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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y 19. 2016

조앤 롤링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것

엘리펀트 하우스에서 내 글쓰기를 돌아보다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곳” 


우리 동네를 걷다가 이 문구를 보았을 때 하마터면 나는 해리 포터가 실존 인물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아, 그것은 조앤 롤링이 써서 대박 친 소설과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이었지. 그 문구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올드 타운에 자리한 <엘리펀트 하우스>라는 카페 유리창에 새겨져 있다.


The Elephant House -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곳 안내 문구


이 카페가 해리 포터의 탄생지가 된 것은 조앤 롤링이 이곳에서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들어가서 음식을 시켜 먹고 차를 마신다. 그녀가 쓴 작품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덕분이리라. 그런데 실은 "그게 뭐라고"라 하기엔 작품이 대단하다.


해리 포터는 1997년 롤링이 이 소설을 쓴 후 20년 사이에 67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4억 5천만 부가 팔렸고 8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숫자가 '억'이 넘어가면 그게 얼마나 큰 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뭐, 아주 큰 수라고 해 두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시리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낸 영화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작가는 떼돈*을 번 것은 물론이요, 영국 왕실에서 작위까지 받았다. 


조앤 롤링의 자산: 8,847억 원! 헉! (2016년, 선데이 타임스 리치 리스트 기준)


부럽다. 돈? 작위? 명예? 그래 그것도 무지하게 부럽다. 하지만 조앤 롤링에게 내가 진짜 부러운 건 따로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썼던 그녀의 의지와 끈기. 짜증 나게 부럽다. 나는 그렇게 안 되니까.  


엘리펀트 하우스에 들어가면 조앤 롤링에 관한 사진과 기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위 사진)


조앤 롤링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다. 첫 결혼에 실패하여 4개월 젖먹이 딸을 데리고 왔던 곳이 바로 여동생이 있던 에든버러였단다. 일정한 수입도 없어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야 했을 때 우울증 치료 차 동생의 권유로 시작했던 글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책 읽기와 이야기 쓰기를 좋아했으며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아기 분유값에 기저귀는? 먹고사는 게 힘들었을 텐데. 돈 나올 곳도 없고 불투명한 미래에, 싱글맘이 되어 혼자 애를 키워야 하는 곤혹한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 그런 상상력 터지는 멋진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조앤 롤링은 어린 딸을 유모차에 태워 공원을 돌다가 아이가 잠들면 엘리펀트 하우스에 와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미친 듯 글을 썼다고 한다. 제대로 된 집필실도 아닌 곳에서 유모차 옆에 두고 해리와 마법에 관한 8만 단어를 썼다는 사실에 나는 "대단하다"는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 내부 전경 1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 내부 전경 2 -코끼리 그림, 코끼리 조각 등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 


이 문장 어디쯤 "잘"이라는 부사어를 폰트 크기 100은 되게 해서 붙이고 싶다. 애덤 스미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 인정은 타당한 인정이어야 한다고. 내가 사랑받을 이유도 없는데 사랑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경우엔 그게 글이다. 잘 쓴 글로 인정받기. 하지만 쓰는 글마다 흡족하지 못해 괴롭다. 개떡 같은 글이라도 완성시켜 놓으면 퇴고의 여지가 있는 건데, 내겐 중도하차한 글이 여럿이다. 사실 개떡은 맛있기라도 하지.


한국을 떠나오면서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졌다. 사는 이야기, 감상과 느낌 이런 것들을 썼다. 어느 순간 글 속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안 좋은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소심한 성격 탓에 완전히 나를 드러내 놓기도 뭣해서 허구를 집어넣다 보니 소설 비스무리한 것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조앤 롤링이 아니었다.


내가 글을 쓰다 중단했던 이유는 수백 가지다. 바빠서, 아파서, 배고파서, 배불러서, 노느라, 쉬느라, 자느라 혹은 그저 글 쓸 기분이 아니라서... 조그마한 걱정거리가 있으면 최대한 크기를 불려 마음에 담고 되씹느라 자판을 두드릴 힘조차 남겨두질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조앤 롤링 같은 상황이었다면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신세 한탄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을 것이 뻔하다.   


조앤 롤링은 멈추지 않고 썼다. 상상해 보건대 절박한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그녀라고 왜 힘들지 않았을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테지. 하지만 썼다. 멈추지 않고. 그것이 나와 그녀가 가장 다른 점이다.   


엘리펀트 하우스 화장실 벽에 쓰여 있는 낙서들


평범해 보이기 짝이 없는 카페는 해리포터가 태어난 곳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에든버러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엘리펀트 하우스를 찾는다. 죽기 전에 자기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보겠다는 소망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카페 안에 들어가 앉으면 왠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조앤 롤링처럼. 이곳에서라면 그녀의 기운을 받아갈 수 있지 않을까? 롤링도 썼는데 나라고 못쓸까.


"여기 와이파이 되나요?" 


엘리펀트 하우스에 들어갔을 때 내가 물었던 첫 질문이었다. 젊은 금발 여직원은 안 된다고 일러 주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덧 붙였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카페라니. 글쓰기 쉽지 않겠는데? 왜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 조앤 롤링처럼 글을 써보겠다고 가져간 도시바 노트북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인터넷 서핑하지 말고 글을 써야지 바보야! 글 쓰고 싶은 거 맞니?"


아직 멀~었구나 싶다.  


쓰고 싶다는 이상과 써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충돌할 때 나는 조앤 롤링을 떠올리기로 했다. 내가 탐하는 그녀의 의지와 끈기, 닮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썼던 의지, 시작한 글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끈기, 내게 부족한 것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 문제다. 우선 쓰고 볼 일이다.


엘리펀트 하우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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