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만날 일 없어도 안부를 묻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웃들, 친구 부모들을 길거리에서 만나거나 친척네 집에 갈 때마다 똑 부러진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어이구 영글음이는 인사를 참 잘하네.”하는 칭찬이 돌아왔으니까.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이번에 시험 잘 봤다며? 상 받았다며? 반장 됐다며? 같은 칭찬은 들을 리 만무했으므로 인사라도 잘해서 보상을 받아야 했다.
습관이 된 덕인지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출근할 때마다 같은 팀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는 걸 즐겼다. 영글음 씨 오니까 사무실이 밝아진다는 팀장님의 한 마디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내 인사 목소리를 항상 ‘솔’ 톤으로 유지시키는 힘이었다.
남편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함께 따라가 살았던 미국 시골마을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곳에서는 아는 사람이 아닌데도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동네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사람들은 어김없이 하이, 헬로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받는 인사가 처음에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혹시 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문화였다.
거기서 5년을 살다 보니 어느새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인사를 하는 문화에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굳이 거창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아도 인사 한 마디 건넬 때 함께 전해지는 눈빛과 온기가 나는 참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내뱉었을 그들의 말 한마디가 낯설고 외로운 땅에 선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되어 주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때론 유리 같아서 쉽게 감동하고 또 쉽게 상처 받는다.
인사를 좋아하는 '나'와 미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인격체가 만나니 부작용이 생겼다. 미국을 떠나 영국 에든버러에 도착했던 첫 해, 첫 달에 길거리 사람들에게 어찌나 인사를 해댔던지. 같이 웃으며 화답하는 미국인들과 다르게 영국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인사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뒤돌아서 나를 흘끔 본 뒤 가던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개중에는 인사를 해준 이도 있었는데 느낌이 달랐다.
그건 미국과 영국의 차이라기보다는 시골과 도시의 차이였다. 미국에서도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나처럼 인사를 하고 다녔다면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같은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에든버러에서도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던 나의 소망이 담긴 행동이었다. 몇 번의 민망함을 겪은 후 아무에게나 인사를 하는 버릇을 잠재웠다. 도시라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속으로는 흥, 치, 야박한 사람들 하며 한껏 서운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런데 시골로 이사를 왔더니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인사를 너무 잘하고 잘 받아주었다. 얼굴을 익힌 사람들뿐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도 길을 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환한 미소는 덤이었다. 그때마다 마음 가득 퍼지는 충만감이란. 이 마을에서만큼은 원하는 데로 인사를 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싶어 지난 3년간 열심히 했다. 점점 아는 사람도 늘어갔고 이제 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큰 목소리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인사말 건네는 게 별게 아닌 것 같아도 사실은 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은 편안하냐고, 오늘은 안녕하냐고 안부를 묻고 답하는 과정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길이다. 그 길이 처음에는 아주 좁고 작은 구멍이라 할지라도 계속 쌓이다 보면 햇살 한 줌은 넉넉히 들어올 공간이 되는 길이다. 인생에서 그만큼이면 넉넉할 때가 있다. 그 조그만 공간이 부족해서 우리는 늘 허덕이니까.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한 마디하고 싶다. 나를 아는 이들, 모르는 이들에게 건네는 나의 마음 한 조각이다.
오늘 하루 안녕하셨어요?