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는 누구의 색인가
10여 년 전, 우리 집 식탁 위엔 커다란 펜던트 조명 두 개가 늘어져 있었다. 루이스폴센 PH5. 페일핑크 바탕에 안쪽은 은은한 카키가 깃든, 영롱한 조명이었다.
그 시절 내게 톤 다운된 채도를 낮춘 핑크는 '세련된 취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런 핑크는 정말 내 취향이었을까? 오랜 질문은 6살 꼬맹이 아들의 한마디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는 무난한 화이트에 안쪽 포인트가 레드인 제품을 주문했었다. 당시 국내에선 200만 원이 넘던 낯선 고가 조명이었기에, 프랑스의 작은 상점을 뒤져 직구로 구매했다. 몇 달 뒤 도착한 건 뜻밖에도 핑크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완전히 싫지는 않았다. 반품 절차와 비용을 생각하니 상점 측에서 제안한 25% 할인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핑크색 조명 두 개는 우리 집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몰테니 월넛 테이블, 핑크 루이스폴센 조명, 대면형 화이트 대리석 아일랜드. 그 위에 무토의 핑크 의자와 침실 옆 핑크 스탠드 조명까지. 집 안 곳곳에 핑크가 스며들었다. 그레이, 화이트, 골드, 대리석과 어우러진 이 집은 누가 봐도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취향으로 가득했다.
이제 세 번째 인테리어를 앞두고 있다. '한 번도 쉽지 않은 인테리어'를 나는 벌써 세 번째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공정을 위한 빠른 결정들이 쏟아지는 와중, 남편과 펜던트 조명을 고르며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여섯 살 아들과 소파에 나란히 앉았던 어느 날의 대화다.
"엄마, 저건 왜 분홍색이야?"
"응, 엄마가 핑크를 좋아해. 예쁘잖아."
"이 집엔 나도 살고 아빠도 살고 할머니도 사는데, 왜 엄마 마음대로만 해?"
말문이 막혔다. 정확한 워딩이 세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 아들이 내 눈을 바라보던 표정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맞다. 아들은 핑크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으레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핑크는 여자아이들의 색이고 파란색은 남자아이들의 색이었다. 유치원에서 한복을 입고 오라는 날, 급히 쇼핑몰을 뒤져 입힌 핑크색 바지를 삐죽거리는 입으로 울면서 벗어던졌던 그날. 그 모습이 아직도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이사와 전셋집, 미국 렌트 생활을 거쳐 지금 이 집을 고치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집은 단순히 내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시간이 쌓이는 이야기의 그릇이라는 걸.
첫 번째 집에선 아이가 어려서 '아이 방은 귀엽게 꾸미면 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집에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온통 블랙을 고집했고, 공룡에서 축구로 게임으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거실과 주방은 '우리의 공간'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나'의 공간이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의견을 낸다. 책상과 침대 위치를 직접 그려 보내고, 모니터 방향까지 세세히 조율한다. 욕실 타일도 호텔처럼 다크한 톤으로 하자는데 '알아서 해'라며 은근 수용한다. 놀랍고, 고맙고, 신기하다. 어느새 그는 자기만의 미감과 감각을 가진 공간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테리어 세 번을 거치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된 건 가족이다. 동시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를 직시하게 됐다.
그래, 생각해보면 내 취향도 애초부터 북유럽풍은 아니었다. 나는 동글동글 작은 느낌의 다듬어진 그 북유럽풍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꿈꿨던 건 뉴욕 어퍼웨스트, 센트럴파크 앞 오래된 아파트의 느낌이었다. 자연스러운 나무 바닥, 큰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 투박한 크라운 흰색 몰딩. 아이가 태어난 뒤 실제로 어퍼웨스트에 서블렛으로 살며 매일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 84번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오가던 시절이 있다. 그때 느꼈던 공간의 감촉을,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층고가 낮은 한국 아파트라는 현실 속에서 구현은 쉽지 않았고, 핑크는 어쩌면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간 유행이었던 것 같다.
그날, 아이의 한마디는 내 공간 철학에 조용한 균열을 냈다. 누구의 색인가보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가였다. 우리 집은 '우리'의 공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TV를 그의 방 벽에 매립하는 걸 용인했고, 그는 내가 사랑하는 꽃을 주방 식탁에 두는 것을 이제 당연히 받아들인다. 디폴트값처럼. 이제는 그도 꽃이 없으면 허전해할 만큼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그 시절의 페일핑크 조명은 첫 집을 팔며 넘겨주었다. 그 결정을 지금도 가끔 아쉽게 떠올린다. 그래서 이번엔 루이스폴센이지만 다른 스타일을 선택했다. 유리 소재의 PH3½-3 화이트에 골드 브라스 버전. 독일에서 직구했고, 몇 달을 기다려야 도착한다. 부디, 이번엔 색이 다르게 오지 않기를.
이제 우리는 새 조명 아래서 함께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써 내려갈 '우리'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공간은 혼자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완성해가는 것이니까. 나만의 색이 아니라, 우리의 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