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